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아이 갖기(6)

월 1회 셀프청탁 에세이

by 기맹드
9개월만에 다시 시험관 시술을 받았다.


작년 11월 퇴사 후 겨우내 잘 지냈다. 서울 갈 일이 없으니 스트레스가 절반은 사라진 느낌.

가장 좋은 것은 알람 없이 아침에 일어나도 된다는 것이었다.


아침마다 부랴부랴 천안아산역 가는 것이 챌린지처럼 재밌기도 했지만, 역시 '긴장감'보다는 '느긋함'이 좋다.


평소 일하던 시간의 4분의 1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보냈다.

첫 3개월은 혈백수였다.

'제대로 된 사회생활'하지 않는 스스로가 한심하고 뒤처지는 기분이 들어, 시키지도 않은 일어공부를 하루에 7시간씩 하기도 했다.


스스로 혹사하며 '나 잘 살고 있다' 자위했다.


하지만 그런 열정과 의욕은 차차 잦아들었고,

연초 회계감사까지 잘 끝내자 비로소 제대로 된 백수가 되었다.




따뜻한 기운이 조금씩 솟아나는 3월,

나는 시험관 시술을 다시 시작했다.

작년 계류유산으로 소파술 한지 7개월만이다.


이번엔 지역병원이 아닌

경기도에 있는 대형병원에 가기로 했다.

국내 난임치료의 양대산맥인 그 병원의 간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렜고, 희망이 샘솟는듯 했다.


겨울에 잘 쉬었으니 몸도 좋아졌을 거란 기대를

조금 했다. 그동안 신랑도 술을 끊었으니,

이제 병원에서 시키는대로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과배란 주사를 시작하고 채취날이 되었다. 정보수집가인 신랑도 디데이 필승을 위해 잘 준비한 것 같았다.

작년엔 미세수정으로 인위적으로 정자를 난자에 주입했는데, 이번에는 자연수정이란다.

세상에! 뭔가 나아졌다는 게 기분 좋았다.


그리고, 작년엔 6개였던 난자수가 이번엔 12개.

수정 후 5일 배양까지 살아남은 아이들이 최종 2개.


난자도 하나, 정자도 하나만 만나면 되니

사실 갯수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어쨌든 양적으로 작년보다 나아졌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엄니가 주신 달걀. 모두 유정란이다




나는 최종적으로 몇 번의 시험관 시술을 거쳐 아이를 만나게 될까.

내 아이도 저어어기 어딘가에서 기어오고 있겠지.

우리도 만나긴 만나겠지.

근데 대체 언제 만날지 모르니까, 세상에 수많은 난임환자들이 애타게, 절박하게, 오늘도 임테기를 해보고 악몽을 꾸는 거겠지.


혼자 살기로 했다가 느닷없이 인연을 만나

결혼한 나처럼,

그렇게 느닷없이 내 자식도 만날 수 있을거야.




나는 배양기술도 뛰어나고, 손기술도 뛰어난 한국 의료진들을 믿는다.

그 의료기술이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내가 특별하고 신비로운 존재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나는 10번의 채취과정은 겪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래도 문턱 하나만 넘으면 짠하고 나타날 것 같은 내 아가를 위해, 11번째 수면마취에 잠드는 엄마도 분명 있을거다.


나도 아마 그러지 않을까?

내가 진짜 두려운 건

임신이 안되면서 자꾸 작아지는 내자신을 마주할까봐이다.


10번째는 커녕 세번만에 지레 겁먹고

'우린 안될거야.' 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은 갖고싶지 않다.

결과야 안될 때 안되더라도,

결코 약해지고 싶지는 않다.

어떤 난관이 와도 지혜롭게 생각하고

무너지더라도 잘 일어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기도했다.

'빨리 임신 되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보다,

'어떤 일이 생겨도 이겨낼

힘과 용기를 제게 주세요.' 라고.


그리고 조급함이 생길 때마다

떠올린다.


낳는 것보다 기르는게
더 어려울거야.

그러니 정신 차리자.
아직 시작도 안했어.


벚꽃 본 다음 날 배아이식을 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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