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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cud Aug 21. 2023

텔레Tele-, 다음 정거장.

텔레그래프 - 텔레폰 - 텔레비전 - 텔레포트 - 텔레파시

* 본 글은 2019년, <인문공동체 - 수유너머104>의 [백남준 세미나]에서 발표된 기고문을 수정하여 재 작성한 글입니다.


멀리 보다
“(나는 왜 쇤베르크 아방가르드 음악의 ‘극단성’에 관심을 보였을까?) 나의 몽골 유전자 때문이다. 몽 골 ... 선사시대에 우랄 알타이 족의 사냥꾼들은 말을 타고 시베리아에서 페루(잉카), 한국, 네팔, 라플란 드(핀란드)까지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그들은 멀리 여행을 떠나 새로운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언 제나 더 먼 곳을 보러 떠나야만 했다. 텔레-비전은 그리스어로 ‘멀리 보다’라는 뜻이다. 멀리 보다 =  fern sehen = Tele vision”
 
- 백남준, ‘나의 환희는 거칠것 없어라’ 중


인상주의의 등장과 인식의 전환  깊이에서 표면으로


 인상주의의 등장은 당시 살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미술계와 사교계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쿠르베(G. Courbet 1819~1877)는 “추상적이어서 눈에 보이지 않고 또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회화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라고 선언하며, 신화나 역사적 주제에서 탈피한, 세속적인 주제를 회화로 그려내었다. 당시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 보다 ‘예수의 죽음’을 한층 더 큰 슬픔으로 받아 들였던 시대 였다.


귀스타브 쿠르베, <오르낭의 매장>, 1849~50, 파리 오르셰 미술관 소장


  특히, 마네(E. Manet 1840~1926)의 는 파격 그 자체였다. 그의 그림은 르네상스 이후, 완벽한 환영의 세계를 재현representation 하려 했던 그간의 미술 역사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으로,  회화의 세속성과 평면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 파리 오르셰 미술관 소장.


  인상주의는 단지 젊은 세대의 호기로운 반항이 아니라, 인식의 커대란 전환을 가져왔다. 모네(C.  Monet 1840~1926)는 회화적 모티브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취한다. 이는 당시로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전통적으로 예술에서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질료 도식의 전통에 따라, 경험적인 것 보다 관념(Idea)적인 것이 중요하게 여겼다. 즉, 질료에 해당되는 자연물이나 색채와 같은 것은 우월한 형상(관념)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목적이 될 수 없었다. 또한 관념은 고정된 실체를 갖고 있는 변하지 않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인상주의에 이르러, 회화는 ‘(눈에) 보이는 것’, 사물 그자체의 변하는 성질, 빛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모네, <루앙대성당> 연작


  이 시기에 드러난 인식의 전환은 오늘날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대상의 존재가 경험적이고 감각적인 것에 기대어 있다고 생각하지, 그것의 관념이 실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생각은 존 로크(John Locke)의 '관념은 오로지 감각(sensation)과 내성(reflection)을 통 해서 형성된 인상(impression)이 반복되어 형성된다'는 관념론에 부합한다.


  이제, 관념적 깊이가 아니라 표면의 효과가 중요해진 것이다.



원격 통신tele-commutes: 생각에서 물질로


  원격 통신tele-commutes을 가능하게 한 가장 중요한 사건에는 전기의 발명이 있다. 전기의 발견(명) 이후 전기는 인간의 통제하에 놓인 자연의 힘으로 여겨졌다. 1852년, 뉴욕의 한 일간지는 전기를 증기와 비교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기와 증기 모두 인간의 기술과 능력으로 자연에서 끌어낸 강력하고, 심지어 가공할 힘이다. 그러나 전 기는 증기보다 훨씬 감지하기 힘든 에너지이다. 증기는 인위적 생산물이지만 전기는 고유한 자연적 요소 이다. ... 자기와 결합한 전기는 좀 더 인간적인 물질이 되며, 전송용으로 발전하면 인간이 사는 지구의 끝까지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안전하고 신속한 전령이다.”


