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

Day 14 아조프라 ~ 산토 도밍고

by 김보


역마(驛馬): 사주에서 살의 한 종류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는 운명을 지칭하는 말이다. 과거 역(驛)에서 쓰이던 말들이 한 군데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역을 떠돌아녔던 것에 비유한 용어이다.


웬 개가 짖고 있다. 언제부터 짖고 있던 거지. 아직 창 밖은 어둡다. 폰을 확인해보니 이제 막 새벽 네 시 반이 되었을 뿐이다.

어젯밤 묵은 이 알베르게는 대단히 규모가 큰 공립 알베르게였다. 최소 금액이 육 유로(약 팔 천 원) 정도로 정해져있을 뿐, 자유롭게 숙박비를 지불하는 소위 ‘도네이션 알베르게’다. 저렴한 가격과 큰 크기 때문인지 이 마을을 지나가는 순례자들은 모두 이 방에 모인 듯하다. 난데없는 개 짓는 소리에 사람들이 몸을 뒤척거린다.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그 뒤척이는 소리가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의 함성 마냥 솨아아 하고 쏟아진다.

오늘은 ‘산토 도밍고’라는 마을까지 간다. 그 앞 뒤로 이십 킬로 근방에는 하루 쉬기에 적당한 마을이 없어서, 아마 이 곳의 대부분이 오늘 저녁 다시 만나게 되지 싶다. 숙소 앞에는 브라질에서 온 단체 순례자들이 서로 빙 둘러 손을 맞잡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도 몰래 곁에 서서 기도를 올린다. 오늘도 심신의 안녕과 깨달음을 주세요. 아멘.

개는 숙소의 사람들이 다 깰 때까지 알람을 자처하다가 전부 기상하고 불을 켜고 나서야 깔끔하게 어디론가 퇴장했다.



원래 아침을 절대 먹지 않는 내가 꼬박 꼬박 이곳에서 챙겨먹는 이유는 오로지 목이 말라서다. 다섯 시 새벽 시간에 나와서 길을 걸으면 당연하게도 문 연 식당이 없다. 문제는 이 나라는 편의점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듯 해서, 자판기도 없는 시골이면 아침에 물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마을 군데군데 음수대가 있지만, 일전에 유럽 여행에서 물갈이로 고생을 했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차라리 조금 참고 걷는다. 일곱시 쯤 되면 순례자들을 위해 문을 연 식당이 하나 둘 거리 위에 나타난다. 메뉴는 거의 통일성 있게 생과일 오렌지 주스 한 잔에 샌드위치(라고 해 봤자 퍽퍽한 빵 사이에 하몽 햄 같은 걸 찔러넣은 형태) 하나 정도. 순례자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 삼 유로(사천 원 대 초반)쯤 제공하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걸 먹은 날이면 걸을 때 힘이 조금 더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꼭 한국에 돌아가도 아침을 챙겨 먹을 것처럼 아침식사가 좋아졌다. 잠깐 이 마을에서 아침을 먹으며 여행을 정비하기로 한다.


어디 보자, 현재까지 총 마을 마흔 군데를 넘었다. 그만큼 오래 걸었다는 실감도 나지만, 이제 초반에 들렀던 마을은 떠올리려 해도 이름조차 가물가물해진다. 당연하다. 단 보름 동안 마을 마흔 군데라니, 지금껏 다닌 어떤 여행에서도 이렇게 잦은 이동을 한 적은 없다. 그 이동의 대명사 유목민마저도 한 군데서 며칠 간은 머물러 숨을 돌렸을 텐데, 하루가 멀다하고 머무른 마을을 떠나버리는 순례자는 어쩌면 굉장히 특별한 여행자인 것이다. 내가 게임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자꾸 까미노를 게임에 비유하게 되는게 이런 점 때문인 것 같다. 단시간에 다양한 곳에서 경험치를 쌓는, 꼭 어드벤처류 RPG 게임 같은 특징 말이다. 이런 점이 세계인을 매료시킨 까미노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까미노는 특히 어릴 적 즐겨 하던 포켓몬스터 게임과 닮았다. 나는 주인공 레드로서, 마을에서 마을을 옮겨다니고 막 풀숲이고 들판이고 맵 위를 계속 걷는다. 그러다 보면 지나다니는 행인이라던지 마을 주민 같은 NPC들이 막 말을 건다. 근데 대부분 말이 똑같다. 프로그래밍된 것 처럼, ‘하우짓 고잉?’, ‘하우 워즈 투데이?’ 그러다 어떤 행인은 복잡한 말을 건네며 옆에 붙는다. 화면이 바뀐다. 갑자기 어지러운 음악이 막 자동재생되면서 긴장감이 감돈다. 그는 야생 포켓몬이다! 내가 준비한 기술 목록은 ‘굿’, ‘웨아유 프롬’, ‘와츄어네임’ 이딴 ‘몸통박치기’ 같은 것 밖에 없는데... 그러나 걱정마라. 머리가 하얘지거든 필살기 '부엔 까미노'를 외치고 탈출하면 된다. 오늘도 포켓몬 센터 같은 알베르게에서 하루 밤 회복하면 뾰로롱하고 화면이 암전되었다가 다시 풀 HP가 되어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자 똑똑히 봐라.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자신이 MBTI 검사에서 N(직관형)이라고 우기는 S(감각형)가 있다면, 이 정도 망상력은 되어야 N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걷는 내내 저절로 이딴 상상을 떠올리면서 막 실실거렸다.


