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2 포브라시온 ~ 까리온
수염은 감는 걸까 닦는 걸까?
문득 아침에 세수를 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것도 ‘카락’이라면 샴푸를 칠해야 할 것이고, ‘터럭’이라면 폼클랜징을 칠해야 할 것이다. 잘라버릴 것이 아니니까 ‘쉐이빙폼’은 확실히 아니다. 이딴 쓸데 없는 생각의 출발은, 아주 빽빽해진 그것이 입술을 덮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수염을 제대로 말리지 않고 출발하면 걷는 내내 여전히 이슬 같은 게 맺혀있어서, 비듬이라도 생길까 걱정이다. 잠깐 고민을 하다가 폼클렌징으로 세안 한 번, 머리와 수염에 샴푸질 한 번, 총 두 번 감고 닦았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짓인가. 이게 다 S와 떨어지게 된 까닭이다. 어제 숙소를 따로 예약하면서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혼자는 작은 것에도 생각이 많아진다. 정확히 말하면, 그냥 잠이 덜 깬 모양이다.
“좋은 아침이야.” 그런 말을 한국에서 해본 적이 있었던가. 그것은 아주 기분이 좋은 날이나 아니면 왠지 센치해지는 날, ‘오늘 날씨가 참 좋죠’ 아니면 ‘달이 참 밝네요’ 같이 ‘나 감성적인 사람이오’라고 드러내고 싶을 때나 일부러 쓰는 말이었다. 그러나 여기 이 서양 사람들은 그런 말을 잘도 한다. 유럽이나 미국 어디서든 이른 아침 길을 걸어보라. 세계 각국의 ‘굿모닝’을 듣게 될 것이다. 이 곳 스페인은 ‘올라(Hola)’ 뒤에 바짝 붙여서, ‘올라 부에노스디아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일반이다. 그것은 ‘안녕, 좋은 아침!‘이었으나 어쩐지 여기 사람들은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하루 웬종일 그 말을 한다. 지금 이 꼭두새벽에 내 옆을 걷고 있는 노인이 그렇다. ‘올라 부에노스…!’ 이렇게 뒤를 뭉개는 것이 포인트다. 아마 시간대를 구분하는 게 귀찮았던지, 군대에서 ‘잘 못 들었습니다?’가 ‘슴다?’로 변해가는 것과 같은 프로세스던지, 그럴 거다. 아무튼, 지나는 사람마다 꼬박꼬박 그 말을 넣어주는 탓에, 나도 그냥 지나가기 뻘쭘하여 ‘부에노스’하고 에코처럼 더블링을 치고 있다.
가로등도 하나 없는 새까만 새벽, 이렇게 일찍 나오게 된 까닭은 이 앞으로 진짜 아무 것도 없는 고원이니, 낮의 높게 뜬 태양을 견딜 수 없을 거란 알베르게 주인의 충고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다섯 시에 출발하는 마을은 은근히 무서웠다. 야생동물 주의 표시가 몇 걸음 마다 있다. 며칠 전 에스피노사의 노부부가 말한 동물 가족 리스트를 하나 하나 떠올리던 중 그 끝에서 이 노인을 만났다. 스마트폰 라이트를 켤 줄도 모르는 것인지 더듬더듬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나를 인지하고는 반가운 듯 마구 스페인어를 쏟아내는 그는 영어도 할 줄 모르는 마드리드 토박이었다. 심지어 두 손에는 잔뜩 무언가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제스처나 어떤 뉘앙스를 파악하는 것 조차 어려웠다.
