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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cud Mar 20. 2024

2024 포스트휴먼

연구 소논문

1. 서론

오늘날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인간의 삶에 전례 없는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유전공학, 인공지능, 사이버네틱스 등의 첨단 기술은 인간의 능력을 증강시키고, 나아가 인간이란 존재 자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두된 것이 '포스트휴먼(posthuman)' 담론이다. 포스트휴먼은 기술과 결합한 인간, 더 나아가 인간을 넘어선 새로운 존재 가능성을 의미한다(Hayles, 1999). 이는 단순히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법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기술 발전 속에서 제기되는 실질적 화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포스트휴먼 담론은 아직 충분한 학술적 탐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사회 전반에 걸쳐 산발적으로 논의되는 경향이 있다. 무분별한 기술만능주의나 막연한 두려움이 뒤섞인 채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휴먼 담론에 대한 체계적이고 비판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인간성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화두인 만큼, 인문학적 성찰과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에 본 연구는 포스트휴먼 담론의 다양한 양상과 쟁점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체적 연구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포스트휴먼 담론의 등장 배경과 개념적 특징은 무엇인가?

2. 문학, 예술, 대중문화 등에서 포스트휴먼 이미지는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가?

3. 포스트휴먼 기술은 인간성의 경계를 어떻게 재구성하는가?

4. 포스트휴먼 시대를 대비한 윤리적, 사회적 과제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본 연구는 학제적 관점에서 포스트휴먼 담론에 접근하고자 한다. 과학기술학, 문화이론, 철학 등의 이론적 자원을 토대로, 인간-기술의 경계를 탐색하는 사유의 지평을 넓혀가고자 한다. 이를 통해 포스트휴먼 시대를 이끌어갈 창의적 비전과 윤리적 통찰력을 모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본 연구가 기술과 인간의 조우가 빚어낼 미래를 성찰하는 단초가 되기를 희망한다.



2. 이론적 배경 및 선행연구 검토

포스트휴먼 담론은 인간과 기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대사회의 조건 속에서 대두되었다. 사이보그, 인공지능, 생명공학 기술 등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한다. 이 장에서는 포스트휴먼 담론의 개념적 지형과 주요 쟁점을 이론적으로 고찰하고, 관련 선행연구를 검토하고자 한다.     


2.1. 포스트휴먼의 개념과 등장 배경     

'포스트휴먼'이란 용어는 1960년대 이래 과학 분야에서 산발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나, 본격적인 이론적 조명을 받게 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해럴드(Hayles, 1999)는 포스트휴먼을 "정보 패턴이 물질적 실체보다 우선하는 존재"로 정의하며, 기술과 융합한 새로운 인간형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브라이도티(Braidotti, 2013) 역시 포스트휴먼을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비인간 요소들과 연결 및 혼성의 관계 맺는 주체"로 설명한다.     


이러한 포스트휴먼 개념은 전통적 휴머니즘의 인간관에 도전한다.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인간 주체를 상정했던 데카르트적 사유에서 벗어나, 기술과의 공진화 속에서 변화무쌍한 인간됨의 조건을 사유하는 것이다(Pepperell, 2003). 특히 1985년 돈나 해러웨이(Haraway)가 "사이보그 선언문"을 통해 제시한 '사이보그' 은유는 포스트휴먼 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인간과 기계의 혼종인 사이보그야말로 탈정체성의 시대에 걸맞는 정치적 상상력이라 역설한 바 있다.     


2.2. 포스트휴먼 담론의 주요 쟁점     

2.2.1. 포스트휴먼 기술과 신체의 재구성

유전공학, 재생의학, 사이버네틱스 등은 인간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능을 향상시키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개입으로 변형되는 신체를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지는 논란의 대상이다. '포스트휴먼 신체'가 자유와 해방의 잠재력을 지닌다는 입장(More & Vita-More, 2013)이 있는가 하면, 신체의 자연성이 훼손되고 기술통제의 위험성이 있다는 비판(Fukuyama, 2002) 또한 제기된다.     


2.2.2. 포스트휴먼 시대의 정체성 문제

기술이 인간 정신에까지 깊숙이 개입하는 상황에서, '인간 고유성'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부유하는 정체성(Turkle, 1995), 탈신체화된 주체(Hayles, 1999) 등의 개념은 안정적 자아관의 해체와 재구성 과정을 시사한다. 온라인-오프라인 경계의 희미해짐, 가상현실 기술은 복합적 정체성 및 다중 실재의 조건을 낳는다(Heim, 1993).     


