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말을 안 들어

미라클모닝 1일차

by 김보

Day 1 (3월 23일)

"찌르르르르르ㄹ릉"

불 난 줄 알았다. 화재경보기를 닮은 다이소산 알람시계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방을 메웠다. 올 것이 왔다. 미라클모닝 1일차 아침. 계단을 우당탕 내려가 놈을 진정시켰다. 미라클모닝 책에서 본대로 방의 불을 환하게 켜고, 물을 마시고, 양치를 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아직 3월 중순이라 외투도 하나 걸쳤다. 그래도 정신이 없다.

‘아 이거 오늘 오후에 무조건 졸릴 것 같은데…’

일단 나가보기로 한다. 첫 순서는 달리기다. 공동 복도의 싸늘한 새벽 공기가 낯설다. 원래 이 시간에 나설 일이라곤 새벽 내내 술을 마시다 모자란 안주를 사러 가는 것 밖에는 없었는데, 벌써 기특하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지?’

네이버 거리뷰로 답사한게 전부라 조깅 루트를 모른다. 네이버 지도앱을 꺼내 길찾기를 켰다. 스트레칭도 흉내 내본다. 촌스러운 몸짓에 이곳저곳이 삐그덕 거린다. 애플워치에는 ‘실외 달리기’ 기능이 있다. 구매한지 2년이 넘어가는데 처음 보는 화면이다. 3, 2, 1 시작. 신호에 맞춰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달리는 폼이 '조깅'보다는 야반도주하는 사람 같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그렇게 춥지 않아 다행이다.


동네 초입을 지나 가양대교를 건너 철계단을 웅탕퉁탕 내려가면 난지 한강공원의 자전거 트랙이 나온다. 여기까지 오면 일단 1단계 도킹 성공이다.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무섭다는 기분보다는 안도감이 든다. 고도비만의 남자가 허겁지겁 도망치는 모양은 아무래도 남들 보기에 볼썽 사납다. 이건 자기관리와 자존감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장선이다. 어두컴컴한 새벽의 한강은 너무 고요해서 꼭 서울이 아닌 것만 같다. 달리는 시야 앞으로 불빛들이 우왕좌왕 선을 그린다. 지금은 낯설고 버겁기만 한 이 풍경이 익숙하고 가볍게 느껴지는 미래를 상상한다. 두고 보라. 나는 곧 그렇게 될 거다.


난지한강공원 터닝포인트를 찍고 초행길을 조금 헤매다가 다시 널찍한 큰 길로 튕겨나왔을 때는 뜀박질이라기보단 거의 걷고 있었다. 아니 절고 있었다. 숨은 괜찮은데 다리가 너무 당겼다. 그 사이 도로에 오가는 차들도 많이 생기고 하늘도 푸르스름해졌다. 마지막 스퍼트 후 골 라인 통과. 6.44km 53분 47초. 뛴 게 맞나 싶은 기록이 나왔다. 1일차 러닝 소감. 러너들 존경합니다.


샤워를 하고 나와 인센스를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기분 좋은 향이 금세 피어오른다. 5시 기상은 놀랍다. 한참 사투를 벌였는데도 7시다. 자, 두번째 순서는 명상. 수련회 때 이루마의 <Kiss the rain> 틀어놓고 부모님의 효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던 그것과는 다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상태를 만드는 게 명상이란다. 유튜브에 5분 명상을 검색하니 좋은 영상이 많이 나온다. 나는 에일린 선생님의 영상을 선택했다. 이런, 가부좌를 틀라는데 넓적다리가 너무 넓적해서 접히지가 않는다. 그래도 엄지와 검지를 붙이는 정도는 가능하다. 이걸 무릎 위에 얹기만 했는데 '얀 무드라(Gyan mudra)' 자세란다. 이름이 멋있어서 마음에 든다.


