ep.14 보스(2) 번아웃
* 보스 성향: 뜨거운 불입김으로 당신의 모든 업무적 의욕을 하얗게 불태움
* 데미지 특징: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음, 누가 말을 해도 귀에 잘 안 들어옴, 모든 업무적 관계들이 다 버거움.
겨우겨우 첫 번째 보스를 무찌르고 적응과 성장 과정을 거쳐 이제 좀 일터에서 평화를 찾나 싶을 때 불현듯 나타나는 두 번째 보스!
입에서 뜨거운 화염을 뿜어내는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번아웃 드래곤’!!
아⋯ 두 번째 보스는 첫 번째 보스보다 훨씬 더 강력하네요. 덩치도 더 크고, 힘도 더 세고, 속도도 더 빠르고⋯. 어째 도망갈 길이 별로 보이질 않습니다.
이어지는 업무 속에서 스스로의 힘을 비축하지 못하고 매일의 싸움을 아슬아슬하게 이어온 당신은 어느 순간 자신이 그 거대한 보스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예요.
앞서 불안 슬라임과는 다르게 이번 번아웃 드래곤은 민첩성이 보통이 아니거든요.
순간 놀란 당신이 서둘러 자리에 벗어나려 해도 번아웃 드래곤은 훌쩍 자신의 큰 날개를 펼쳐 당신 앞으로 다시 날아올 것입니다. 당신이 겁에 질려 ‘이제 내 모험은 여기서 끝이구나’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무리가 아니죠.
혹시 당신 눈앞의 거대한 번아웃 드래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방심은 금물이에요. 그 영악한 마물은 당신의 머리 위를 빙빙 돌며 자신의 모습을 숨길 때가 많거든요.
어떠한 경우에는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그 보스를 당신이 서 있는 맵과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는 주변의 동료들이나 지인들이 먼저 발견했을 수도 있어요. 혹시 최근 주변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요즘 괜찮아?’’
“안색이 안 좋다. 무슨 일 있어?”
어쩌면 당신은 상황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오히려 주변의 이와 같은 질문과 반응을 의아하게 느낄 수도 있어요. 이 번아웃 드래곤은 덩치는 커도 몸이 워낙 재빠르니까요. 어쩌면 적지 않은 확률로 당신은 그 거대한 덩치의 드래곤을 미처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일에 매몰되어 있는 것일 수도⋯.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지만, 당신 혹시 최근에 문득 깊은 무력감에 빠진 적이 있지는 않나요?
아니면 그러한 무기력이 찾아올까 두려워 퇴근 후에도 집에까지 일을 가져와 하고 있지는 않나요?
또 다른 경우에는 다음 날 출근하는 것이 겁이 나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요?
그렇다면 아쉽게도 이미 당신은 번아웃 드래곤의 화염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믿기지 않으시다고요? 그럼 한 번 확인을 해볼까요?
이하의 표의 질문을 보고 자신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내용에 체크를 해보세요.
<표 6 : 비영리활동가 번아웃 체크리스트>
당신은 이 중에서 몇 개의 내용에 해당되나요? 일반적으로 체크된 내용이 1~4개면 번아웃 초기 단계예요. 조금 스트레스 관리를 해주고 휴식을 취하면 곧 나아질 수 있는 수준이죠.
하지만 5~8개면 높은 수준의 번아웃 단계라 할 수 있어요. 이 단계가 되면 제대로 일을 하기 힘든 상태입니다. 조금 긴 휴식이 필요한 수준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런데 만약 9~12개가 체크되었다면 당신은 번아웃이 아주 체화되어 있는 수준이라 당장이라도 쉼과 치료를 가져야만 하는 상황이에요.
몸이 활활 타고 있는 상태로 계속 일을 하는 것은 본인의 심리적·육체적 건강을 위해 반드시 피해야만 해요. 게다가 그것은 조직 입장에서도 좋은 상황은 아니죠. 불의 특징은 쉽게 이리저리 잘 옮겨 붙는다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우리 꼭 이 단계까지는 가지 말아요.
