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 6. < 숙련 > ep15. 비영리세계에 눈을 뜨다
매우 강력한 두 번째 보스까지 클리어하고 다음 퀘스트로 진입한 당신. 정말 멋집니다!!
하지만 이번 보스를 상대하며 꽤 데미지가 컸었던 것 같군요. 확인해 보니 HP레벨이 현저히 낮아요(저런저런). 게다가 화염에 그을린 자국이며, 날카로운 발톱의 상처며⋯ 확실히 피로감을 느낄만하군요. 이것이야 말로 진정 피-땀-눈물 어린 용사(활동가)의 훈장과도 같은 것일까요?
잠시만요! 너무 서둘러 움직이려 하지는 마세요.
이번 퀘스트는 무리하지 말고 조금 꾀를 써서 영특하게 움직여보죠. 그래야 당신도 체력을 조금씩 회복할 수 있을 테니 말이죠.
이렇게 하죠. 이번에는 이어지는 모험을 잠시 멈추고 퀘스트 밖으로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쌓인 피로도 풀고 오랜 활동도 한 번 뒤돌아 볼 겸 여행을 떠나보는 것이죠(네, 진짜 여행요). 대신 저는 여행 중에도 계속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아, 부담은 갖지 마세요. 저의 역할은 다만 먼발치에서 지긋이 당신을 바라보며 당신이 느끼는 감정들을 대신 기록하고 정리하는 것뿐이니까요(처음 저를 소개할 때 ‘이어지는 퀘스트 내내 당신의 곁에서 있겠다’고 한 말은 이처럼 진심이었습니다)
음. 어떤 여행지가 좋을까요?
네? 가방에 최소한의 짐만 들고 오랜만에 훌쩍 산과 바다로 떠나보겠다고요? 굿 초이스! 그것도 꽤나 멋진 방법이네요. 자, 그럼 함께 이동해 보시죠.
(로그아웃 되었습니다)
당신은 모처럼 떠나는 여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로 마음먹었죠.
가장 먼저 가까운 산을 찾아 그곳에서 특별한 말조차 필요 없이 풍경과 경치를 감상하기 바빴어요. 다양한 수목과 꽃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순간 당신은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이제껏 너무 좁은 생각에 갇혀 아등바등 생활한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세상은 이리 넓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작은데⋯.
그렇게 산에 오르다 말고 문득 당신은 하늘을 나는 새를 바라봅니다.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새를 바라보고 있자니 옛 유행가처럼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다 갑자기 당신은 저 새들은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호기심 많은 당신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하네요.( 산 속이라 와이파이는 살짝 느리지만 짜증 한 번 내지 않은 당신, 산처럼 큰 인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살펴보니 여러 해부학적-물리학적 지식들이 그 안에 잔뜩 쓰여 있습니다. 머리가 다시 복잡해지는 것 같아 당신은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쑥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편히 바라보자고 마음먹었죠.
오랜 시간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당신은 문득 새의 날갯짓이 매우 단순한 동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물론 당신이 우연히 바라본 바로 그 새가 벌새였다면 이 문장은 사과드리겠습니다.)
큰 움직임 없이 툭툭 한 번씩 날갯짓을 할 뿐인데 어떻게 저 새들은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공중에 체류할 수 있을까요? 땅보다 더 자연스럽게, 그 높은 곳에서 불안감도 잊고. 당신은 하늘을 나는 새를 통해서 당신의 활동의 인사이트를 얻고자 합니다. 뭔가 떠오를 듯한데 언어로는 잘 정리가 되지 않고⋯ 아쉽게도 하산의 시간이 다 되어가는군요. 어쩔 수 없이 당신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얼마 후 당신은 다시 바닷가 여행을 떠납니다.
넓은 대양을 바라보니 당신의 마음도 덩달아 뻥 뚫리는 것만 같네요. 파란 바다의 색감에 눈도 함께 맑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파도 사이사이 물풀들도 보이고 얕은 물가에는 수많은 바다 생물이 눈에 언뜻언뜻 스칩니다.
아주 작은 물고기들을 살펴보니 (여전히) 호기심 많은 당신은 이들이 또 어떻게 바닷속에서 숨을 쉬며 사는지 궁금해집니다. 순간 당신은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할까 하다가 지난번 새를 찾아봤을 때의 생물학적 이론들이 떠올라 재빨리 그것을 주머니에 쑥 집어넣습니다.( 검색 여부와 상관없이 지금 핸드폰을 넣으신 것은 참 잘하신 선택입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마음을 비우기 위해 온 바닷가 여행이 당신의 지갑도 함께 비워지는 여행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물론 당신의 핸드폰이 완전한 방수기능이 있다면야 큰 문제없겠지만⋯.)
대신 당신은 근처 아쿠아리움에 방문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수상 생물들의 생활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졌거든요. 수조 안에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여유롭게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보고 읽었던 인어공주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어쩌면 동화보다는 디즈니 영화가 먼저 떠오를 수도 있겠네요.)
