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에 백수가 되었다

평균에서 튕겨나온 어느 만 30세의 이야기

by 김보

기어이 백수가 됐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책에서 '기어이'라는 말은 불가항력적인 인생의 변곡점에 어울린다고 했다. 나는 그 해석이 퍽 마음에 들어서 굳이 백수가 된 기념으로 '기어이'를 붙여보았다. 반오십년 간 고도의 사회화 훈련을 받은 김보성 2호가 꽤나 이래저래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결국 1호가 이길 운명이었다. 괜찮다. 나는 1호의 운명을 기꺼이 존중한다.


또한 기어코 30대가 되어버렸다. 그것 역시 불가항력적인 변곡점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기어이'를 붙이고 싶진 않아서 기출 변형을 해보았다. 나이 먹는게 뭐 대수냐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결코 서른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늙어간다는 피상적인 거부감보단, 내가 정의했던 서른과의 괴리감에 가깝다. 버릇처럼 '서른 전에'로 쌓아두었던 재고들이 기어코 유통기한을 넘겨버린 기분?


기어이 백수가 되고 기어코 30대가 시작됐다. 두가지가 한꺼번에 오는 것은 아주 짜릿한 기분이다. 왜 롤러코스터나 자이로드롭 같은 걸 탈 때 있지 않은가. '에어타임'이라고 부르는, 가장 높은 지점에서 극하강할 때 느껴지는 공포감과 압도감. 그렇다고 지금 상황이 꼭 하강이라고 할 순 없으나, 매일이 아랫배가 간질간질한 에어타임 속에 살고 있다. 붕 뜬 기분. 에어타임의 출처는 관성이다. 아, 나도 문돌이(따지자면 예체능)로서 자세한 물리 원리는 모르지만, 쉽게 말해 몸이 계속 앞으로 나가려는데 중력이 '응 아니야'라고 하는 데서 오는 '갑분싸'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기어이 달려나간 이 철없는 서른에게 세상의 중력은 너무나 싸늘한 표정을 하고 있다.


나의 중력. 대기업 퇴사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모님의 실망감, 친구들의 걱정. 공백기가 많이 뜨면 재취업도 어렵다는 말에 "아 걱정마 안 죽어." 중력을 뿌리치고 이 서른 살의 백수가 시작한 것은, 캐릭터를 만들고 글을 쓰는 일이다. 강심장이어서도 아니고, 작가가 오랜 꿈이어서도 아니다.

이것은 '스릴'이다. 공포와 스릴은 한끗 차이 아니던가. 주체성이 있으면 스릴이 되고, 없으면 공포가 된다. 변곡점에 서서, 스스로 몇 백 번이고 물었다. 내가 그걸 정말 원하는가? 그렇다. 나는 굳이 이걸 하고 싶다. 불가항력으로 떠밀려온 30대라면, 첫 파도는 나의 의지대로 올라타고 싶다. 어차피 비범함에 대한 갈망을 안고 태어난 이상, 몇 살이 되었건 한번은 했어야 할 도전이다. 그러니까 지금 하는 거다. 평균을 아득히 벗어나 온전히 나를 믿어보겠다는 시도는 멀미가 날 만큼의 아찔한 스릴이다.


지금부터 쌓아나갈 썰들은 내 변곡점의 목격자다. 나는 20대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되 30대처럼 튼튼하게 쌓아올리고 싶다. 풍파 속에서 조금씩 변화하는 나의 나다운 모습을. 그러다 마침내 그 썰들이 거대한 썰물이 되어 어딘가로 데려다주길 바란다. 평균의 뭍에서 멀리 떨어진 곳, 기어이 되고 싶었던 나의 대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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