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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cud Dec 14. 2023

미디어&아트

예술과 커뮤니케이션 사이 그 어딘가

 요즘이야 공공미술이다 관계의 미학이다하여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을 한자리에 두는 것이 이상하지 않지만, 불과 얼마 전만하여도 예술은 장인-기인의 영역이었다. 전달될 메시지보다 예술가 내면의 예술성 표현이 더욱 중요했다. 그러나 역사의 진행이 고립에서 개방으로 나아가면서 무게추가 내부에서 외부로 옮겨오게 되었다. 


 예술은 점점 밖을 향하고 메시지의 전달에 고심하고 있지만, 정작 대중들의 반응은 무심하다. 쉽고 간편한 인스턴트 정보가 넘쳐나는 정보 홍수 속에서, 굳이 난해한 예술에 관심을 둘 이유도, 여유도 없으며 효용이 중요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술은 더욱 그들만의 리그로 인식된다. 무가치해 보이는 예술품들이 고가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니 대중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예술은 신포도Sour grape 취급을 받는다. 더군다나 소위 공공미술은 도무지 공공을 위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정부와 소수 예술집단의 나눠먹기 카르텔, 줄줄 세는 세금을 형상화한 거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가장 내밀한 영역의 외부 진출은 이렇듯 쉽지 않은 과제를 갖고 있다. 


 예술에 대한 정의는 주관에 크게 좌우되지만 동시에 예술은 역사화된 객관적 산물이다. 이 말을 풀이해보면, 첫째, 왜 유독 예술은 타 분야에 비해 정의내리기 어려우며, 예술로 분류되기까지 까다로운 선별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인가의 문제와, 둘째, 여전히 예술은 역사 일반과 상관없이 순수 개인 차원에서의 우발적 사건Happening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왜 예술 정의에 대한 질문은 늘 논쟁이 되었으며, 예술에 대한 정의가 예술사의 향방을 결정하는 분기점이 되었을까? 물론 분야를 정의하는 것은 타 분야에서도 논쟁인 이슈다. 그러나, 예술 영역 만큼 격돌하는 곳은 드물다.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질문하지 않으며,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대체로 합의된 지점이 있어, 한번 정립된 정의에는 이견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예술은 학계에서도, 현장에서도, 그 정의가 동일하지 않으며, 개개인마다 다른 정의가 존재한다. 결론 부터 이야기 하면, 예술의 모호한 정의성의 원인은 바로 예술이 '미'라는 주관적인 심상과 개념을 다루는 분야라는데 있다. 예술의 판단 유무는 일차적으로 주관에 의해 판가름 된다. 평범한 일상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감동적인 예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용될 수 있는 예술을 정의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예술사의 존재 이유이다. 


모든 사건Incident들은 역사화Historicization를 거쳐 의미 있는 사건Event으로 거듭나듯, 예술 역시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예술에 대한 오해의 시발점은 '뒤샹'에게서 물을 수 있다. 뒤샹의 <샘>은 부정할 수 없이 변기다. 평소 이용하는 변기를 두고 예술이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뒤샹의 변기는 예술이 '되었다.' 이 과정은 가히 지상 최대의 고급 사기라 할 수 있다. 피카소가 예술 형체를 파괴시켰다면, 뒤샹은 예술 형식을 와해시킨 것이다. 


 진부한 예술 정의 타령을 하려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디어 아트를 이해하기 위한, 전초로서 어떻게 미디어 아트가 성립이 될 수 있었는지를 따져보려면, 이러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사실 모든 아트는 미디어 즉, 매체를 통해 성립가능하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미디어란, 전자장치를 이용한, 특히 기계화된 매체를 의미한다. 


 그 시작은 최초로 비디오를 활용한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백남준의 이미지는 괴짜면서 국내보다 국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세계적인 한국 출신의 예술가이다. 또한 존 케이지에 영향을 받아 플럭서스의 일원으로 형식 파괴적 예술활동을 한 것은 유명하지만, 어째서 그가 비디오 아트를 개척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방영 직후의 내한 인터뷰(1984) 당시, 그는 비디오 아트를 시작하게 된 이유로 지극히 경제적 이유를 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는 이미 68년, <사이버네틱스 선언>을 통해 정보 이론을 이용한 예술 구상을 선포한 상태였다. 그리고 줄 곧 자신의 예술은 '커뮤니케이션과 예술 그 사이'에 있는 무언가라 표현하며, 노버트 위너가 주창한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줄기로, 인간화된 기계 문명을 꿈꾸었다. 


 그의 '인간화된 기계'는 첫번째 로봇 작품인 <로봇 K-456>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여지는데, 로봇 K-456은 백남준과 각종 퍼포먼스 공연을 함께 하였으며, 특히 1982년, 휘트니 전시 때는 자동차에 치이는 교통사고 퍼포먼스를 통해 "21세기 최초의 참사"라 명명하며, 네오러다이트와 같은 기술에 대한 과잉 공포를 유머로서 종식 시켰다. 


 백남준의 이러한 메시지는 오늘날 인공지능에 대한 과도한 우려가 기우일 것이라 말한다. 디스토피아적 흔한 미래 상상은 우월한 기계가 인간종을 지배하는 모습이다. 이는 과거 인류 역사에 대한 회고 학습이라 할 수 있다. 우월한 지적 생명체인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고 타 종족을 길들이거나 멸종시킨 역사가, 우리 인간들에게도 똑같이 반복될것이라는 상상이다. 언뜻 과학적, 역사적 토대에 기댄 설명이라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게 백남준의 지론이다. 


 1984, 매스 미디어를 통한 중앙화된 권력이 사람들을 조종하고 통제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미디어의 발달은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을 증대 시키고 연결을 강화하였다. 이는 미디어가 매개 즉 '사이'를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서 미디어 아트는 곧 '사이'를 형성하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미디어 아트는 예술과 커뮤니케이션 그 어딘가에 존재한다. 다시 말해, 순수한 내적 표현도 아니며, 순수한 정보 커뮤니케이션도 아니다. 따라서 미디어 아트의 지향은 바로 그 어딘가에 숨겨진 영토를 찾아 내는데 있으며, 그것이 바로 역사화'될' 미디어 아트라 할 수 있다. 


 이번 시리즈는 이러한 관점을 유지하며, 미디어 아트 사례들을 분석해보고, 보안점을 도출한 뒤, 개척해야할 미디어 아트의 영토는 또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 탐구하고자 기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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