  전기 전신electric telegraphs이 있기 이전에도 전신telegraphs이 있었다. 전신은 프랑스 혁명기, 클로드 샤프Claude Chappe에 의해 발명되었다. 이 전신은 시각적인 것이었다. 당시의 전신은 마치, 봉화와 같이 가시거리 내에 다른 탑에 신호를 보내는 탑이었다. 전신telegraphs은 “원격 기록far  writing”을 뜻했다. 다시말해, 전신은 중간 매개 단계로 여전히 글자word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1838년 새뮤얼 모스에 의해 창안된 전기 전신에도 유효하게 적용되었다. 차이는 모스는 시각 신호가 아니라 전기 신호에 대응되는 기호 체계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전기 전신의 혁신성은 그것의 가공할만한 속도에 있었다. “전신은 로켓보다 빠르게, 로켓처럼 맹렬하게 날아갔다가 다시 10여개의 이웃 도시로 퍼져나간 전신들을 통해 전달된다.” 전기 전신에 대한 열광적인 태도들은 매우 빠르게 퍼져나갔 고, 전신선이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851년, 전신회사는 절연 케이블이 물밑을 지날 수 있도록 설비하였고, 40km 길이의 영국 해협 을 가로지르는 해저 케이블을 도버와 칼레에 연결하였다. 그리고 1858년,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 유럽 과 미국을 가로지르는 대서양 해저 케이블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당시의 흥분을 뉴욕 타임즈는 이렇게 보도하였다. “이런 결실은 정말 유용하며,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 인류의 미래는 장밋빛 희 망으로 가득하다. ... 인류 지성의 향상과 진보를 향한 여정에서 하나의 웅장한 기념비이다.” 전신의 가장 큰 성취는 ‘바로 생각의 전달, 물질의 근본적인 비약’에 있었다. (관념-물질,질료)


  그러나 전신의 경우, 여전히 생각을 전달하는데 있어 중간 매개인 글자가 필요하였다. 전신은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였지만, 여전히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전화는 음성을 전기 신호로 바꾸어 전송한 뒤 그 전기 신호를 다시 음성으로 재생하는 방식으로 원격 통신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는 물질 이 더 이상 관념의 보조가 아니라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하나의 중요한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화의 원리_ 출처. [알아봅시다] 전화의 원리 - 디지털타임스 (dt.co.kr)


텔레비전Tele-vision, 멀리-보다: 선에서 네트워크(망)로 (신체의 확장)


  텔레비전은 전기 신호를 시각 신호로 변환시킨 원격 통신의 극단에 있는 기술 형태로 이해 할 수 있다. 텔레비전은 필름을 다룬 사진과 영화와는 조금 다른 맥락에 위치하고 있다. 필름은 ‘물질-빛’을 활용하였 다는 점에서 텔레비전과 일면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필름에서 변환자(transferer)는 자연이었다. 즉, 빛 의 신호가 감광 필름에 새겨지는 과정에서 다른 행위자(agent)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적다.


  반면, 텔레비전에서 보여지는 신호들은 끊임없는 변환 과정의 개입을 요구한다. 이러한 TV의 특징들은 백 남준이 비디오-신디사이저나 생방송-위성예술을 탄생시킨 배경으로 작용한다. - 하지만 백남준이 정확 히 지적하였듯, 새로운 매체의 등장, 매체의 발전에 있어서 양의 문제는 질의 문제보다 우선시 되었다.


  한편, 백남준은 텔레비전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그는 텔레비전을 ‘멀리-보다’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 의미를 몽골 문명과 연관시킨다. 이는 비디오에 대한 연구를 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몽골의 드넓은 초원에서 ‘멀리-보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인 능력이었다. 예를 들어, 숨을 곳 없는 평원 지대의 전투에서 적의 위치를 재빨리 파악하고 대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다음 삶의 터전을 찾는 것은 유목민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말은 바로 그 정보 전달과 이동 수단을 합친 매개(자)였다.  

  

  백남준은 글, ‘말에서 크리스토까지’에서 마이클 하트와 이와무라의 주장을 인용하며 커뮤니케이션의 발명과 문명의 발전 정도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전신이 처음 등장하던 때, 전신 네트워크를 두 뇌에 비유한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thorne(1804~1864)의 다음 문장에서 그것의 의미를 좀 더 명확히 해 볼 수 있다. \


  “전기를 통해 물질세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 킬로미터에 걸쳐 진동하는 거대 한 신경이 된 것은 사실일까, 아니면 나의 꿈일까? 더 정확히 말하면 둥근 지구는 지성이 넘치는 거대한 머리 혹은 두뇌이다! 혹은 그 자체가 사고, 오직 사고이며, 더 이상 우리가 여기는 실체가 아니다!”(너새 니얼 호손, 1851)


  이러한 해석은 오늘날에 정보망과 뇌-신경망을 비교해서 설명하는 방식과 매우 유사 하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정교하게 커뮤니케이션 망 구축되어 있는지에 따라, 그 체계의 효율은 극대화 된다는 것이다. 즉, 하나의 문명은 하나의 개체인 것이다.  


