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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휴양지 좋아했네

주 1회 셀프청탁 에세이

by 기맹드

당신에게 5일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휴양지로 갈 것인가, 관광지로 갈 것인가?

나는 완전한 관광파였다. 동남아 섬에 가서 해변에 하릴없이 누워있거나 마사지샵에 내 몸을 맡기는 그런 유유자적한 여행 말고, 유럽에서 역사와 문화를 오감 체험하며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여행류를 좋아했다. 나는 그런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했고, 내 인생에서 휴양지에서 돈을 쓸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휴양지로 놀러 가는 건
쉽게 말해 '돈이 아까웠다'.

고금리에 대출 연체자가 늘어나면서 야근과 특근에 지쳐가는 신랑의 모습을 보니 문득 '떠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겨난 게 두 달 전이다. 회사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신랑 덕에, 나는 연스레 집안일에 시간을 더 많이 쓰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 세탁기에서 젖은 옷들을 꺼내어 건조기에 막 던져 넣고 한숨을 푹 쉬는 내 모습을 보며 '나도 스트레스가 많구나' 깨달았다.

그리고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비용과 시간 상으로는 일본이 가장 부담이 덜했다. 하지만 가이드 없이 교토 청수사나 오사카성 같은 관광명소를 찾아다닐 자신도 없었고, 사람 많은 도쿄 시부야거리를 헤매는 건 생각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그냥 가만히 쉬고 싶은 게 분명했다.

싱가포르도 후보군 중에 하나였지만 5박이나 쓰기엔 도시가 작서 패스했고, 홍콩은 낭만적이었지만 닭장 아파트를 눈으로 목격하는 순간 간 사회에 경멸이 생길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괌 어때?
가족단위로 가기에 좋대요."


괌? 내 기억 속에 완전한 휴양지였다. 괌이나 사이판 이런 곳은 쇼핑하러 잠깐 나갔다가 리조트 안에서 하루 종일 놀고먹고 빈둥댈 수 있는 곳 아닌가.

나는 휴양지에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여행지에서도 개미처럼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프로 관광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젠 좀 게을러져도 되지 않을까.

현생을 잠시 벗어나 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

남편과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숙소에서 내려다 본 투몬베이 전경


괌까지는 인천에서 4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았다. 투몬 지역으로 진입하자, 제주도의 중문관광단지보다 상업시설이 더 잘 밀집되어 있는 곳이라 짧게 2박 3일 여행으로 와도 손색없을 것 같은 생각을 했다.


경기도 투몬시 같았다. 관광객으로는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숙박업소에도, 식당에도, 렌터카 업체에도 한국분들이 상주했다.


달러 환율이 많이 오른 탓에 경비 규모는 생각보다 후덜덜했다.

어차피 쉬러 온 거, 그래 쓰자.


화롯가의 마시멜로우처럼 금방 녹아져내려 버릴 것 같은 자세를 하곤 진정한 휴양의 맛에 빠졌다.

넷플릭스만큼 흥미롭거나 유튜브만큼 버라이어티하진 않지만 자연을 내 두 눈에 가득 담고 있는 것으로 세로토닌이 차오르는 느낌이다.


귀여운 우리집 남자


설거지를 하지 않은지 5일째,
청소를 하지 않은지 5일째다.

콜라를 마시고, 맥 앤 치즈를 퍼먹고,
감자튀김을 주워 먹고, 맥주를 흡입한다.
밥보다 빵, 면을 더 먹고 있다.

해변 러닝 후
태평양 바닷물에 몸을 던지고 나면
'살 것 같다'는 실감이 든다.


평소 같으면 엄두도 못 냈을 나의 일탈이다.

예비 임산부 몸에 나쁘다는 음식 리스트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신랑의 해맑은 웃음이, 내가 아주 좋아하는 그의 귀여운 미소가 자주 보인다.

그는 텐션이 좋을 때 말이 평소보다 '더' 많아지는데, 다행이다 싶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 뿐이다.


눈 호강


7월에 있을 1차 시험관 시술 전에

이렇게 휴양지에서 쉬길 잘한 것 같다.

역시 몸도 중요하지만

마음 편한 게 최고다.


살짝 탄 내 피부와 두꺼워진 내 뱃살이 '잘 쉬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기 싫지 않다.


그래.

나 휴양지 좋아했네.


야자수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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