나는 눈치껏 스마트폰의 라이터를 켰다가, 뭐라뭐라 하면 라이트를 껐다가, 다시 뭐라뭐라 하면 왼쪽으로 갔다가, 나중에는 에라 모르겠다, 그냥 씨씨(Si, ‘알겠다’의 스페인어)하며 고개를 반사적으로 주억거렸다. 그 사실을 아는가. 우리는 긍정의 의미, 혹은 인사 의미로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끄덕’거리지만, 이들은 그 반대로 턱을 위로 처드는 게 긍정의 표현이자 인사다. 우리 나라 표현으로 묘사하면, ‘덕끄덕끄’가 되는 것이다.(이것이 처음에는 오해가 되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인사를 받을 때 턱을 처들길래 ‘느그’로 해석하여, ‘니 갈 길이나 가라’ 식으로 곡해하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어느 즈음 서로 소통을 포기하고 그냥 나란히 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의사 표현은 그저 이 노인의 발걸음 속도를 맞춰 주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걸었다. 어느덧 하늘은 데낄라 선라이즈를 끼얹었다. 노인이 갑자기 우뚝 그 자리에 멈춘다. 말을 하는 대신, 살짝 웃으며 바지를 살짝 걷어 자신의 무릎을 보여준다. 양쪽 무릎엔 꿰멘 수술 자국이 길게 나있다. 그 뉘앙스를 짐작해보자면, ‘내 속도 맞추지 말고 먼저 가게 젊은이’ 정도였을 거다. 아, 나에게 폐가 되기 싫어서 그 불편한 다리로 무리한 속도를 내고 있었나 보다. 우리는 서로 발걸음을 맞추며 소통하고 있던 거다. 아니, 속도를 배려하던 것은 오히려 노인 쪽일지도. 한참을 멀어져 가다가 뒤를 돌아봤을 때 노인은 그 자리에 앉아서 무릎을 주무르고 있었다. 아주 한참 동안.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반드시 다음 마을에 가겠다, 작전명 ‘비포 선라이즈’ 그것은 나의 오늘 목표였다. 노인과도 멀어지고 시야도 밝아진 이상 지체할 것이 없었다. 나름대로 어제 프로미스타 가는 동안 메세타 고원의 지옥 같은 볕을 맛 봤기 때문에, 내 발걸음은 누가 쫓아오는 사람이 없음에도 잰 걸음이었다. 스페인의 여름 태양은 정말이지 재앙처럼 뜨겁다. 까미노 유경험자들이 그 고통을 회상하는 이유는 777km의 초장거리 때문이 아니다. 등에 진 무거운 짐과 무더운 태양이 난이도를 한껏 높여버리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것을 제외하면 그 난이도가 산책 수준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많은 순례자들이 짐을 다음 숙소로 택배 부친 다음 새벽에 후딱 진도를 빼버린다. 나는 짐 탁송 대신 아침식사나 중간 마을 구경을 스킵하기로 한다. 이 속도라면 열 시 반, 단 두 시간 후면 다음 마을에 도착할 거다.
여전히 거인 마냥 긴 나의 그림자를 한참 바라보며 걷다가, 이것이 다 무슨 의미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놈의 현타(현자타임)가 항상 문제다. 현자는 아주 사소한 현상도 질문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결국 사서 고생을 하게 만든다.
‘그렇게 쾌적하게 다음 마을에 가고 싶었으면 택시나 버스를 타지 그랬어.’
‘까미노까지 와서 체득하려던 게 겨우 <태양을 피하는 방법>?’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은 배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 -존 A. 쉐드’
이딴 생각들이 머리를 지배하자 재촉하던 걸음도 감흥을 잃었다. 나는 런닝머신에서 내려온 사람처럼 급히 속도를 줄였다. 작전명까지 짠 내가 비겁해 보였다. 바로 그 때 ‘거 갈 때 가더라도 제로 콜라 한 잔 정도는 괜찮잖아?’ 현자타임 세포가 센스 있는 기안을 올렸고, 갈증이 가장 먼저 합의했다. 이윽고 다리와 어깨가 피로함을 호소하며 병렬 합의한 후, 다음 마을 바에서 쉬는 것으로 머리가 결재를 최종 승인했다. 콜라 한 잔 하며 그림이라도 한 장 그리고 가기로. 이 정도면 까미노의 이유인 자유로움을 어느 정도 지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그 덕에 여기서부터 장르가 바뀐다. 어드벤처에서 로맨스로.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올 때면, 나는 어김없이 <비포 선라이즈>를 꺼낸다. 그것은 내 인생 최초의 열 번을 돌려본 영화로, 로맨스와 낭만은 물론 동시에 현실성, 그러니까 언제든 나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충족시켜서 마음 한 켠에 늘 간직하게 만든 위대한 명작이었다.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운명이라는 단어 외엔 설명할 수 없는 순간. 누구도 머무르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 허름한 바에서 남녀가 서로 다시 만날 극악의 확률. 까미노를 차치하고라도 난데 없이 겹쳐진 우연의 여러 꺼풀. 내가 지금 이 곳에 서서 입을 좀처럼 뗄 수 없는 이유가 설명할 다른 단어가 없다면, 그 단어는 아마 ‘운명’이 맞을 것이다.
