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일이 잘 안 풀리고 내가 보기에도 갑갑한 행동만 되풀이할 때,
상사에게 호되게 꾸짖음을 듣고 나서,
치명적인 실수를 하거나 꼭 해야 할 일을 빼먹을 때
스멀스멀 자기 자신의 역량에 대한 의심이 시작된다.
“난 왜 이리 일을 못할까? 소통 역량이 부족한가? 아니면 실행력? 리더십도 별로 없긴 하네..”라고 자기 비하가 시작된다. 그리고 결론은 “나는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내리면서 씁쓸한 생각들을 끝낸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한 “역량이 낮다”라는 평가는 틀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보통 근거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너무 섣부른 판단이기 때문이다.
역량은 추상적인 개념이다.
역량이 높고 낮음 사이에는 수십수백 개의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소통 능력이 좋은가?라고 생각해볼 때 무엇을 기준으로 소통이 좋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경험 상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 이해를 잘못하고, 내가 이야기한 게 잘못된다고 생각하면 소통 역량이 낮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만약 상사의 업무 지시는 정확하게 이해하는 편이라면 소통 역량이 계속해서 낮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내가 다녔던 회사마다 평가가 다르다면 어떤게 맞는 걸까? 어떤 회사에서는 상사가 내 소통 방식을 좋아해서 소통능력이 좋다고 칭찬할 수도 있고, 다른 회사에서는 내 소통방식 자체가 별로라고 욕먹을 수도 있다.
상사와 소통은 잘하는데 동료와는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아니면 개발자들과는 소통에 어려움을 겪지만, 그 외 직군과 소통을 잘한다면 소통을 잘하는 걸까? 아니면 잘 못하는 걸까? 글로는 명확하게 전달을 잘하는데, 입만 열면 머리가 하얘져서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고 막 뱉는 느낌이라면 나는 소통을 잘하는 사람일까?
생각해보면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데… 우리는 스스로를 향해서 “일 못한다. 역량이 부족하다”라는 평가를 너무나도 쉽게 한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다. 일 잘한다 역량이 높다도 추상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역량이 낮은가 아니면 높은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부분의 정답은 “모른다”이다. 우리가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대부분 모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역량은 추상적이고, 부족한 건지 높은 건지 알기가 어렵다. 그렇게 때문에 차라리 내가 했던 행동 자체에 집중하는 게 스스로에게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소통 능력이 낮은지 높은 지는 알 수 없지만, 방금 내가 한 말을 상대방이 잘 이해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상대방이 한 말이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상대방의 말을 요약하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소통 능력이 어떤지를 생각하는 것보다, 지금 소통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확인해보고, 내가 하는 말이 잘 전달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렇게 할 경우 적어도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소통을 더 정확하게 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내가 소통 능력이 좋은 지 나쁜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내가 잘하기가 매우 어려운 “소통 능력 평가”에만 너무 신경을 쓰는 게 "진짜 문제"일 수 도 있다. 진짜 소통을 해야 할 때마다 “나는 소통을 잘 못하는 사람인데…”라고 생각하면서 집중력이 흐려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사실과 관계없이 그 소통에 실패하게 되고, 본의 아니게 소통 못하는 사람이라는 주장에 근거 1개를 추가하게 된다.
나 자신의 역량에 대한 평가에 대한 생각이 들 때마다 이게 진짜 내가 알 수 있는 건지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는지 자문해보자. 그리고 결론에 대한 반대가 되는 나의 행동들도 잘 생각해보자. 평가 결론을 내기가 어려워지면 거기서 빠져나와서 지금 나의 행동으로 생각을 옮기고 거기에 차라리 집중하자. 더 생산적인 결과물들을 손에 넣게 될 것이다.
소통 역량 따지기 보다는 소통 자체에 집중하고,
실행력이 좋은지를 생각하는 거보다 그냥 하고 싶은 일들 과감하게 질러보고,
리더십이 좋은지 나쁜지 생각하기보다, 동료와 부하직원들과 업무 대화 한번 더 해보고,
등등
이러면 더 생산적인 업무가 될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