문제는 번아웃 드래곤의 존재를 가까이 확인했을 때는 이미 늦는다는 것이에요. 동작만큼 눈치도 빠른 번아웃 드래곤은 당신을 발견하자마자 훨훨 날아올라 재빠르게 당신을 긴 꼬리로 칭칭 감고, 그 뜨거운 화염의 숨결을 내쉴 준비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번아웃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리 그의 존재를 인식하고 조금이라도 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이에요. 정면 승부는 매우 불리한 싸움이라는 것, 결코 잊지 마세요!
*보스 필살기: 거대한 몸으로 가슴 짓누르기, 화염으로 멘탈 바짝 태우기
혹 누군가는 활동가를 향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니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연하게도 조직 안의 활동가 역시 여러 가지 형태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발생하죠.
예를 들면 구조적으로 아이디어 개진이 어려운 경우도 있고, 일에 대한 접근이 동료마다 서로 달라 묶어내기 곤란할 때도 있습니다.
게다가 사회를 바꾸고 시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일을 하는데 어찌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그만큼 예민해질 수밖에 없죠.
꼭 이러한 사례를 굳이 꼽지 않아도 사람 사는 데는 다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는 여타 사람들의 말이 어느 정도는 틀림이 없다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상대적인 강도만 다를 뿐 영리 기업이건 비영리기업이건 그 부분은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오히려 비영리 쪽은 여러 가지 자원이나 인프라가 영리 기업보다 부족할 때가 많아 실무자 홀로 꽤 많은 것을 감당해야만 할 때가 적지 않다고 이미 말씀드렸죠?
그렇게 한 개인에게 여러 가지 역할이 요구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상황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다 보면 당연히 누구라도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에는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한 때 비영리단체의 활동가는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제법 있었어요. ‘적게 받고 많이 일하는’ 헌신적인 사람들이 진정성 있다고 평가되고 최고의 활동가로 꼽히기도 했죠.
하지만 그런 초인(?)들만 활동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사람들 또한 활동가가 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점진적인 사회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텃밭을 가꿔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당신께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활동가로서 ‘스트레스는 버리고, 사명감은 취하자’라고.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본인에게 주어진 일의 세부적인 수행 자체에는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사업 목적성에 대한 부담 어린 사명감은 대의적인 차원에서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차피 모든 사업의 결과를 혼자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뛰어난 실무자라고 해도 상황적 요인이나, 조직의 여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성과를 낼 수 없거든요.
또한 지나친 완벽주의를 추구하게 되면 세부 업무에 너무 진을 빼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 힘을 쓰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오해는 말아 주세요.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말은 방만하게 사업을 운영하라는 뜻이 아니라, 실무의 수행과정에서는 조금 힘을 뺄 필요가 있다는 말이에요.
다만 그 일을 수행하는 목적, 당신이 진행하는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통해 누군가의 삶은 달라질 수 있고, 누군가의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그 큰 틀의 목적성에 대한 기본 인식을 가지고서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죠. ‘전투에서는 져도 전쟁에서는 이기라’는 말과 조금은 비슷하다고 할까요?
어쩌면 이런 제안은 일종의 말장난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사명감이라는 것도 일종의 부담이니, 그 부담을 가지게 되면 거기서부터 스트레스가 발동하기 시작하니까요.
맞습니다. 다만 그 모든 사업적 부담을 자신 혼자 끌어안지 말고 동료와 조직에게 그것을 적절히 분담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조금은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다’, ‘나 혼자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놔 보세요. 사명감은 선한 의도로 시작되지만 그것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한 개인이 수용할 수 없는 스트레스로 변하고는 하니까요. 그런 높은 긴장 속에서 진행된 일들은 실무자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고는 합니다. 결국 목적이 있는 사업을 바라보는 실무자로서의 가벼움과 무거움, 그 사이 어디쯤의 적절한 균형감각은 반드시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앞서 설명드렸다시피, 이번 보스는 예방이 최고입니다. 끊어야 할 때는 끊고 가자구요. 아프면 주변에 아프다고 말해보세요. 생각보다 다들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을 소중히 여기는 동료들은 당신을 나약하고 무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에요. 이번 보스는 당신의 그 두려움을 먹고 더 힘이 강해지니, 번아웃 드래곤에게 스스로 먹이를 던져 줄 필요는 없습니다.