산토 도밍고까지 거리가 멀지 않고 시간이 많은 까닭에 마을이 보일 때마다 멈춰서 쉬었다. 한 마을의 식당에서 야외 식탁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노부부 한 쌍이 관심을 보이며 온다. 나는 왠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노인들의 슈퍼스타다. 노인은 일주일 전 팜플로나에서 날 본 적이 있다고, 그 때도 그림을 그리지 않았냐 한다. 그 날은 길거리 재즈 공연을 하던 악사들을 그리던 날이었다. 그림을 보여주니, 분명 그 날이라며 손뼉을 치며 반가워한다. ‘사이먼’이라며 자기 소개를 하기에, 나는 ‘보’라고 했다. 회사를 관두고 귀국 일정 없이 이곳에서 이렇게 매일 그림을 그리고 다닌다며 짤막한 자기 소개를 했다. 그랬더니 ‘오, 유 아 보헤미안!’ 하는 것이다. 보헤미안? 이름이 ‘보’라고 해서 각운을 맞춘건가? 어렴풋이 들어본 적 있는 단어라 뉘앙스는 알겠는데 정확한 뜻을 몰랐다. 나는 사이먼에게 산토 도밍고에서 다시 만나면 그림을 주겠다고 약속한 후, 그가 떠나자 보헤미안을 검색해봤다.



과거에 보헤미안이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십 오 세기 쯤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 모여 살던 집시들을 프랑스인들이 그저 ‘보헤미안(보헤미아 사람들)’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된 명칭이다. 그러나 십 구 세기 들어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사회적 관습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떠돌아 다니는 예술가, 문학인을 가리키는 지칭어가 된 것이다. 맥락 상 사이먼이 나더러 ‘집시 같은 놈!’이라고 하진 않았을 테다. 그는 나의 팬이니까(아니다). 아마 내가 바람따라 구름따라 세상을 여행하며 예술을 하는 젊은이 쯤으로 보였나 보다. 보헤미안… 작년에 내 인생 첫 사주를 봐준 강남의 점쟁이가 기억이 난다. 결과를 듣기 전부터 그간 살아온 인생을 유추하였을 때 충분히 나올 것을 예상한 사주가 있었다. ‘역마살’. 여기저기 떠돌아다닐 운명. 그러나 점쟁이의 진단은 좀 더 단호했다.


“이건 여기 저기 많이 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한 군데에 있으면 엉덩이가 못 견딜 팔자예요.”


사주를 맹신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크리스찬이고, 태어난 시일 같은 게 운명을 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역마살의 기운과 물의 성질이 너무 강하다는 조합으로 내린 진단이 너무나 큰 공감을 불러왔다. 늘 집에 오면 전원을 꺼버린 듯 모든 걸 멈췄다가, 밖에 나가 카페라도 가야 뭐라도 시작이 되던 습관, 일주일의 다섯 날을 사무실에 있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주말에 반드시 근교라도 여행을 다녀와야 하는 마음의 움직임. 그리고, 문제가 연쇄적으로 터지자 바로 지구 반대편으로 도피해버린 지금의 내 모습까지. 역마의 말 뜻대로, 나는 역에 주차되어 있는 말 마냥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사주를 알 리 없는 낯선 나라 노인 눈에도 그렇게 보일 정도면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사주나 운명을 차치하더라도, 나는 늘 집이 지겨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그 길로 독립한 후 다시 본가에서 지내는 일은 없었고, 내가 얻은 나의 집에서도 잠 잘 때 머무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심지어 제주 한 달 살기 때마저, 마지막엔 그 멋진 게스트하우스가 지겨웠으니까. 집 뿐만 아니라 회사도 그랬고, 사람도 그랬고, 나를 둘러싼 일상이 모두 그랬다. 지겨운 마음이 힘겨울 때, 여행은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일상을 떠나 며칠 낯선 곳에서 지내다 보면, 집이, 일상이 조금은 새롭게 보이는 것이다. 실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해도, 나는 그 리프레시를 통해 낯설어진 일상을 다시금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견딜 수 없이 지겨운 건 그 무엇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정체된 내 모습은 헌짝처럼 느껴졌다. 까미노로 떠나온 가장 큰 이유도 지난 주, 지난 달과 똑같은 내 상태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순례자 복장을 하고 매일 새로운 마을을 다니면 내 모습이 매일 다르게 느껴질 테니까. 그럼 나는 돌아가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을 테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여행이란 단순히 사치나 낭비일지도 모른다.

혹은 우리 영혼 속에는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흉터처럼 남아서 자꾸만 간지러운 것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나는 여행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왔다.

우리는 떠났을 때 비로소 돌아갈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윤성용, <인생의 계절> 게으른 여행법 中


알고 있다. 임시방편으로 떠나온 여행들이 결국 더 큰 자극의 갈증으로 돌아와 스스로 목 매게 만든다는 것을. 그건 전혀 보헤미안도, 자유도 아니다. 역에 매인 말을 누가 자유롭다고 말하겠는가. 그 말이 비록 팔도를 다니는 말이라 해도. 나의 역마는 이처럼 늘 내 역의 애증에 대한 반발심으로 만들어져 왔다. 싫증이 잦아 자유의 이름을 빌려 역만 주구장창 바꿔왔다. 역들을 자꾸 도피처로만 쓰는 바람에 나의 역마는 망가진 것이다.

이번 까미노에서, 내가 자유를 얻을 방법은 오직 이 묵은 애증을 벗는 일 뿐이다. 일상에 대한 착시를 얻기 위한 도피 같은 것 말고, 진짜 내 일상을 사랑하기 위한 마음의 변화. 집시의 방랑과 보헤미안의 자유 그 한 끗 차이도 자신의 철학을 사랑하는가에 달려있었을 테다. 자유는 결국 역 안에, 언제고 내 안에 있었음을.





Day 14 산토 도밍고

212 / 779 km

44 / 213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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