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파리 여행 Day 7
비가 온다. 파리가 흠뻑 젖었다. 지난 6일 내내 구름 없이 화창하더니, 파리의 이런 면도 보여주겠다는 듯 아침부터 쭉 비가 촉촉하게 내린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면 평소에도 ‘백색소음 빗소리 1시간 반복’ 같은 걸 집에 틀어놓을 정도다. 바닷소리를 닮은 시원한 빗소리도 좋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도 좋다. 비를 피하느라 비워진 거리의 한산함은 덤이다. 역시나 파리의 비 오는 거리도 너무 마음에 든다. 어제와는 또 다른 매력이다. 말하자면, 날이 좋은 파리는 모네의 그림 같은 화사함이고, 비에 젖은 파리는 고흐의 그림을 닮은 짙은 감성이다. 그들도 자신들이 파리에서 느낀 색감을 화폭에 옮겼을 테다. 그렇다면 파리를 보고 그들의 그림을 떠올린 나는 지금 고흐와 모네와 같은 공감대 속이라 할 수 있겠다.
파리는 또한 뮤즈들의 도시다. 누군가는 고흐를 쫓아, 누군가는 헤밍웨이를 쫓아, 또 누군가는 파리를 사랑했던 어떤 자신의 뮤즈를 쫓아 이곳에 온다.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를 사랑했기에 그들의 일상 또한 이 곳에 그대로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뮤즈를 닮고 싶어서, 내적 친밀감을 얻고 싶어서 그들의 공간을 쫓는다. 피카소가 자주 갔던 카페, 헤밍웨이의 단골 술집, 생택쥐베리가 글을 쓰던 서점… 상점들이 딱히 홍보하지 않아도 찾아와 줄을 서있다. 때로는 디테일하게, 그들이 앉았던 자리 위치까지 알아와서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단골 메뉴를 시킨다. 그들과 같은 시선이 되어보고 싶은 거다. 나도 피카소와 같은 시선이 되어 보고 싶어서 그가 자주 앉던 테이블 앞에 앉았다. 피카소는 여기 앉아 무얼 바라봤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다 어떤 영감이 이 자리에서 세상에 나왔을까. 우리 말로 치면 ‘기 받아가고자’ 한참을 앉아 그를 떠올렸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뮤즈가 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의 공적을 꿰고 생각과 말들을 외우고 내 공간을 쫓게 만드는, 그런 존경을 가질 수 있을까? 막연하게도, 나는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느니, 널리 이롭게 한다느니 그런 대의명분이 아니라, 어떤 강렬한 색깔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고 싶다. 타인의 영감이 되는 것 만큼 가슴 뛰고 멋진 일도 없을 것 같다. 나는 나로서 브랜드가 되고 싶다. 고흐처럼, 피카소처럼. 어쩌면 그래서 회사를 나오게 된 걸 지도 모르겠다.
훗날에 누군가 날 쫓아 내 사랑하는 공간에 온다면 무얼 느낄까? ‘김보성이 자주 갔던 수누리 해장국’, ‘김보성이 글을 쓰던 강남역 할리스’. 음… 아무래도 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원래 클래식은 시대가 흘러간 후에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두고 봐라 언젠가 내 소박한 취향이 누군가의 영감이 되고 성지가 될 날이 올테니. 우선은 비가 오니 국물이 당긴다. 지난 주 만난 Y가 저기 15구에 감자탕 잘한단다. 오늘 저녁은 감자탕에 소주 한 잔 하면서 영감을 좀 찾아야겠다.
22.03.29 카페 드 플로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