* 클리어 스킬
1) 투명 인간 되기: 피로도가 너무 높을 때는 잠시 일과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져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내가 없으면 안 돌아갈 것 같은’ 프로젝트임에도 일부러 양해를 구해 거리를 둬보는 것이죠. 역할 자체에서 빠져나오거나 아주 단순한 역할만 하는 방식으로요.
동료에게 자신의 일을 분담하면서 상호 책임성도, 사업을 보는 눈도 확장되어 가는 쪽을 선택해 보세요. 그렇다고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해하지도 마세요. 잘 회복한 후에 다른 동료가 쉴 때 당신이 잘 서포팅을 하면 되잖아요. 그리고 조금 빠르게 번아웃에 극복하면 그 프로젝트에 다시 참여할 수도 있고요. 상부상조와 상호부조의 정신이 시민사회 탄생의 저변 아니겠습니까.
2) 페이스-오프 하기: 집 안에서도 활동가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요?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활동가라는 것은 직업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정체성에 대한 네이밍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항상 어디에서건 열혈활동가로 남는 것은 다소 피로한 일일지도 몰라요(당신은 느끼지 못해도 당신의 몸은 느끼죠).
그러니 직업적 활동가는 회사에 두고, 가정에 돌아와서는 생활형 활동가로 살포시 가면을 갈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간혹 직업적 활동가의 영역을 24시간 모든 개인일정까지 꽉꽉 업무에 몰아넣는 분이 계세요. 물론 대단히 존경스럽고 참 활동가라고 우러를 수 있겠지만, 그런 생활을 오래 유지하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겠죠. 그런 식으로 활동하다 안타깝게도 결국 건강이 상하는 활동가들을 참 많이 보아왔습니다.
우리의 사회변화는 점진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 지속가능한 활동의 환경을 만들어 보자고요. 때로는 자신을 모르는 곳에서 가면을 벗고 쉼을 청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3) 순간 이동 배우기: 번아웃 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회복 시간도 길어집니다. 장기 휴가나 휴직을 하는 것이 업무에 대한 도피나 도망만은 아닙니다. 쉼 없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활동가란 개인의 비전과 직업적 비전을 맞추는 사람이기에 정서적으로 그만큼 에너지가 더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에 쉼과 충전은 활동가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영역입니다. 요즘 비영리단체는 급여적 한계를 넘어서고자 사내 복지 형태를 잘 구축한 곳도 많아요.
예를 들면 3년간 근무하면 1개월의 쉼을 보장하는 방식(안식월이라고 부르는) 등 주기적이고도 정례적인 휴식제도를 보장하고 있죠. 이렇게 기회가 될 때 긴 시간 동안 일과 조직에서 훌쩍 떠나보는 것이죠. 내가 모든 것을 다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만 있어도 복귀 후에 업무를 대하는 태도는 그 전과 매우 달라질 것입니다.
4) 호흡 조절 하기: 평소 업무를 한 70%만 사용한다고 생각하고 나머지 30%는 철저하게 개인을 위해 사용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모든 세세한 업무를 당신이 다 체킹하며 의미 부여를 할 필요는 없어요. 단순한 것은 단순하게 받아들여 보세요.
굳이 많은 고려가 필요 없는 영역은 팀원들이나 다른 실무자가 판단하게 하고, 또 중요하지 않은 자료 제작과 논의 자리들은 과감하게 스킵해 보세요. 그만큼 낭비되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이면 그것들을 더 나은 곳에 투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조직이라면 누가 사업적 판단을 하건 얼추 비슷한 기댓값이 도출되고, 세부 자료가 없어도 사업 판단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에요. 업무 가운데 ‘강-약-중강-약’의 리듬을 타며 자신만의 호흡 조절 능력을 잘 키워보세요.
축하합니다!!
*레벨 업: 당신은 보스 제거를 통해 마력(MP) 레벨이 +400 상승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