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는 내일 아침 기적을 꿈꾼다

미라클모닝을 해보려고 합니다

by 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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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 (3월 21일)

미라클 모닝 전야제. 아니지, 밤 11시에 잠드는 것부터 미라클 모닝 시작이니까 굳이 따지면 ‘전전야제’다. 나는 지금 혼자 영화를 보면서 술을 마시고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안주를 편의점에서 잔뜩 사왔다. 세 캔 11,000원씩 하는 에비스 캔맥주에 진로를 세 병씩이나… 괜찮다. 오늘만은 특별히 허용하겠다. 전야제니까.


사실 별로 특별하달 것도 없다. 나는 주로 야심한 새벽 시간에 이렇게 혼자 노는걸 좋아했다. 그래서 종종 술을 마셨다. 혼자 마시면 취하기는 하냐고? 노잼이지 않느냐고? 천만에, 내 감성에 온전히 몰입하느라 더 만취한다. 혼자 웃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질질 짤 때도 있다. 하긴 이 나이 먹고 이제 누구 앞에서 질질 짜겠는가? 어떤 칼럼에서 봤는데, 알코올 중독은 열 명중 아홉 명이 혼자 마시다가 걸린단다. 다들 이렇게 시작해서 나중엔 완전히 의지하게 되는 거겠지. 왠지 납득이 간다.


그렇지만 나는 여기서 하차한다. 왜냐면 내일 모레부터 난 미라클모닝러거든. 이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될 작정이라 니들과는 작별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원없이 마시고, 탕 목욕도 하고, 좀 이따 새벽 5시 챔스도 보고 잘 거다. 잘 있어라, 먼저 중독의 세계로 떠난 아홉 명아. 잘 있어라, 나만의 오붓하고 애틋한 새벽아.




D-1 (3월 22일)

큰일이다. 밤 10시 50분인데 너무 말똥말똥하다. 하긴 새벽 5시 취침을 하던 인간이 새벽 5시 기상이라니. 이것은 가혹한 시차적응 수준이다. 그것도 지구 반대편, 어디 스페인 남부 쯤? 첫 단추부터 이미 미라클에 가깝다. 우리 집에 동거하는 녀석들에게 한 명 한 명 이름을 불러가며 내일 아침 꼭 깨워줄 것을 당부했다.

“헤이 구글, 새벽 다섯시에 깨워줘.”

“기가 지니야, 새벽 다섯시에 꼭꼭 깨워줘.”

아까 다이소에서 사온 알람시계는 말로 해선 못 알아듣길래 수동으로 다섯시에 바늘을 맞춰줬다.


기적적으로 다섯시에 눈을 뜨고 나면 바로 더 큰 기적 난이도의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100kg의 몸뚱이를 이끌고 5km를달리는 것. 집에서 출발해 난지한강공원까지 2.5km, 다시 빙 돌아 집으로 돌아오는데 총 5km다. 운동을 안 한지 반 년이 되어가니, 난데없이 봉변 당한 팔다리가 순순히 말을 들어줄까? 잘 부탁한다고 미리 새 운동복과 운동화도 사뒀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알람시계와 스마트폰, 그 옆에 운동복을 잘 개어 놓은 다음 침대가 있는 2층으로 기어올라갔다.


미라클 모닝은 아침에 일어나 ‘명상, 확언, 시각화, 글쓰기, 독서, 운동’ 6가지 루틴을 차례대로 반복하는 리추얼이다. 정해야 할 게 많지만, 나머지는 내일 아침 달리면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자, 이제 눈을 뜨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규칙이 있는 인생, 내가 결정하는 삶.

“헤이 구글, 거실등 꺼줘. 그리고 내일 꼭 잘 깨워줘야 한다. 부탁이야.”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잠에 들었다. 신기하게도 언제 말똥거렸냐는 듯 곧장 저세계로 빨려들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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