“하이, 잇츠 유, 보.”
어제 한 작은 마을 바에서 만난 여자다. 오늘처럼 잠깐 쉴 겸 바 입구 계단에 앉아 어김 없이 제로 콜라를 들이키고 있을 때,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혼자 왔냐며. 부르고스에서 출발했다는 그녀는 어제가 까미노 이틀 차였다. 올해로 이십대가 꺾인 스물 여섯 오스트리아 사람으로, 웃을 때 가지런한 치아가 매력적인 여자였다. 나는 여행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주섬주섬 아이패드를 꺼내 몇 장을 보여줬다. 한참을 유심히 보던 그녀는 자신의 가방에서 또 무언가 주섬주섬 꺼낸다. 미니 팔레트와 물붓, 몰스킨 스케치북이었다. 주로 사람을 그리는 나에 비해 그녀는 사람이 없는 풍경을 그린다고 했다. 주책인 것을 알지만, 일순간 두 사람의 그림을 합친다면 까미노가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그딴 로맨틱한 생각을 했다. 나는 그림 말고도 매일 글을 쓰는 중이라는 말에, 그녀도 빼곡한 다이어리를 꺼내 보여준다. 단 세 장이었지만. 이번 여행이 끝나면 책을 내고 싶다는 말에, 그녀는 직업이 출판사 에디터라고 한다. 이거 뭐, 내가 선창으로 소리를 메기면, 후창으로 소리를 받는 소리꾼처럼 서로 쿵짝거렸다. 이 말을 서양인인 그녀는 이해 못할 테니, 나는 ‘데칼코마니’로 그 감회를 설명했다.
“<비포 선라이즈> 봤어? 그거 배경이 오스트리아 비엔나잖아. 내 최애 영화야.”
“당연하지. 나도 몇 번이나 봤는지 몰라.”
나는 쏟아지는 공통사에 그만 들떠서 오버하고 만다. 그 때의 동력은 우리가 같은 감정일 거란 자신감 반, 영어가 서툴어서 아무 말이나 했다는 모르는 척 반이었다.
“우리가 레온에서 다시 만난다면 그건 운명일지도? 같이 레온에서 그림을 그린다면, 내 이번 까미노의 베스트 추억일 거야.”
글로 쓰자니 부끄러워지는 것을 보니 분명 오버가 맞다. 나는 그런 말을 잘도 던지면서 그녀의 사진을 받아갔다. 연락처는 따로 주고받지 않았다. 그것은 운.명. 이니까. 그리고 어젯밤 나는 열한시가 넘도록 이적의 <비포 선라이즈>를 들으며 그녀의 그림을 최대한 열심히 묘사했다. 담장에 꽃잎 하나하나까지.
그런데 이렇게 바로 다음 날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제 바로 그리길 잘했다. 그림을 건네받은 그녀는 잔뜩 톤업된 목소리로 기쁨이나 감사를 표현했다. 이 순간이 언제나 그림을 그리며 가장 짜릿한 순간이라곤 하지만, 이런 경우엔 내 특기가 다른 것이 아닌 ‘그림’인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적어도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오스트리아 여자가 내가 전하고 싶은 뜻과 정성을 한눈에 모두 이해할 수 있을테니까.