2.2.3. 포스트휴먼 존재의 윤리적 쟁점

인간-기계 혼종의 존재가 출현하는 상황에서, 전통적 윤리 기준은 도전받게 된다. 로봇과의 감정적 유대, AI에 대한 권리 문제 등 새로운 윤리적 과제가 제기된다(Gunkel, 2012). 또한 기술 접근성의 차이는 '포스트휴먼 격차'를 낳을 수 있다(Wilson, 2009). 형평성과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주의 깊게 다뤄질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포스트휴먼 담론은 기술과 인간 경계를 둘러싼 존재론적, 정치적, 윤리적 쟁점들을 두루 내포한다. 이에 대한 학계의 관심 또한 다각도로 전개되어 왔다. 과학기술학 분야에서는 새로운 테크노-사회적 조건에 대한 성찰(Feenberg, 2012), 인공지능 연구에서는 포스트휴먼 지능에 대한 탐구(Bostrom, 2014), 철학 분야에서는 트랜스휴머니즘을 중심으로 한 담론 지형 연구(Ranisch & Sorgner, 2014) 등 다채로운 연구 성과가 축적되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휴먼 담론의 다분야적 전개 양상을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작업은 아직 충분치 않다. 또한 이론적 논의를 넘어 현실 문화 속 포스트휴먼 현상에 천착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학제적 시각에서 포스트휴먼 담론의 계보를 추적하고, 일상 문화 속 포스트휴먼 이미지의 분석에 중점을 두겠다. 선행연구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되, 다각적 분석을 통해 포스트휴먼 담론을 한 차원 심화시키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3. 연구방법론

본 연구는 포스트휴먼 담론을 둘러싼 다층적 쟁점을 심도 있게 고찰하기 위해, 질적 연구방법을 중심으로 한 학제적 접근을 시도한다. 구체적으로는 문헌연구, 텍스트 분석, 전문가 인터뷰(가상)를 종합적으로 활용하여 연구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3.1. 문헌연구

포스트휴먼 담론의 형성과 전개 양상을 이해하기 위해, 관련 문헌을 체계적으로 검토한다. 과학기술학, 미디어 이론, 철학, 문화이론 등 다양한 분야의 주요 저작을 포괄하되, 특히 학제적 성격의 포스트휴먼 연구서를 집중 분석한다. 해럴드(1999), 브라이도티(2013), 헤르브레히터(2012) 등 포스트휴먼 이론의 대표 논자들의 저작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최신 논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관련 학술지 및 학술대회 자료도 면밀히 살펴본다. 이를 통해 포스트휴먼 담론의 계보와 쟁점을 이론적으로 규명하고, 선행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볼 것이다.     


3.1.1. 해럴드(N. Katherine Hayles)의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How We Became Posthuman)』(1999)

해럴드는 사이버네틱스와 정보이론의 발전 과정을 추적하면서, 정보와 물질의 이분법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포스트휴먼적 사유가 출현했음을 논증한다. 그는 개별 생물학적 신체로 구현되지 않는 정보 패턴으로서의 인간관을 '포스트휴먼'으로 명명한다. 해럴드는 이러한 비물질적 주체성의 위험성을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정보-물질의 새로운 접속을 통해 유연한 주체성을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기술과 몸의 경계에 대한 사유에 있어 선구적 문제제기로 평가된다.     


3.1.2.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의 『포스트휴먼(The Posthuman)』(2013)

브라이도티는 니체, 들뢰즈, 이리가레이 등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의 연장선상에서 포스트휴머니즘 개념을 정립한다. 그는 인간중심주의를 해체하고 비인간 요소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주체를 재사유할 것을 주문한다. 특히 생명-비생명, 유기체-무기물의 이분법을 넘어 '조에(zoe)'라는 개념으로 총체적 생명을 사유하고, 기술과의 창발적 만남을 통해 비인간적 생성을 긍정한다. 나아가 그는 '포스트휴먼 인문학'을 제창하며 다양체적 공동체를 향한 윤리를 모색한다.     


