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안 믿어서 운명이 사라졌나

Day 25 베르시아노스 ~ 맨시야

by 김보


운명을 안 믿어서 운명이 사라졌나.

집으로 가면 너와 헤어질 테니 집에는 안 갈래.

그냥 그 바다에 있을래.

그냥 그 공원에 있을래.

김사월, <너무 많은 연애> 중



발레리아가 말했다.

“우리는 저기 다리 아래에서 잠깐 타로를 볼 거야. 잠깐 쉬었다 갈래?”

여기서 ‘우리’는 그의 남자친구인 대니엘을 함께 지칭한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이 쉬운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과 무관하게 나도 다리가 아팠기에 알겠다고 했다. 저기 멀리서 가부좌 같은 걸 틀고선 진지하게 뭘 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을 뿐이었다. 몇 분 후 까미노는 재개되었다.


“발레리아, 그런데 타로를 본다는 게 무슨 말이야?”


내가 물었다. 그녀가 내밀어 보여준 것은 그냥 내가 알고 있는 타로 카드 한 뭉치였다. 그녀의 출신인 페루답게 그림이 이국적이긴 했지만은.


“타로는 내 운명을 알려줘. 타로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어.”


“그러면 너는 늘 걷다가 이런 식으로 자주 타로를 봐?”


“그렇지, 갈래길이 나오거나, 오늘 어디까지 가야할지 모를 때, 아니면 어떤 생각이 해결되지 않을 때에도.”


“지금은 어떤 생각? 이번에도 타로가 답을 알려줬어?”


“무슨 생각인지는 프라이버시지만, 응, 타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챘어.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 말이 그녀의 전공이라는 바이오엔지니어링과 너무나 괴리가 느껴졌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집중하는 신념에, 겨우 처음 본 내가 찬물을 끼얹고 싶진 않았다. 그의 남자친구 대니얼에게도 점괘를 묻고 싶었지만, 유난히 말수가 없는 그와는 두 마디 이상 이어지기가 어려웠다.


내가 말했다.


“발레리아, 한국에도 타로 같은 것이 있어. 아마 오리엔탈 문화일 거야. ‘PALJA’라는 거 들어봤어?”


발레리아는 눈을 휘동그레 떴다. 간혹 서양인이 동양에 관심을 가질 때가 있는데, 그것의 방향은 대부분 ’신비’에 가깝다. 어쩌면 성경에 별을 보고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의 이미지에서부터 출발했을지도. 내가 얼른 부연설명했다.


“팔자, P-A-L-J-A, ‘팔’은 Eight, 자는 ‘Character’ 그러니까 여덟 개의 글자라는 뜻이지. 사람마다 태어날 때 가지게 되는 고유의 글자야. 그건 한국인이 타로보다 더 강력하게 믿는 운명이야. 누구나 자신만의 팔자가 있어.”


나는 어쩐지 그녀가 내 말에 집중하며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이 즐거웠다. 그녀는 한국인이 새해마다 그 사주팔자로 일 년을 기대하고, 신문이나 웹사이트에서 매일매일 자신의 운을 체크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워했다. 아니, 동질감 같은 것을 느끼는 듯 했다. 생각해보면 그녀가 수시로 타로를 보는 것이 어쩌면 신문에서 ‘몇 년 생, 무슨 띠, 돈이 들어오는 날’ 같은 것보다 훨씬 능동적이며 개인맞춤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팔자라는 건 어떤 글자들이 있는거야?”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대니엘도 가세했다. 그러나 나 또한 정통한 역술인도 아니었고, 심지어 사주팔자를 알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무 말이나 할 수는 없었다. 사실은 근 일 년 사이 관심이 생겨 이것저것 찾아보던 나였다. 얼른 웹사이트로 검색해본 뒤 간단히 일러줬다.


“너한테 정해진 동물과 계절이 있고, 물, 불, 나무, 흙, 금 같은 성질이 있어, 그리고 ‘살’이라는 운명이 있어. 이것은 타로의 ‘카드’처럼 역방향으로 작용하기도, 정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나의 운명적인 특징 같은 거야.”


이제 그들은 나를 동양의 역술가 쯤으로 보는 듯하다. 억울하게도 마침 나는 수염이 길었고 머리를 풀어헤쳤다. ‘동양의 역술가 보 선생’ 심지어 뭔가 그럴싸할 것 같았다. 나는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 심한 죄책감이 들고 말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그들의 눈이 본 적 없이 반짝거렸기에.


