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3 메세타 고원
단단해져야 할 내 글들은 뻣뻣해지고 있다. 내용이 진부하게 느껴진다. 어김없이 슬럼프가 오는 걸까. 그러나 이번만은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단단히 슬럼프 대비책를 세웠다. 동기 부여를 위해 한국에서부터 점찍어놓은 좋은 작가들의 글 스크랩들이 있었고, 여행이 고되어 글을 못 쓴다고 핑계댈까봐 쉬고 싶을 땐 언제든 이동 없이 쉬도록 여행 컨셉을 느슨하게 잡아두었다. 글을 쓸 동력은 충분하다. 다만 지금의 뻣뻣함은 연재를 업으로 하는 모든 이들이 만나는 애로사항이다. ‘소재 고갈’. 여행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은 참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비슷비슷한 풍경을 보면서도 매번 새로운 것들을 써낼 수 있는걸까.
까미노에게 미안하지만, 이젠 전부 다 아는 풍경이다. 아는 밀밭, 아는 건물, 아는 성당, 아는 알베르게… 감탄은 오래 전에 말랐다. 오감이 적응을 하면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지겨움일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멍때리거나 바닥을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간간히 지나는 다른 순례자들 얼굴에도 매너리즘이 잔뜩 묻었다. 까미노의 팔백 킬로미터 내내 어떤 신선한 깨달음과 설렘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다면 초반 백 킬로미터와 마지막 백 킬로미터를 제외하고선 무엇으로 다채로움을 체험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곰이라도 마주치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태도가 괘씸했던 걸까. 까미노는 오늘 화가 잔뜩 난 모양이다.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 마을까지 18km’. 보통 오 킬로미터마다 마을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길어도 십 킬로미터 정도. 그러나 십팔 킬로미터란 지금 이 알베르게에서 무려 네 시간이나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거리다. 어제 그 사실도 모른 채 마을 딱 한 개만 더 가겠다고 떠난 S가 고통스런 전언을 남겼다.
‘형님 여기 18킬로 동안 레스토랑이고 푸드트럭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어요. 심지어 그늘도 없구요, 그냥 죽닥치고 걸어야 돼요.’
이 곳은 순례자들 사이에서 악명 높기로 유명한 ‘메세타(meseta)’라는 지역. 메사(mesa)는 책상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마치 책상처럼 지대가 높고 평탄하여 (고위평탄면) 붙은 이름이다. 스페인의 면적 반절 가까이가 메세타로 이루어져있을 만큼 넓게 분포한 지역으로, 글로만 봐선 날씨도 서늘하고 걷기 좋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고난이도의 이유는 그 광활함에서 오는 ‘지겨움’에 있다. 순례자들에게 메세타는 ‘시험의 길’이라고 불린다. ‘이 끝 없는 생 밀밭을 왜 계속 걸어야만 하나?’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 의문은 결국 다음 대도시인 ‘레온’까지 대중교통을 타게끔 유혹한다. 그럴 만도 하다. 이 똑같은 풍경을 점프한다고 해서 아무도 알 리 없고, 누가 타박하지도 않을 테니.
그렇게 나에게도 메세타의 시험이 시작되었다. 십팔 킬로의 초반은 시험의 첫 문제들이 그러하듯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탁 트인 시야가 시원하다고 생각했고 땅의 질 또한 잘 골라져있어 발도 전혀 괴롭지 않았다. 페이스도 일 킬로에 십이 분대가 꼬박꼬박 나오길래 이대로 멍 때리며 걷다보면 곧 도착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고통이 가중된다. 분명 같은 십이 분대의 페이스인데도 다음 킬로까지 페이스 알림이 아까보다 더 멀게 느껴졌고, 햇볕의 강도라던지 어깨와 발바닥의 자극 같은 것이 점점 선명하게 다가왔다.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느낌. 결국 한 십 킬로 언저리 쯤에서, 그 ‘지겨움의 고통’이 극심해져 도저히 어디 멈춰서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되어버렸다. 나는 불과 지난주에도 사십 이 킬로를 걸어낸 사람이었으나 오늘은 반의 반도 안되는 거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언젠가 들은 중국의 물고문이 떠올랐다. 이 고문은 겨우 눈을 가린 채 눕혀놓고 똑같은 간격으로 이마에 물방울을 떨어뜨린다는 방식으로 ‘역사상 가장 잔인한 고문’이라는 타이틀을 따냈다. 처음엔 그저 물방울이 거슬리는 정도의 강도이나 점차 망치 같은 것이 머리를 내려치는 고통이 느껴져, 정신적 충격과 수면 부족으로 사망하게 된단다. 자극이 반복되면 더 큰 자극으로 느끼게 되는 심리학 원리를 이용했다니, 그것은 어쩌면 메세타가 주는 시험과 비슷한 모양이지 않을까. 나는 지금 햇볕에 오래 노출되어 흐물해져 버린 고무 슬리퍼처럼 메세타의 한 가운데에 힘 없이 녹아내려져 있다.
그늘도 없는 이 지겨운 밀밭 한 켠에 앉아서 지겨운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글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조차 이렇게 지겨워하는 글들을 누군가가 즐거이 읽어줄 수 있을까? 아무 에피소드 없이, 기승전결도 없이, 오직 걷는 행위가 전부인 오늘 같은 날이 자극이 될 것이 뭐가 있다고. 그것은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내가 원래 글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글을 쓰기 전까지, 글은 ‘맨밥’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다채로운 반찬도, 술술 넘어가는 국물도 없는 그냥 슴슴한 맨밥. 영상이나 그림 같은 다른 컨텐츠들은 보는 재미도 있고 자극도 있어서 훅 입맛을 돋구지만, 글은 그 정렬된 모양도, 전달 방식도 단조로워서 맛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책 좀 읽어라’는 조언은 꼭 밥을 꼭꼭 씹어먹어야 한다는 말처럼 진부하고 거부감 들게 느껴졌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가 얼마나 지겨움을 못 견디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훌륭한 글들이 얼마나 많은 인내로 빚어진 것인지도. 그림도 영상도 없는 활자만의 조합으로 만들어내는 담백한 감동은 만들기 무척 까다롭고 고통스럽지만 어떤 매체보다 큰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 누군가의 평생 마음에 간직하는 한 줄, 인생을 버티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부담스럽고 어려워서, 그 고뇌가 지겨워서 나는 자주 넘어졌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지난 슬럼프들은 전부 그렇게 만들어졌다. 글이 성장하는 방법은 한 걸음 한 걸음 반복 뿐이건만, ‘이 쯤에서 그만 걸어도 상관 없는거 아닌가’ 하고. 아마 그렇게 쉽게 미끄러진 것들이 채 담백한 글이 되지 못하고 삼키기 힘든 부담스러운 글들이 되어버린 것 같다.
메세타만은 꼭 이겨내리라. 오늘 주저앉은 나를 일으켜내는 건 오기다. 이 밀밭에도 어딘가 끝이 있을 거고, 이제는 그 끝이 정말 보고 싶어서. 이 무거운 걸음들은 그 끝에 서봐야 의미를 알 수 있을 거다. 이 여행기 또한, 마지막 편까지 써내지 않으면 의미를 알 수 없겠다. 내가 무엇 때문에 기록을 시작했는지, 아니 애초에 이 순례길을 왜 떠나왔는지도. 오늘따라 이 글과 걸음 둘 다 너무나 무겁다. 지금 나를 짓누르는 것들은 내가 지금껏 가볍게 포기해온 수많은 일들일 테다. 메세타, 이 넓은 책상 위에서 질 수 없는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Day 23 레디고스
391 / 779 km
80 / 213개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