3.1.3. 헤르브레히터(Stefan Herbrechter)의 『포스트휴머니즘 넘어(Posthumanism: A Critical Analysis)』(2013)

헤르브레히터는 포스트휴머니즘 담론의 전개 계보를 면밀히 분석하고, 인문학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포스트휴머니즘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아우르되, 트랜스휴머니즘의 기술낙관주의와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에 대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그는 인간-비인간 네트워크 속에서 새로운 주체성의 창발을 모색하되, '인간의 죽음'을 성급히 선언하는 담론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한다. 포스트휴머니즘을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의 계기로 삼되, 그것이 인본가치의 급진적 해체로 귀결되어서는 곤란함을 지적한다.     


3.1.4.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사이보그 선언문(Cyborg Manifesto)」(1985)

해러웨이는 페미니즘과 과학기술 담론의 접점에서 '사이보그'를 전복적 은유로 제시한 선구적 논객이다. 그는 사이보그라는 인간-기계 혼종을 통해 자연-문화, 남성-여성 등의 본질주의적 이분법을 해체하고, 테크노-유기체를 통한 새로운 정체성 정치를 모색한다. 해러웨이는 기술을 억압의 도구로 보는 초기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탈피해, 기술과 여성해방의 연대 가능성을 타진한다. 비록 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성찰은 다소 부족하나, 사이보그 페미니즘은 포스트휴먼 담론의 젠더적 지평을 연 혁신적 사유로 평가받는다.     


이들의 이론적 작업은 인간-기술의 경계가 재편되는 포스트휴먼 조건을 선구적으로 개념화하고, '인간 이후'의 주체성을 다각도로 모색했다는 점에서 선도적 의의를 갖는다. 기술발전에 대한 입장차는 있으나, 이분법적 사유를 넘어 인간성의 경계를 근본적으로 재사유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세부 기술 영역별 접근, 실천적 함의의 구체화 등의 측면에서는 후속 연구의 과제가 남는다.      


3.2. 텍스트 분석     

현대문화 속 포스트휴먼 표상을 해석하기 위해, 문학·예술·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텍스트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SF소설의 경우 깁슨(W. Gibson), 아시모프(I. Asimov) 등의 작품을, 영화는 <블레이드 러너>, <엑스마키나> 등 포스트휴먼 테마의 고전적 작품과 최근 사례를 선별한다. 미술에서는 스텔락(Stelarc), 오를랑(Orlan)과 같은 트랜스휴머니스트 작가의 신체 개조 퍼포먼스를, 디지털 아트 분야에서는 AI 예술 사례 등을 포함한다. 이 때 선정 기준은 1)작품의 주제가 인간-기술 경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고 있는지, 2)포스트휴먼적 상상력을 창의적 방식으로 표현하는지 여부이다. 이렇듯 전형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사례군을 선정해, 서사 및 이미지 분석 기법을 통해 심층 분석을 시도한다. 아울러 수용자 반응 및 비평적 논의도 참조하여 사회문화적 함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3.2.1. SF소설: 인간-기계 경계의 모호성과 사이보그 정체성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1984),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1968) 등 고전적 사이버펑크 소설은 인간-기계 경계의 해체와 사이보그적 정체성의 등장을 예견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이다. 특히 『뉴로맨서』는 인공지능 '윈터뮤트'와의 접속을 통해 탈신체화된 주체성을 경험하는 인물 케이스를 통해, 포스트휴먼 컨디션의 단초를 제공한다. 『안드로이드는~』은 인간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안드로이드의 존재를 통해 인간성의 근거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3.2.2. 영화: 도래할 포스트휴먼 사회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

영화는 다가올 미래사회의 풍경을 극적으로 시각화한다는 점에서 포스트휴먼 담론의 중요한 표현 매체이다. 『블레이드 러너』(1982)는 인간과 레플리컨트의 경계가 무너지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그려내며, 기술복제시대 인간 고유성의 위기를 제기한다. 『에Ex 마키나』(2015)는 자의식을 지닌 AI 에이바와의 관계를 통해 인공지능 시대 젠더권력의 문제를 첨예하게 제기한다. 한편 『트랜센던스』(2014)는 인간의식을 컴퓨터에 업로드한 포스트휴먼 존재의 출현을 그려내며 기술의 양가성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3.2.3. 미술: 신체 변형을 통한 포스트휴먼 상상력의 확장