문득 당신은 저 물고기들처럼 여유롭고도 느긋하게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고는 유심히 그들의 몸동작을 살펴보죠.
오래도록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당신은 순간 물고기들의 지느러미짓이 매우 단순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물론 당신이 우연히 수조에서 바라본 물고기가 개복치 있다면 이 문장은 또다시 사과드리겠습니다. 헤엄치는 것과 부유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니⋯.)
지난번 새의 날갯짓과도 매우 비슷하게 말이죠. 큰 움직임 없이 가느다란 지느러미를 움직일 뿐인데 어떻게 그렇게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것일까요?
그 순간 당신은 무릎을 탁 치며 외칩니다.
‘바로 그거야!’
당신은 자신이 깨달은 인사이트를(이제 물 밖이니 서슴없이) 휴대전화를 꺼내 메모장에 급히 정리합니다.
‘그들이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의 행동에 ‘잔동작이 없었기 때문’이야!’
당신은 참 힘들었던 지난 번아웃 시간을 한 번 되돌아보았어요.
여유 없이 모든 일에 매진했던 그 시기가 자신이 체력적으로나 상황적으로 괜찮을 때는 상관없었어도, 그렇지 않을 때는 도미노처럼 서로 영향을 미쳐 일도 생활도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다 조금씩 몸과 마음이 회복되던 순간, 평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죠. 지금처럼 숙련된 이들의 공통적인 모습이 말이죠.
앞서 설명한 자연의 예를 비롯해서 무언가에 숙련된 이들은 가장 효율적인 동작을 일상에서 잘 구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쓸데없이 화려하거나 의미 없는 동작에 에너지를 쓰지 않고 있는 것이죠.
언젠가 숨은 맛집을 소개하는 영상을 통해 작은 음식점을 홀로 운영하는 한 요리사를 본 적이 있어요. 중화요리집이었는데 바 형태로 되어 있는 자리와 테이블을 포함하면 약 십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었죠. 하지만 놀랍게도 그 좁은 식당에 식사를 하기 위해 오픈 전부터 사람들이 한참 줄을 서더라고요.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그 식당은 정말이지 눈코 뜰 새 없이 붐비기 시작했어요. 속으로 ‘이걸 한 사람이 혼자서 다 감당한다고?’ 믿을 수 없다 생각했죠. 하지만 놀랍게도 요리사는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당연하겠지만 그에게 이것은 일상일 테니) 홀로 상황을 통제하며 머릿속에 있는 정확한 매뉴얼에 의해 음식을 척척 내는 것이었어요.( 물론 주문과 계산은 아날로그형 키오스크로 구현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동작에는 정말이지 잔동작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죠. 정말이지 모든 메뉴가 ‘뚝딱’이었습니다.
그와 비슷한 예를 숙련된 운동선수들에게서 찾기도 합니다. 일종의 경지에 오른 운동선수들의 플레이 모습을 보면 생각보다 화려하거나 동작이 많지 않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축구에서 예시를 한 번 들어볼게요.( 혹 비슷한 예를 들 수 있는 다른 스포츠를 떠올려도 좋습니다. 물론 당신이 좋아하는 종목 중에서 말이죠.)
세계 최고라 일컬어지는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는 경기장 안에서 왕성한 활동력으로 게임을 장악하는 스타일은 아니죠. 그저 경기장을 쓱 둘러보며 선수들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적절한 공간을 찾아들어가 가벼운 몸동작 몇 번으로 상대 수비수를 제치고 골을 넣습니다. 그의 플레이를 보면 축구가 굉장히 쉬운 스포츠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선수들을 보면 다들 왜 저렇게 힘들게 뛰어만 다니냐 싶을 정도로요.
이런 이들의 군더더기 없는 동작은 비영리 활동가들에게도 좋은 인사이트가 되지 않을까요? ‘숙련된 활동가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단 하나의 정의를 내릴 수는 없겠지만, 확실한 것은 앞서 언급한 인물들처럼 자신의 역할과 그에 따른 에너지 분배를 통해 효율적으로 상황을 통제하며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숙련된 활동가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 안에서 전체적인 일의 틀을 짜고, 일이 진행되는 속도의 감을 알며, 자신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고, 그것에 맞춰 일을 쭉 배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실제 업무를 하면서 초기에는 엄청 많은 고민의식과 가능성을 한참 늘어놓고서는 결국 그것에 질려 고작 실무하기 편한 방식으로 업무가 채택되는 ‘용두사미’ 형 사업이 또 주변에 얼마나 많았습니까.