생각보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일은 생각처럼 안된다. '호흡에만 집중하라'. 아주 간단한 지시지만 꼬리 생각이 줄줄이 따라온다. 그만. 호흡에 집중해야지. 호흡, 호흡, 호흡. 그런데 '호'가 날숨이고 '흡'이 들숨인가? 그렇다면 호흡은 상형문자인가, 표음문자인가. '호~해줘'의 '호'가 한자였다니? "댕" 에일린 선생님이 종 같은 걸 쳤다. 5분 지났어요~ 눈을 뜨고 자세를 바로 하라는 현실 복귀 명령. 선생님, 저는 아직 명상 입구에도 못 갔는데요? 야속했다. 나는 깨어난 후에도 한참동안 그 커다란 아나콘다와 씨름해야 했다.


그리고 차례대로, 긍정적인 말을 통해 자기암시를 심는 '확언의 말'과, 하루를 실감나게 상상해서 일의 성공률을 높이는 '시각화'. 역시나 유튜버들의 힘을 빌렸다. '자 오전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소리 내 따라해보세요.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다' 어려운 독해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시키는 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되는데, 뭐지? 왜 이렇게 힘들지? 정신은 통제불능에 미운 네살처럼 마구 날뛰고, 감은 눈, 바른 자세는 겉으로는 얌전하지만 파워내적댄스를 추고 있다. 말 그대로 아노미 상태.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거지? 이것이 정녕 만 서른 성인 남성의 집중력이란 말인가? 오은영 박사님도 탄식을 내쉴 저질 집중력이다.


다섯째 글쓰기. '감정일기'를 폈다. 한껏 시무룩해진 나는 초등학생 받아쓰기하듯 내 감정을 받아적는다. 무력감, 좌절감, 배신감... 씩씩대며 힘껏 눌러쓴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과 정신이 말을 안 듣는 괴로움. 어쩐지, 언젠가부터 '숏츠 이거까지만 보고 할 거 하는 거다~?'라던지 '충분히 먹었으니까 그만 먹자' 같은 말을 스스로 아무리 되뇌어봐도, '엥? 하면 어쩔건데 ㅋㅋ'처럼 반항하던 나다. 그러니 버릇이 나빠진 거다. 도파민에 푹 젖은 뇌가 힘을 전혀 못 쓸 때까지. 이렇게 10분도 채 집중을 못하는 지경에 올 때까지.


하루 계획을 세운다. 그 동안 우연이나 즉흥에 방치했던 거. '유연함'이라며 포장해두고 나중으로 쉽게 미뤄버리던 그거. 자율을 펜끝에 묶어둔다. 시간별로 과업을 배정하고 데드라인을 정한다. 완벽하게 달성할 수 없더라도 괜찮다. 반드시 전두엽에서 지시한대로 따르기로 한다. '현 시간부로 각 신체와 정신은 자율을 금지하고 명령에 따를 것.' 이것이 잃어버린 통제권을 탈환하기 위한 전략이다.


마지막 순서인 '독서'. 내 픽은 자기계발서의 바이블 <타이탄의 도구들>이다. 매일 50페이지씩 읽기로 결정했으니 그 전엔 한 발자국도 떼지 않을 것이다. 성공적으로 읽어낸다면 맛있는 아침밥을 주지. 단호한 지시에 긴장이 좀 들어갔다. 아까보다 조금은 나아진 집중력으로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내려간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반찬과 아침 메뉴 같은게 자꾸 끼어들긴 하지만, 이 순서만 마치면 오늘의 아침 루틴 완주라는 사실이 제법 흐트러지려는 집중력을 잘 잡아주고 있다.


이것이 나의 미라클 모닝이다. 확언하건대, 나는 매일 점점 나아질 것이고, 계획과 실행이 수월해질 거다. 스스로를 온전히 지배하게 될 거고, 그러다 아침을 지배하게 된다. 그러니까, 반드시 그렇게 된다고 믿는다. 기적처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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