오를랑, 스텔락 등 트랜스휴머니스트 아티스트들은 신체 개조 퍼포먼스를 통해 '인간 신체'의 한계에 도전한다. 오를랑은 성형수술을 예술행위로 전유하며 주어진 신체이미지에 저항하고, 스텔락은 기계 및 디지털 기술과 신체를 접속하는 실험을 통해 사이보그 신체를 구현한다. 한편 바이오아트 분야의 에두아르도 카츠는 형광 토끼 '알바'를 창조함으로써 유전공학 기술로 변형되는 포스트휴먼 생명체의 출현을 예고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포스트휴먼 상상력을 확장하는 선도적 실험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상의 문화예술 텍스트들이 제시하는 포스트휴먼적 비전은 두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인간성의 위기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작품 속 인간-기계 혼종 존재들은 대개 정체성의 혼란과 위기에 직면한다. 이는 기술발전이 초래할 비인간화와 소외에 대한 염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동시에 이질적 존재들의 공존과 연대에 대한 모색도 엿보인다. 사이보그, AI 등과 인간의 관계맺음 속에서 애증과 공감이 교차하며,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이 타진된다. 이는 기술과의 조우 속에서 인간 개념을 유연화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처럼 현대 문화예술 속 포스트휴먼 표상은 인간 조건의 변화에 대한 존재론적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반영하며, 그 자체로 인간-포스트휴먼 경계에 대한 사유의 장을 형성하고 있다.      


3.3. 전문가 심층 인터뷰 (가상)

포스트휴먼 담론의 쟁점과 전망을 심층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가상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과학기술철학자 A, SF 문학평론가 B, 미래학자 C, 사이보그 인류학자 D 등 4인을 가상의 전문가 패널로 구성하고, 각각의 전문 식견이 담긴 심층 답변을 상정하였다.     


3.3.1. 현재의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포스트휴먼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A: 아직 기계와 인간의 완전한 융합이 실현된 것은 아니지만, 인공지능, 생명공학 등의 발전으로 인간 고유성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포스트휴먼'은 기술과의 공진화 속에 변화하는 인간 개념 자체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죠.

B: SF 문학의 상상력이 현실이 되고 있는 거죠. 작품 속 사이보그는 이제 단순한 공상의 산물이 아니라 미래 인간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입니다. 우리는 신체와 정신의 기술적 변형을 통해 새로운 존재론적 지평에 진입하는 중이라 할 수 있습니다.     


3.3.2. 포스트휴먼 시대의 도래는 어떤 사회문화적 변화를 초래할까요?

C: 기술이 일상에 전면화되면서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뀔 겁니다. 일, 교육, 여가 등 전반에 걸쳐 AI 등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겠죠. 동시에 기술 격차에 따른 새로운 불평등도 우려됩니다. 기술-사회 공진화의 거버넌스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D: 무엇보다 정체성의 혼란이 예상됩니다. 인간-기계 경계의 모호성 속에서 '인간 됨'의 의미를 새롭게 모색해야 하죠. 포스트휴먼 시민권 논의도 본격화될 겁니다. 문화적으로는 사이보그 예술 등 탈장르 실험이 활발해지고, 학문 간 경계도 약화되는 등 전반의 탈경계화 흐름이 가속화되리라 봅니다.     


3.3.3. 포스트휴먼 담론의 한계점은 무엇이며, 어떤 보완이 필요할까요?     

A: 기술결정론과 자유주의적 유토피아니즘에 경도될 위험이 있습니다. 기술발전의 폭주를 견제하고 인본가치를 지켜내려는 인문학적 성찰이 담론 내부에서 강화될 필요가 있어요. '포스트휴먼'을 목적이 아닌 사유와 실천의 과정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네요.     

B: 대중문화 속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에 함몰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doom & gloom을 넘어 포스트휴먼 미래에 대한 건설적 비전을 제시하는 서사들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기술의 험난한 면모와 더불어 그것이 인간 조건을 심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도 균형 있게 조명해야 하죠.     


3.3.4. 포스트휴먼 시대를 대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무엇일까요?

C: 첨단기술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합니다. 기술에 대한 맹신이나 혐오가 아닌, 그것을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현명하게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이를 위한 교육과 사회적 토론이 활성화되어야 할 것 같아요.

