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연인

일주일 파리 여행 Day 6

by 김보

Bonjour! 말 그대로 좋은 아침이다. 특히 월요일 아침은 여행자에게 쾌적하지 않을 수 없다. 평일의 첫날 불쌍한 직장인들이 떠난 빈 거리는 기분 좋은 한산함이 채운다. 우리는 풍경을 독차지하며, 맛집이 한적해지고, 어깨빵에서 한층 자유롭다. 다만 소매치기도 출근했기 때문에 경계는 늦출 수 없다. 이렇게 행복한 월요일 오전이라니. 나도 한때는 이 시간 한껏 불행하던 직장인 중 하나였기에 되찾은 월요일이 더욱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우리 여행자 말고도 월요일 아침 덕을 보러 나온 이들이 있다. 저기 커플들이다. 드레스와 정장을, 커플티와 신발을 맞춰입고, 때로는 사진작가와 함께 퐁뇌프 다리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 다섯 커플이나 지나쳤다. 그러고 보면 파리는 유럽의 도시들에 비해서도 유난히 연인들이 많다. 로맨틱한 이미지 덕에 신혼여행도 많이 온다. 지난 주 이탈리아의 한 숙소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호스트는 다음 목적지로 파리를 간다는 내게 말했다. “파리를 혼자 가서 뭐해? 그 곳은 연인들을 위한 도시야.” 드라마 <파리의 연인> 또한 이러한 이미지에 편승되어 정해진 로케이션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렇게 수식어가 붙는 도시들이 있다. 신사의 도시 런던, 열정의 세비야… 어쩌면 도시의 표정은 그 도시의 색채와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 절제된 색감 때문에 런던의 중년들을 신사라고, 뜨거운 색감 때문에 세비야를 열정적이라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파리 앞에 붙은 ‘로맨틱’은 어떤 색감에서 오는가? 6일 동안 시내 곳곳을 걸어 다녀본 바로, 파리의 색감은 한 마디로 ‘부드럽다’였다. 조형과 건물들은 그 모양이 화려할지언정 일정한 파스텔톤으로 이어져 있고, 해가 쨍쨍한 날에도 항상 옅은 색의 센느강과 가로수 덕분에 눈 부시지 않다. 이 곳의 저녁은 땅거미가 아주 천천히 내려앉아 로맨스를 즐길 충분한 시간을 내어준다. 색 뿐 아니라 지나는 사람들의 소음 또한 차분한 톤이다. 이 곳 말씨는 참 둥글구나. 여기 프랑스어 특성 상 조곤조곤한 발성 위에 많은 이응 받침들이 굴러서 귀에 시끄럽게 걸리지 않는다. “알겠다”는 대답도 “Oui, Oui(위, 위)”라니, “Si, Si(씨, 씨)” 선명하고 높은 톤의 스페인과 대조적이다. 이렇게 채도가 빠진 파리 거리는 기꺼이 연인들의 뒷 배경이 되어준다. 그러면 오직 눈 부신 두 사람만이 이 도시의 주인공이 되고, 그 둘은 몇 번이라도 쉽게 핑크빛 분위기에 빠지는 거다.


그럴싸한 내 가설이 마음에 들었다. 혼자 걷고 있는 나도 주변이 핑크빛으로 보이는 듯도 하다. ‘나중에 신혼여행은 파리로 가도 좋겠는데.’ 파리가 마음에 스며드려는 찰나, 찬찬히 옮기던 시선이 아래를 향한다. 으악. 내려다 본 바닥에는 새똥과 개똥이 촘촘하다. 극성 파리 예찬론자라도 절레절레할 ‘똥 피하기 게임’ 끝판왕이다. 어떻게 새똥까지 사랑하겠어, 파리를 사랑하는 거지. 이 와중에 똥 빛깔도 가만 보니 파스텔 톤이다. 괜히 가만 봤다. 인상이 그만 찌푸러진다. 저 로맨스에 빠진 파리의 연인들이 부디 이 똥밭을 미처 못 보고 지나치기를. 내가 신혼여행을 오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거리 물청소 주기를 좀 늘려줘야겠다. 주 3회로, 아니 5회 정도로. 좀 빡빡 깨끗하게. 파리 당국의 긴밀한 협조를 바랍니다.

22.03.28 퐁뇌프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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