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결과물은 어떠해야하는가?
이 글은 어떻게 하면 “인생의 결과물”, “인생의 역작”, “인생의 걸작”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을 담은 글이다. 그런데 "인생의"라는 단어 앞에 "나의"라는 주어가 추가되어야 한다.
그냥 인생의 역작 앞에 "나의"라는 말이 붙이려면, 우리의 결과물 속에 나 자신의 흔적이 남겨져 있어야 한다.
우리 각자는 나만의 고유성이 있다.
현재 전 세계 인구는 2020년 기준 약 76억 명이 있다. 76억 개의 개성을 갖은 인간이 이 지구 상에 사는 것이다. 서로서로는 얼굴, 키, 체격 심지어 성격까지 모두 다르다. 비슷한 사람들은 있을 수 있겠지만, 똑같은 사람은 없다. 즉 나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남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의 흔적이 묻은 결과물은 고유한 결과물이 된다. 내가 결과물에 녹아져 있다는 건 나만의 생각, 표현방식, 철학, 삶 등이 잔뜩 묻어 있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아무리 똑같은 모양과 형태로 만들어도 나의 흔적이 없으면 그건 그냥 가짜다.
미술품의 예를 들어보자. 미술품 특히 그림은 정교한 모작품들이 존재한다. 어떤 건 눈으로는 구분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똑같이 그린 그림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아무리 똑같아도 이건 가짜다. 왜 그럴까? 모나리자를 생각해보자. 원작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직접 자기 손으로 물감을 묻혀서 터치한 시간, 자신만의 철학 그리고 모나리자를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그에 따른 이야기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반면 모작은 아무리 모나리자와 똑같이 그렸다고 해도, 여기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흔적이 전혀 없다. 그냥 형태만 똑같지 껍데기에 불과하다.
물론 모나리자 자체만으로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각들이 잔뜩 묻어있다. 여기에 그림을 그리면서 고뇌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더해져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모나리자 원작이다. 전설적인 천재 화가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져 있기에, 이건 하나의 고유성을 갖은 예술이 된다.
모방하는 사람은 흉내는 낼 수 있지만 모나리자와 같은 시선, 생각, 표현을 해낼 수 없다. 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더 살았다면 자기의 생각을 표현한 또 다른 모나리자와 같은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게 졸작이든 뭐든 상관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본인이 들어 있가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건 진짜다.
우리의 결과물도 마찬가지다. 나만의 생각, 고민, 이런 부분들이 결과 물속에 잔뜩 남겨져 있어야 한다. 물론 스스로의 생각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생각 관점이 이 결과물에 녹아져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크다. 흉내만 낸 모방과 고유함이 듬뿍 담긴 창조는 얼핏 보면 거의 똑같지만 진짜냐 가짜냐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흔적이 있기 때문에 나의 결과물은 진짜가 되고,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만들었을 때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과연 이 결과물에는 내가 있는가? 있으면 나의 흔적이 얼마나 진하게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