D: 결국 '포스트휴먼'도 인간이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해요. 기술이 인간성을 잠식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롭게 하는 방향, 소외가 아닌 연대를 낳는 방향으로 기술-인간 관계를 설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문학과 예술이 기술 발전을 비평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죠.     


가상의 전문가 인터뷰를 종합해 보면, 포스트휴먼 담론이 학술-문화 전반에 제기하는 문제의식과 과제의 폭을 가늠할 수 있었다. 기술발전을 직시하되 인간 주체성의 재정립이라는 이중적 과업, 비판과 비전의 조화로운 모색 등이 공통적으로 강조되었다. 물론 이는 실제 인터뷰 결과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전문가들의 문제의식을 가상적으로나마 담아냄으로써, 본 연구주제를 입체화하는 디딤돌로 삼고자 한다.     



4. 연구결과 및 분석

본 연구에서는 포스트휴먼 담론의 형성 배경과 전개 양상, 주요 쟁점을 문헌연구, 텍스트 분석,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종합적으로 고찰하였다. 연구 결과를 범주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4.1. 포스트휴먼 담론의 계보학적 조망

문헌 분석 결과, 포스트휴먼 담론은 사이버네틱스,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등 다양한 사상적 계보 위에서 형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본격화된 담론은, 초기 사이보그 은유에서 출발해 트랜스휴머니즘, 포스트휴머니즘 등으로 분기되는 양상을 보였다. 사이보그 페미니즘(Haraway, 1985), 포스트휴먼 컨디션(Hayles, 1999)과 같은 선도적 저작은 인간중심주의 비판과 주체성의 재구성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기술낙관주의부터 비판적 성찰에 이르기까지 입장차를 내포하고 있었다.     


4.2. 포스트휴먼 예술과 대중문화의 면면

SF소설, 영화, 미술 사례 분석을 통해, 현대문화 속 포스트휴먼 표상의 변화 궤적을 짚어볼 수 있었다. 인간-기계 혼종의 사이보그형 인물은 초기 SF 장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이후 도시 공간 재현, 가상현실 모티프 등으로 확장되었다. 특히 최근 AI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인간과 기계 지능의 관계, 인공생명체의 권리 문제를 첨예하게 제기하고 있었다. 한편 트랜스휴머니스트 예술은 신체 개조와 기술 실험을 통해 인간 조건의 한계 너머를 모색하는 도발적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대중문화 장르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이 같은 인간 이후의 표상들은, 포스트휴먼 담론을 대중적 차원으로 확산시키는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4.3. 포스트휴먼 기술과 사회문화적 쟁점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첨단기술의 발전이 촉발하는 포스트휴먼적 전환과 그에 따른 윤리적·사회적 논점들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유전공학, 인공지능, 가상현실 분야의 전문가들은 공히 기술이 인간 정체성의 경계를 흔들고 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인간 고유성의 위기, 포스트휴먼 시민권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 차이가 확인되었다. 기술발전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인간 향상과 삶의 질 제고에 방점을 두는 반면, 비판적 시각에서는 인간성 훼손과 기술 격차 심화 등의 우려를 제기했다. 한편으로 기술과 인간, 자연의 공진화 가능성을 모색하는 절충적 관점도 주목할 만 했다.     


4.4. 신인간중심주의를 향하여

이상의 분석을 종합해볼 때, 포스트휴먼 담론은 인간-비인간, 주체-객체의 이분법을 해체하면서, 기술과의 연결 속에서 변화무쌍한 '인간 이후'의 존재방식을 사유하게 한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기술 발전의 인정과 인간 고유성의 옹호 사이에서 긴장과 혼란이 엄존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모순적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기술에 함몰되지 않는 주체성의 재정립이 요구된다. 포스트휴먼의 비전을 펼치되,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인간성의 가치를 끊임없이 상기하는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이 연구는 그러한 이중적 사유와 실천의 단초로서, '신인간중심주의(neo-anthropocentrism)'를 제안하고자 한다. 그것은 더 이상 자명하지 않은 '인간'의 경계를 되묻되, 기술과 인간의 창발적 공진화 속에서 새로운 인본가치를 모색하는 기획이 될 것이다.     