“우리한테도 팔자가 있을까?”


“몰라 그건, 그런데 봐줄 수는 있어, 태어난 연, 월, 일, 시로 보는 거라서.”


대니엘이 본 적 없던 흥분된 목소리로 말한다.


“보, 우리 잠깐 저기 멈춰서 팔자 봐줄 수 있을까? 우리한테 너무 중요한 일이야.”


열화와 같은 성화에 친구가 알려준 사주팔자 앱을 깔았다. 순간 이 스페인 낯선 땅에서 또 다른 낯선 나라의 사람들에게 사주팔자를 봐주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사주팔자 같은 이야기를 뭐하러 꺼내겠는가. 걷는 내내 운명을 점치는 이런 사람들한테가 아니라면.


“발레리아, 너는 신해일주고, 대니엘, 너는 을해일주. 둘다 돼지인데, 너는 파랗고 너는 하얘. 내가 역술가가 아니라서 풀이를 제대로 할 수는 없지만, 사주에 ‘지살’과 ‘역마살’이 가득해서 너희는 까미노에 올 수 밖에 없었을 거야. 그건 세상을 떠돈다는 의미거든. 나도 마찬가지고.”


더 설명해주기도 어렵고, 그들이 자꾸만 더 눈을 반짝이는 바람에 부담스러워서 얼른 번역본을 건넸다. 제일 설명이 많은 포스팅 글을 골라 영어로 번역해 보여줬다. 그들의 리액션은 외국인이라고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어떤 구간에서 ‘오… 아이 노, 아이 노!’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이즈 잇 미?’ 하면서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한 십 분 정도 골똘히 그 글을 들여다보더니, 에어드랍으로 이 화면을 캡처해서 보내달란다. 막 박수를 치며 ‘아이 러브 잇’ 해대는 것이, 자기 팔자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나는 궁금해졌다.


“그런데 말이야, 너네 이걸 믿어? 한국인 누군가는 미신이라고 말하기도 해. 나도 일부분 그렇고.”


대니엘이 말했다.


“그럼 보, 너는 너의 운명을 믿어?”


나는 얼버무렸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어떨 땐 운명이란 게 없었음 하기도, 운명이 나를 도와주기도 한다고.


“보, 운명은 자신감 같은 거야. 믿지 않으면 사라져버려. 내가 마음에 드는 운명을 계속 지니고 살아가는 방법은, 내가 정말 그럴 운명이라고 계속 생각하는 수 밖에 없어,”


아하, 알겠다. 이들이 타로를 계속 보는 이유, 그것은 가위바위보나 랜덤 다이스 같은 ‘운’을 믿는 게 아니었구나. 그들은 자신의 운명 중 마음에 드는 것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렸다. 이거, ‘자신감’이라는 거, 자신은 어떤 운명이든 잘 될 거라는, 자신의 답을 의지하는 답정너 같은 거. 결국 그 ‘답정너’도 정해놓은 답을 강하게 믿는 힘이었다. 결국 자신을 믿는 힘이었던 거다.


나는 인정하고 말았다. 좀처럼 나에 대해 믿지 못했던 날들을. 결국 이 까미노도 나를 믿지 못해서 떠나오게 되었다는 사실도. 나는 내가 좋아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적어도 날 싫어하던 부장의 말보단, 날 찍어누르던 내 절망적인 상황보단, 무조건 잘 될 거라는 나를 믿었는데, 그 땐 누구든 자빠질 어려움도 나는 이겨낼 거란 강한 내 운명을 믿었는데. 슬픈 나의 운명은 내가 믿지 않은 까닭에, 어딘가 다리 밑에서, 두갈래길에서 살펴봐주지 않았기 때문에, 쓸쓸히 사라져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대한 사람이 되겠다는 어린 날 나의 다짐은 결국 미래의 나를 믿는 힘이었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건 겁을 많이 먹은 지금의 나 뿐이었다.


나는 그 감정이 충만해져서 조금 혼자 걷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은 알겠다고 했다.


모처럼 영어로 이야기를 많이 나눈 날이었다.






Day 25 맨시야 데 라스 무라스

444 / 779 km

89 / 213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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