숙련된 활동가는 사업을 기획하는 초기부터 충분한 고민을 통해 현실적인 한계 속에서 공익적 가치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업무프로세스를 그려낼 것입니다. 게다가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내외부 자원을 확보하여 혼자가 아닌 협업을 통해 (리오넬 메시가 동료를 이용해 2대 1 패스로 상대 수비를 뚫고 나가는 것처럼) 일을 추진하고 그 성과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당신은 어떠한 일이건 일정 수준에 오르려면 딱 필요한 순간에 효율적인 동작으로 그 위치로 이동하여,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움직임을 위해서는 먼저 전체를 조망하는 시야(흡사 높이 나는 새의 시선과 같이)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비영리 활동가들에게도 이와 같은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와 효율적인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사실 기존에 시민사회의 활동가들에게 요구되는 모습은 알게 모르게 ‘동네 이장님’ 같은 이미지였어요. 그것이 어떤 것인지 대충 감이 오나요? 모든 사업에 전부 관여하고 여기저기에서 역할을 맡아 열심히 그것을 수행해 가는, 부족한 기획과 에너지는 현장에서의 유연한 대처로 무마하며⋯.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개인의 순발력과 헌신에 의존해서는 지속적인 활동에 한계가 올 수밖에 없겠죠.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가는 선배그룹에 부담을 느끼고 활동의 지속가능함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젊은 세대의 신입 활동가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10년 후, 아니 당장 1~2년 후 자신의 모습도 잘 그려지지 않는 것이죠. 아무리 활동가가 사회변화의 열매를 먹으며 살아가는 이라고 해도 생활인으로서의 미래 또한 고려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물론 이렇게 자신의 생을 걸어 변화를 위해 헌신하는 활동가들은 사회적으로 존중받고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비영리 활동도 단순한 진정성보다는 사업에 대한 지속성을 계속 요구받고 있습니다. 아무리 초인적인 활동가도 물리적 제한성 안에서는 번아웃이 빠르게 찾아올 수밖에 없으며, 그렇다면 그 활동은 일시적으로나 영구적으로 좌초될 수밖에 없죠. 게다가 아무도 그를 이어 그와 비슷한 삶을 꾸려나갈 이가 조직 내 없을 때는 더더욱 그렇고요. 이러한 상황은 궁극적으로 비영리 영역을 건강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는 플레이어가 단순히 활동량만을 인정받아 ‘맨 오브 매치(MOM)’가 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죠.
모든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계의 영역이 있습니다. 한계를 뛰어넘는 몇몇 순간은 있어도 그 상태를 영원히 지속시킬 수는 없잖아요. 그렇기에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의 한계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에요. 더불어 자신의 현재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메타인지적 시야( 알려진 바대로 메타인지는 자신의 인지과정에 대한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 발견, 통제, 판단하는 ‘인식에 대한 인식’을 의미하죠. 내가 무엇을 알고 있고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한 필요합니다.
지금 현재 나의 상태는 어떤지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이것만 하면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상황이어도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형편이라면 과감히 내려놓는 자세 같은 것이겠죠. 때로는 이처럼 자신을 냉정히 둘러보고 그만큼 겸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헌신적인 활동은 좋지만,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는 활동가가 될 필요는 없어요. 타인보다 자신을 먼저 보듬을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관계적 호혜(타인뿐만이 아니라 자신과도)가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활동가가 조직 안에서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미션 중의 하나는 자신보다 사업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래야 기관이 수행하는 공적 수혜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기에 평소 일을 하면서도 비영리 영역 자체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다분히 거시적이고도 조직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얗게 불태우는 활동가도 때론 필요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자리를 활활 태우고 빠져나가면 그 주변에는 오롯이 재만 남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자양분이 되어 다시 땅을 기름지게 할 수는 있겠지만, 부탁이 건데 당신은 그 자리에 계속 꽃을 피워내 아름다운 정원으로 남아주길 바랍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그 아름다운 풍경과 그윽한 향기를 쫓아 이곳에 계속 모여들 수 있으니 말이죠.
반복적으로 ‘자신의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소 내용이 곡해될 여지도 있을 것 같네요.
이것은 단순히 ‘내 업무만 열심히- 다른 업무는 너네가 알아서’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말해 왔던 호혜의 논리가 다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겠죠. 업무를 포괄적으로 살펴보고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모든 것에 다 참여할 수 없기에 자신의 역할을 헤아리고 선명한 명분과 가치를 가진 사업, 명확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부분에 더 오롯이 집중하는 전략적이고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 다시 축구 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만, 올라운드 플레이어, 즉 박스 투 박스 형태의 선수도 있지만, 공격수가 최종 수비수 단계까지 내려와 수비를 하면 역습 시에는 누가 공격을 할까요? 전력질주로 공격라인으로 달려가 봤자 이미 공은 상대방에 빼앗겨 있거나 혹은 두어 번 크게 경기장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당신은 체력적인 한계 때문에 90분은커녕 10분도 제대로 경기장에서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조직 안에서의 나의 포지션을 명확히 알고 그 영역 안에서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가지고 가는 것이 매우 숙련된 비영리 활동가의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 지속가능한 방식 안에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