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회 셀프청탁 에세이
스포츠 예능 프로를 좋아하는 나는 몇 주 전 종영한 <야구여왕>의 여운을 달래고자, 넷플릭스에서 키워드 '야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게 된 <고시엔: 꿈의 구장>.
이 다큐멘터리는 일본 고교야구가 얼마나 치열한지, 한 인물을 따라가며 예선 준비 과정을 보여주는 100분짜리 이야기이다.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주요 관찰 대상은 고시엔 본선 진출을 위해 20년 넘게 야구감독을 하고 있는 한 고등학교 교감이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가업을 이을 생각을 하지 않고, 나이 든 어머니와 누나에게 그 자리를 맡긴 채, 자신이 몸담은 학교에서 최고의 야구인들을 길러내기 위한 지리멸렬한 과정을 매년 반복한다.
감독은, 훈련받은 학생들 수십 명 중 최정예 20명을 뽑아 학교 대표 자격으로 지역 예선을 치른다.
기준 체중에 도달하지 못해 탄수화물을 남들보다 곱절은 더 먹었지만, 주전 경쟁에 밀려 결국 엔트리에 뽑히지 않은 고3 학생에게 감독이 말한다.
이 분함을 잊지 마라.
절대 잊으면 안 돼.
엉엉 울던 학생은 감독에게 불려 간다. 하지만 감독은 그의 눈물을 닦아주려 부른 것이 아니다. 그에게 미안함이나 동정을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그 분한 감정을 절대 잊지 마라고 한다.
미래가 있는 자에게 현재의 좌절은 '영구실패'가 아님을 아는 감독은 아이의 미래를 지지해 주는 사람으로서 '어른답게' 조언을 한 것이다.
저런 조언을 듣는 학생은 당장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안 그래도 서러운데, 한 번도 모자라 두 번 죽이는 저 감독의 말들이 너무 뼈아프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저것이야말로 저 나이대에 정말 필요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어진 일들을 뭉툭하게 받아들이며
하던 대로 살던 대로 지내다가는,
미래의 자신에게 미안해하게 될지도 모르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어른'의 나이가 된 나에게는
더 이상 저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난 승부욕이 강하고 자존심도 엄청 세서,
스스로 모자라다고 생각되면 엄청 큰 자괴감을 느끼는 아이였다. 실제로 '실력이 없는' 춤에 있어서도, 늘 무리들 속에 끼어 반 대표로 나가려고 했다.
운동을 너무 못해서 운동 잘하는 아이들을 동경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런 뻔뻔함과 경쟁심이 날 지금까지 이끌어온 것일 수도 있겠다.
어른의 시기에는 삶의 원동력이 좀 다른 것 같다.
인생의 반전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으며, 부단한 노력 끝에도 원하는 결과는 오지 않을 수 있음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결과를 목 빼고 기다리기보다는, 차라리 과정을 즐기고 '뭐든 좋게 받아들이려는' 수용적 태도가 오히려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다.
골프도 잘 치고 싶어서 연습을 하긴 한다만, 프로 선수로 데뷔할 것도 아니고, 이걸로 먹고살 것도 아니니 과하게 몸을 써서 어디 다칠 바에야 그냥 못 치면 못 치는 대로 그냥 명랑하게 뻔뻔하게 라운드 하는 나.
오늘도 일본어 공부는 목표한 만큼 다 하지 못했지만, 내일 하면 되니까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겠다는 전교 100등의 마인드로 살고자 하는 나.
과배란 주사를 제시간보다 2시간 늦게 맞았지만, 이 하나 때문에 망쳐질 거면 어차피 안 될 회차였을 거라며 마음 편히 먹고 스스로 책망하려는 자아를 '사요나라' 해버리는 나.
물론 작고 사소한 것이 쌓이고 쌓여 '멋진 나'를 만들기는 하지만
그 작고 사소한 것이 이미 훌쩍 커버린 '나'를 완전히 망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는
(비)합리적인 나.
원칙만 갖다 대던 삶에서
'예외사항'을 부여하는 내 삶도 참 괜찮다 싶다.
그래도 되는 나이가 어느덧 훌쩍 지나고
웬만한 일엔 꿈쩍도 않을 수 있게 돼버렸지만
무난한 하루의 끝에
문득 그리워진 뾰족했던 나
그 반짝임이.
- 김동률의 『노래』
https://youtu.be/f3pnrg2gBmM?si=lMyi5UR5JCHBORJz
뾰족하지만 그래서 반짝였던,
그때가 가끔은 그립다.
힘들어서 기억에서 지워버린 그때가 말이다.
그때의 나를 보면
'결국은 끝나'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하지만 절대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