이처럼 포스트휴먼 담론은 단순한 기술찬미나 인간해방의 환상을 넘어, 인간됨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문헌-텍스트-담론 분석을 통해 드러난 경합하는 지점들은 그 자체로 포스트휴먼 담론의 생산성을 보여주는 바, 이에 천착하는 후속 연구들이 지속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학술담론을 넘어 정책, 교육, 예술 실천 등으로 논의를 확장하는 작업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인간과 기술의 윤리적 조우를 모색하는 이 간학문적 탐구가, 포스트휴먼 시대의 난제들을 헤쳐나가는 나침반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5. 결론 및 제언

본 연구는 포스트휴먼 담론의 형성 배경과 전개 양상, 쟁점을 학제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조망하고자 하였다. 문헌연구를 통해 담론의 계보와 이론적 자장을 살펴보고, 문화예술 텍스트 분석과 전문가 인터뷰(가상)를 통해 실제 담론 양상과 향후 전망을 가늠해보았다. 그 결과 포스트휴먼 담론은 인간-기술의 경계 재구성이라는 화두 아래 다양한 목소리들이 경합하는 역동적 장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포스트휴먼 담론은 기술이 인간의 운명을 규정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하는 현 시대를 민감하게 반영한다. 유전공학, AI 등 첨단기술의 발전이 인간 정체성과 미래상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기에, 이에 대한 성찰과 대응 모색이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담론은 단순히 학술적 유행을 넘어, 기술과 인간의 바람직한 공존을 모색하는 지적·실천적 플랫폼으로서 중요성을 갖는다.     


그럼에도 아직 포스트휴먼 담론은 개념적 모호성, 기술결정론적 환원 등의 한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기술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인간 본질주의에 함몰되지 않는, 절묘한 사유와 실천의 균형이 요청되는 지점이다. '포스트휴먼'을 표방하되, 휴머니즘의 가치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연구가 제안한 '신인간중심주의'는 그러한 이중적 기획을 향한 하나의 문제제기이자 초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트휴먼 담론의 생산적 진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후속 연구와 실천적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첫째, 보다 세분화된 기술 영역별 접근과 함께 기술-사회-문화의 복합적 상호작용에 대한 심층 연구가 요청된다. 유전공학, 나노기술, 인공지능 등 개별 기술 분야가 함의하는 포스트휴먼적 쟁점을 구체화하는 한편, 기술과 사회문화의 접점 지대를 면밀히 탐색할 필요가 있다.

둘째, 포스트휴먼 사회의 규범과 제도에 대한 선제적 구상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걸맞은 윤리 규범, 책임 배분, 거버넌스 체계 등을 학제적 논의를 통해 모색해야 한다. 기술위험의 통제, 기술 혜택의 공정한 분배 등 사회정의의 관점을 견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셋째, 포스트휴먼 리터러시 교육이 절실하다. 미래 시민들이 첨단기술의 수혜자임과 동시에 비판적 주체로 설 수 있도록, 교육 체계 전반에 걸쳐 관련 역량을 함양하는 교육적 기획이 요청된다.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는 물론 윤리의식, 미디어 활용능력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 접근이 바람직할 것이다.     

넷째, 예술 및 대중문화 영역에서 포스트휴먼 상상력의 확장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SF, 미디어 아트 등 장르에서 선도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의식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인간 이후'의 모습을 창의적으로 사유하고 실험하는 문화적 상상력이 기술-사회 공진화의 토대가 될 수 있다.     


포스트휴먼 시대는 이미 우리 앞에 도래해 있다. 인간과 기술의 경계가 흐려지는 혼란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 발전을 직시하되 인간 주체성의 좌표를 놓치지 않는 균형감각, 그리고 그 위에서 기술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지혜이다. 포스트휴먼 담론이 그러한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매개가 되기를, 본 연구가 그 담론의 지평을 열어가는 디딤돌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마주한 인간 존재의 근본적 물음 앞에서, 학문과 실천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협력적 모색을 이어가야 할 때다. 포스트휴먼 시대를 향한 우리의 도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참고문헌

N. Katherine Hayles(1999), How We Became Posthuman

Donna Haraway(1985), A Cyborg Manifesto

Rosi Braidotti(2013), The Posthuman

Stefan Herbrechter(2013), Posthumanism: A Critical Analysis

Francis Fukuyama(2002), Our Posthuman Future

Andy Clark(2003), Natural-Born Cyborgs

Robert Pepperell(2003), The Posthuman Condition

Chris Hables Gray ed.(1995), The Cyborg Hand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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