  * 텔레비전은 (시각 신호를 이용한)전신탑보다, 거리, 속도 그리고 정보의 양 등, 거의 모든 측면 에서 비교 불가능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생방송 텔레비전은 전화와 같이 공시성을 담보해주 는 측면도 갔고 있다. TV의 시대는, 말과 전신의 시대보다, 즉각적이고 엄청난 양의 소통을 가능케 만든 것이다. (인터넷은?)


  한편, ‘멀리-보다’의 개념을 다르게 적용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커뮤니케이션 망을 떠올릴 때에 대개 폐쇄적인 망을 상정한다. 왜냐하면 전신탑들을 연결하는 전신, 뉴런들을 연결하는 시냅스와 같이 한 항과 다른 항을 연결하는 실질적인 ‘선’들을 우리는 은연중에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경계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으며, 정보의 이동과 소통은 그 한계 내에서만 가능하다 여겨진다.


  하지만, 이는 몽골인들의 정보 이용 방식에서는 철저히 깨져버린다. 아니, 그것은 우리의 일상 생활 에서 조차도 맞지 않다. 우리는 사물과 대상들을 다른 미디어의 도움 없이도 본래 가지고 있는 감각기관 들과 인식기관을 통해 정보들을 수용하고 처리한다. 그 구조는 폐쇄적 네트워크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미디어로서의 인간은 인위적인 (연결)선(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 선) 없이도 커뮤니케이션 망을 구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폐쇄적이지 않고, 개방되어 있다.  네트워크의 본질은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이 때 커뮤니케이션은 쌍방향적일 뿐만 아니라 복수의 선을 가정하고 있으며, 여러 층위들을 발생시킨다. 하나의 화살표 선(일방적인 선)에서는 의미나 사건이 발생할 수 없다. 의미는 다층적인 네트워크에 의해 만들어진다.



거짓말 소문 - 통제의 기술  


  새로운 거짓말은 진부한 진실보다 더 매력적이다. 정보 전달의 핵심은 그것의 질, 참/거짓 여부에 있지 아니 하다. 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놀랍고 충격적인 것(새로운 것)이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마치 항상적이고 기준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시간은 상대적이며, 심지어는 주관적이다. 그것은 이미 20세기 초 물리학에 의해 한차례 밝혀졌고, 20세기 중후반, 예술 가들에 의해 실험된 바 있다. 같은 것들이 반복될 때나 자극이 약한 상태에 시간은 균질하다. 이 때 시간은 빙판길을 내달리듯 거침없고 부드럽게 지나간다. 그러나 반복적이지 않고 자극의 세기가 평균을 웃돌 거나 밑돌 때, 시간에 제동이 걸린다. 빛이 큰 중력을 가진 별이나 블랙홀을 지날 때, 시간의 속도가 느려 지듯, 주관적인 시간의 심상 역시 그러하다. (? : 심리와 시간 속도 비례)


  놀라움의 정서는 시간에 직접적 으로 영향을 준다. 놀라움은 유입되는 정보를 ‘정상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 순간은 시간이 느려지거나 빨라진다.(요인은 무엇일까?) (선불교와 해시시) (정보의 이동은 캐치볼catch ball과는 다르다. 정보는 송신자와 수신자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보다 간편한 설명을 따르면, 놀라움을 경험한 존재는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된다. 즉, 정보는 퍼텐셜 그 자체이다.)


  전신의 탄생 이후, 전신은 국내의, 국가간의 중요한 기밀 사항들의 전달에 주로 이용되었다. 당국 자들은 전신선의 훼손, 전달 과정에서의 정보의 왜곡(교란), 정보의 누출 등에 대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정보는 조직의 판단과 행동에 변화를 유발시킨다.’ (이는 또한 사이버네틱스 이론의 핵심과 연 관이 있다. 이때에 정보는 값이 항상 참(혹은 올바름)이어야 효과적이다.)  


  그러나, 백남준은 그 정보가 반드시 참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기존의 사이버네틱스 이론 혹은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잘못(혹은 엉뚱하게) 수신-입력되거나 잘못(혹은 엉뚱하게) 해석된 정보값은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들을 낳는다고 여겨졌다. 그렇기에, 전쟁 상황에서는 서로(적)에게 잘못된 정보 를 주기도 하고, 신호를 교란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거짓 정보는 때로 (백남준의 예에서처럼) 효 과적인 명령 방식으로, 대상에 대한 통제를 강화시키기도 했다. 즉, 정보가 참이던 거짓이던간에 정보는 특정한 통제를 목적으로 한, 논리적 목적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그러한 통제 논리에 저항하고자 했다. _ 마을 첩탑의 시계 종소리에 대한 논쟁 : 첩탑의 종소리는 규칙적으로 울리며 마을 사람들의 시간을 통일시키고 행동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였다.)