우리는 그림을 매개로 좀 더 이야기를 나누며 다음 마을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오스트리아의 국어가 독일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녀의 언어 순위가 독일어-네덜란드어-스페인어 다음 순으로 영어라는 것도 뒤늦게 알았지만, 잘도 이 영어에 서툰 동양인의 말들을 들어주며 여러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사용하는 갤럭시와 삼성 TV, 그리고 내가 아는 비엔나 커피와 클래식 음악에 대해. 사실 공통사를 삭삭 긁어모았지만 그렇게 다채롭지는 못했고, 언어의 장벽 때문인지 나중에는 인구 수나 주로 먹는 음식 같은 표면적 주제로 넘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나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고, 목표대로 해가 높이 뜨기 전 열한시 반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는 각자의 숙소에 짐을 두고 다시 만나 천천히 마을을 걸었다. <비포 선라이즈>와 달리 채도가 쨍했고 땀이 삐질삐질 났지만 상관 없었다. 저쪽 뒤편에 강이 있다고, 같이 가잔다. 그녀는 챙겨온 비키니를 꺼내서 갈아입었다. 나는 그걸 어떤 식으로 쳐다봐야 예의가 맞는지 순간 뇌정지가 와서 그냥 폰 보는 척 했다. 물론 온 카톡은 없었다. 그대로 망설임 없이 물에 들어간다. “컴 인” 보통의 서양 남자들은 이 때 웃통만 벗고 그대로 멋있게 들어가는 듯 했다. 나에게는 두 가지의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내가 웃통을 훌렁대기엔 비루한 비만형 상체였고, 다른 하나는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이다. 겨우 머리를 굴려 생각해낸 변명이 ‘나 옷이 이거 하나 뿐이야’였다. 졸지에 물을 무서워하며 동시에 옷 한 벌 밖에 없는 드럽게 겁 많은 남자가 되었다. 어디 커다란 돌 위에 앉아 발만 물에 적시면서 수영하는 그녀를 한참 바라봤다.
까리온은 생각보다 크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강을 지나 산책로를 걷고 몇 군데 푸드트럭을 구경하고, 이곳의 로컬 라이프를 살펴보다가, 문득 이것은 데이트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외국 사람과 이렇게 오랫동안 단둘이 어딘가를 걸어본 적이 있었던가. 아마 내가 영어를 잘했다면 더 가까웠을 수도 있을텐데. 어느 순간 하는 말들이 아름다움이나 지나는 사람을 묘사하는 표현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이 하루가 못내 아쉬워진다. 영어 공부를 게을리 했던 것이 가장 후회가 되었던 순간이다.
“들어가서 샤워를 좀 해야겠어. 우리 다시 만나자.”
“그래, 나는 요 앞 카페에서 그림 그리고 있을게. 스케치북 가지고 나와.”
짧은 산책을 마치고 잠깐 샤워하러 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인연은 모두 끝이 났다. 그것은 내가 밤 아홉시까지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앉은 자리는 마을 한가운데 광장의 카페, 그 중에서도 안 보일 수가 없는 스탠딩 테이블이었다. 이 날 나는 까미노 중 가장 많은 진토닉을 마셨다. 아마 갈증이 좀 났던 모양이다. 그녀를 다시 발견한 건 해가 덜 진 저녁 숙소로 돌아가던 길, 다른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즐겁게 떠드는 모습이었다. 나는 찌질이처럼 왔던 길을 되돌아서 먼 길로 숙소에 들어갔다. 숙소에서 혼자 맥주를 몇 개 더 마셨다. 노을의 끝무렵까지.
<비포 선라이즈>로 시작해 <비포 선셋>으로 각자 끝난 하루 끝엔 묘한 쌉쌀함이 혀끝에 남았다. 아니면 그냥 싸구려 캔맥주의 홉 찌꺼기일지도 모르겠다. 일출에 웃고 일몰에 울고, 역시 스페인의 태양은 자비가 없다. 아니 그런데 뭐 내가 누구 만나려고 까미노에 왔게? 여기서 해야할 게 너무 많은 나는 지금 전혀 한 개도 아쉽지가 않다. 그저 같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었음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 밖에. 그래도 내가 금사빠는 아니지 않나? 확실하게 하자고. 나는 금세 사랑에 빠지기 전에 빠져나왔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Day 22 까리욘 데 로스 콘데스
368 / 779 km
78 / 213개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