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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cud Mar 27. 2024

포스트휴먼 시대의 자유를 상상하다

자유의 의미

0. 

포스트 휴먼 담론을 둘러싼 여러 맥락은 단지 기술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근대 이후 인간은 이성적 주체로서 자연을 정복하고 문명을 이룩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이런 휴머니즘적 세계관은 계몽주의, 산업혁명을 거치며 더욱 공고해졌으나 20세기 들어 두차례의 세계대전과 대량학살, 핵무기의 등장 등으로 인간 이성에 대한 맹목적 신뢰를 흔들어 놓았다. 과연 무참한 폭력과 파괴를 일삼는 만물의 영장을 우리는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여기에 글로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확산은 전통적인 인간관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논리가 삶의 전 영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인간의 가치는 효율성과 경쟁력으로 환원되고, 개인은 자본의 논리에 종속된 주체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 존엄성'이란 무엇을 의미하게 된 것일까?


또한 20세기 후반 이후 생태 위기의 심화는 근대적 휴머니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기후변화와 환경 재앙은 더이상 인간이 중심이된 세상이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가은 자연과 분리된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비인간 행위자들과 공존하는 네트워크의 일부로 사유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장애학 등의 담론 또한 전통적 휴머니즘에 중요한 물음을 제기해왔다. 근대적 주체 모델이 사실은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남성, 백인, 건강한 신체를 전제로 했다는 사실, 따라서 그것이 수많은 차이와 타자를 배제하는 위계적 구조라는 사실 말이다. "인간다움"의 규범 자체를 해체하는 시도가 이어져왔다. 


이렇듯 포스트휴먼 담론은 단순히 기술 발전에 따른 미래 전망을 넘어, 근대 휴머니즘의 전제 자체를 성찰하게 만드는 일종의 증상으로 작용한다. 기술은 이런 논의를 가능케 한 물적 배경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술이 제기하는 철학적, 윤리적 질문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AI가 인간다움의 기준을 흔들고, 유전공학이 자연/인공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지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포스트 휴먼 시대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떤 인간관을 다시 상상하고, 인간과 기술, 자연, 사회의 관계를 모색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단지 기술의 충격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 조건 자체를 근본적으로 묻고 새로운 윤리와 정치를 모색하는 것, 그것이 포스트휴먼 담론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정한 화두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기술적 유토피아를 맹목적으로 좇거나 디스토피아에 대한 막연한 불안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자리에서 구체적인 현실과 마주하며,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자 하는 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될 것이다. 


1. 

우리는 지금 인간과 기술, 자연, 사회의 경계가 급격히 재편되는 포스트휴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시대를 관통하는 화두는 '자유'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자유는 단지, 주어진 조건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자유의 전부일까? 


자유에 대한 전통적 관념은 인간을 자율적이고 이성적인 행위자로 상정해왔다. 계몽주의 이후 인간은 자연의 필연성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져 온 것이다. 이러한 자유의지론은 근대적 자아관에 기초한 자유 개념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우리는 근대적 자유관의 한계를 목도하고 있다. 신자유의의 확산으로 개인은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인간의 욕망마저 자본 논리에 종속되고 있다. 여기에 주어지 선택지들은 사실상 시장의 자유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을 입을 것인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 무엇을 살 것인가. 나아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은 우리의 행동을 끊임없이 추적하고 통제하는 감시 자본주의의 토대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근대적 의미의 자율적 주체란 과연 가능할 것인가?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우리 삶을 구성하는 복잡다단한 관계망 속에서 인간 행위성의 의미를 재사유화 해야하는 때이다. 우리는 결코 홀로 존재하는 고립된 원자가 아니다. 이간은 사회문화적 규범, 정치경제 체제, 테크놀로지와 같은 비인간 행위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는 존재이다. 


여기서 자유는 주어진 조건에 대한 비판적 성찰 속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단지 정해진 틀 안에서 선택하는 자유가 아니라, 그 규칙과 권력의 작동 방식 자체를 끊임없이 문제 삼는 것. 규범과 체제를 비판적으로 해체하고 전복하려는 실천 말이다. 따라서 진정한 자유란 기존의 질서와 위계에 안주하지 않고, 그 너머를 상상하고 창조 할 수 있는 역량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음악의 모든 규칙과 관습을 전복한 존 케이지의 행위는 예술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해프닝으로, 자유가 단순히 기존의 테두리 안에서 주어진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 자체를 창조적으로 재구성 하는 영역임을 일깨워 준다. 


불교의 연기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존재와 현상은 복잡다단한 인과관계 속에서 생성되고 소멸하기를 반복한다. 이는 아무리 공고해 보이는 질서와 위계도 결국 무상하며, 그렇기에 우리가 그것을 넘어설 자유를 갈망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주어진 실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너머의 비어있음을 직시할 때 비로소 자유의 지평이 열리는 셈이다. 


2. 

포스트 호먼 시대 우리에게 어떤 자유가 필요할까? 인간과 기술의 경계가 흐려지는 상황에서 '인간 고유성'의 의미는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단순히 인간이 기계에 종속되느냐 아니냐를 넘어, 인간다움의 의미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에대한 낙관이나 비관을 넘어선 성찰의 자세이다. 기술에 함몰되지 도 않고, 그렇다고 기술을 전면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인간과 기술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려는 균형잡힌 태도가 절실하다. 그 과정에서 핵심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물음을 멈추지 않는 일일 테다. 과학기술이 인간을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인간을 목적 그 자체로 간주하는 윤리 원칙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우선 포스트 휴먼 담론 자체를 비판적으로 검토해야한다. '포스트 휴먼'이란 개념 자체가 인간중심주의를 전제하고 있진 않은지, 그것이 기술결정론이나 자본의 논리에 봉사하고 있진 않은지 말이다. 담론이 취하는 권력효과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보편적 인간이란 환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포스트 휴먼 시대에서 자유란 결국타자의 자유를 향한 물음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존재들, 소외되고 억압받는 목소리를과 연대하며 더 나은 공존을 모색하는 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는 생명정치의 차원에서 재 사유되어야 한다. 단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새로운 원리르 함께 모색하는 자유로서 말이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고스트'는 그런 자유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단순히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집합적 생명력 말이다. 기계와 인간,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성되고 변화하는 흐름, 어쩌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자유란 그런 삶의 역동성 속에서 모색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3.

또한 자유란 결코 그렇게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을 상기해야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행위이자 과정인 셈이다. 지금 여기, 새로운 질서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그것을 현실로 마들기 위해 연대하는 일. 포스트휴먼 시대의 자유른 바로 그런 곳에서 시작될 것이다. 


윌는 지금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기술의 도전 앞에  RIght or Wrong을 묻기 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재발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과정에서 예술과 철학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습관처럼 굳어진 사고의 틀을 해체하고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일. 우리에게 낯선 질문을 던지고 경계의 저편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 말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에 의문을 던지고 전복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우리는 인간중심주의라는 오래된 신화에 벗어나, 다양한 존재들과 더불어 사는 새로운 세계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을 인간 해방의 도구로 활용하면서도, 그것에 종속되지 않는 지혜를 발휘하는 일. 자유를 향한 상상력의 모험은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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