심령력PSI : ‘tele-pathy멀리-경험하다.’ - ‘비-상징 소통’


  원격 소통의 역사를 살펴보면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형태 중심에서, 보다,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 전개된 것을 알 수 있다. (그 다음은?) 오늘의 정보 과학과 뇌 과학등의 발전으로 인간의 정신이 물질에 상당히 기반하고 있음을 밝혀내었다.(*신경정신 약물) 또한, 뇌의 전류가 일반 전류와 다르지 않다는 사 실 또한 발견했다. 그래서 어떤이들은 그 전류를 이용해, 뇌와 뇌를 잇는 가장 직접적인 소통의 시대도 도래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즉, 상징을 거치지 않은 소통의 시대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첨단의 발상은 오히려 오래된 것일지도 모른다. 인류는 오랫동안 상징 없는 소통을 (알게 모르게, 어쩌면 망각한 채) 실천해왔었다. 심령력PSI, 즉, 샤먼적 소통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샤먼은 고대 사회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상대를 느끼고, 문제가 있는지를 간파해내며, 상대의 고통을 치유하는 나름의 해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은 예지력을 갖고, 개인과 집단의 길흉화복을 점치기도 한다. 아주 오래전, 제정이 일치된 사회에서 샤먼은 영적 지도자이자 실질적인 통치권자였다. (고대의 샤머니즘에서 드러나는 점성술, 연금술 등에서 는 고도의 체계가 발견되곤 한다.)


  이후 샤먼의 역사는 고등 종교의 등장으로 영향력의 상당 부분을 상실했다(하지만, 여전히 샤먼 과 고등 종교간의 상호 영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으며 오늘날 정신과학과도 상당 부문 관련을 갖고 있다.) 샤먼은 권력 다툼에서 패한 집단이었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축출(expel)된 존재로, 중심에 있다 이방인으로 전락한 존재들이다. 사먼들은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자들이기 때문에, 새로 등장한 중앙-국가의 입장에서 그들은 골치아픈 대상이었다.(어쩌면 두려운 존재) 샤먼들은 역사의 오랜 시간을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고통속에서 살아 갔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 는 오히려, 샤먼들의 능력을 증폭시킨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 카타르시스, 즉 비극을 경험한 뒤의 성숙과 고양(* 한과 흥, 종합 치유 예술로서) , (조현병과 무병의 차이),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나치의 전범 행위에 대한 사죄와 보상이 이어졌지만, 집시족 만큼은 예외였다. 유랑민족이라는 점에서 집시족과 유대족은 비슷했지만, 유대족은 자신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민족의 역사와 권력(혹은 부)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집시족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집 시족들이 타 민족에 융화되지 않고 유랑을 지속 할 수 있었던 된 배경에는 아마도 그들이 가진 심령력 덕 분은 아닐까? 이러한 차원에서 백남준이 집시에 주목한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텔레-파시는 상징적인 소통 방식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매체라고 부르는 (눈에 보이는) 물질 적인 소통 방식마저도 아닐지 모른다... 영적인 차원, 혹은 의미의 차원의 소통 방식일까?)  앞서, 우리는 관념과 물질의 위상을 전복시킨, 인상주의 시대, 전신의 시대, 과학 정보의 시대에 대해 간략히 알아 보았다. 어쩌면 그 역사의 과정은 진보라 이름 부를 수 있을지 모르나, 동시에 망각된 것을 복원하는 역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험되고 감각되는 것만이 실재하고 지식의 토대가 된 다는 생각은 어쩌면 (이제) 절대가 아니라,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대의 과 학을 무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은 서로 다른 의미의 차원들을 발견해 내는데 있을지도 모른다. 백남준은 ‘멀리-보는’ 행위에 머물지 않고, ’멀리-경험하는’ 세계를 꿈꾸었다.


“어쨋든 절대로 과학적이지 않은 인종차별주의에 다시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새로운 문학 장르와 먼 미래를 다루는 공상과학처럼 오래된 과거를 다루는 네거티브 공상과학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인정받은 지식과 지혜, 상상을 자유롭게 조합하고,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발명과 발견을 풍요롭게 혼합하는 기술 을 활용해서 말이다.”
- 백남준, ‘DNA는 인종차별주의가 아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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