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모닝 1주차
미라클 모닝. 아침 다섯시에 일어나 정해진 루틴을 반복하는 일.
이런 유치한 이름의 자기계발 같은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진짜 의외인 건, 이렇게나 게으른 내가 이걸 제법 잘한다는 사실이다. 벌써 일주일 차다.
매일 아침 이불과 씨름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번쩍번쩍 눈도 잘 뜬다. 아니, 아침마다 달리기를 한다니까? 믿어지지가 않는다. 나 이러다 ‘갓생’ 되어버리는 거 아닌가?
뭐, 백수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평할 수도 있겠다. 부인은 하지 않겠다. 애초에 백수의 두루뭉실한 일상에다 선 좀 그어보자는게 계기였다.
대책 없이 게을러지려 할 때 미라클모닝이 어떤 경계선이 되어주지 않을까, 뭐 그런 기대?
확실히 이전보다 하루를 건설적으로 설계하고 있다. 이런 날들이 몇 주 씩 쌓이면 아무리 백수라 하더라도 꽤나 생산적인 인간이 될 거다. 그런 건 분명 기적적인 일이 맞다.
사실 그보다 만족스러운 변화는 긍정적인 마인드다. 하루 일과를 정해진 루틴에 맞춰 해내고 나면, 꼭 게임에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듯 뿌듯한 기분이 든다. 자신감 같은 게 스멀스멀 생긴다.
‘자신감’. 나를 믿는 느낌. 그건 내가 근래 들어 가장 많이 잃어버린 느낌이다. 주로 세상에 뭔가를 증명하면서 생기는 건데 백수가 되면서 증명할 게 별로 없어졌기 때문이다.
매일 미라클모닝 아침루틴을 끝내면 인스타그램에 인증하는 것까지가 내 아침 일과다. 그러면 마일리지처럼 자신감이 쌓인다.
이대로 미라클모닝만 철칙처럼 지키면 기적이 올 거다.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 준비를 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저녁 약속을 했다. 이것은 요즘의 나에겐 정말 큰 이벤트다.
백수가 된 이후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으면서 스스로 고립되었던 나였다. 내가 여유가 없을 때 얼마나 날카로워지는 인간인지 잘 알고 있다. 작은 농담에도 자격지심이 들어버릴테고, 게다가 내 입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들은 대부분 나를 아프게 만들테다. 서로에게 유익할 게 없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아니다. 난 멋지게 계획적인 삶을 시작했고, 이렇게 미라클모닝도 일주일째 이어가고 있다. 매일 밤 11시에 잠드느라 자연스레 야식을 끊으면서 살도 많이 빠졌다.
좋다. 이 정도 멘탈이면 해볼 만 하다. 안쪽 서랍에 넣어둔 향수를 꺼내서 손목에 뿌렸다. 상쾌한 풀 냄새! 숲 속 요정의 버프를 받은 듯 자신감이 은은하게 퍼졌다.
이왕 외출한 김에 조금 일찍 움직여서 영화도 한 편 본다. 점심으로 초밥도 한 판 먹었고, 오랜만에 자기계발서가 아닌 일반 에세이도 한 권 샀다. 단지 표지가 예뻐서 산 거다.
백수라고 꼭 매일 채찍질만 할 거 있나? 오늘은 당근을 주는 날이라고 생각하자. 흡족해진 나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으며 친구들이 퇴근하길 기다렸다.
고기 먹자고 해야지. 삼겹살이 좋으려나? 소는 좀 오바니까, 오랜만에 콩불도 나쁘지 않겠다. 벌써 신이 났다.
점점 친구들의 퇴근 시간이 늦어졌다. 시간은 여덟 시가 되어가고 있고, 홍대거리는 놀러나온 어린애들로 금방 포화상태가 된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재차 시계를 보며 남은 시간을 계산했다. 미라클모닝이라는 마법이 풀리지 않도록 10시에는 귀가해야 한다. 신데렐라보다도 2시간 빠르다.
친구들이 곧이어 도착하긴 했지만, 아까 그 여유는 온데간데 없고 자꾸만 초조할 뿐이다.
칙. 치칙. 치르르. 불판에 불고기 익는 소리가 초시계 소리처럼 들린다. 이게 원래 이렇게 느리게 익었던가? 소주나 한 잔 하면서 느긋하게 기다리잔다. 아니 난 30분 있다 버스 타러 가야한다고. 요즘 뭐하고 지내길래 초저녁에 집에 가냔다. 핏기가 겨우 가신 고기들을 와르르 입에 집어넣으며 미라클 모닝에 대해 설명했다. 아침 다섯시에 일어나다니 대단하네, 직장인은 불가능하겠네, 뭐 그런 리액션이 오갔다.
내가 전투적으로 공기밥과 고기를 해치우는 동안 그들도 금새 한 병을 비웠다. 내 속도 모르고 이모를 불러 소주 한 병과 볶음밥 3인분을 추가한다. "볶음밥을 왜 추가해. 야, 나 가야 한다고." 빙글빙글 웃으며 너답지 않다며 하루 쯤 치팅도 있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난 항상 술자리에서 마지막까지 마시는 놈이었으니. 한 놈이 볶음밥을 휘적이며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는 듯 제안했다. "너 미라클 모닝 브이로그 한다며, 오늘 하루 실패하는 컨텐츠 하면 되겠네!" 그 순간 머릿속에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씨발, 나는 하는 게 이거 하나 밖에 없다고!"
큰 소리에 사방의 이목이 집중된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한창 볶음밥이 눋던 철판 앞에 숟가락을 탕 놓고 도망치듯 자리를 나와버렸다. 이러려던 게 아닌데, 쟤네도 놀리려던 의도는 아니었을 텐데, 오늘 기분도 나쁘지 않았는데. 난 왜 갑자기 화가 난 걸까. 소리 지르는 내 모습이 자꾸 반복재생된다. 아... 내가 너무 싫어진다. 쌓아왔던 자신감 마일리지도 한 번에 무너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자괴감을 곱씹으며 내 졸렬한 분노에 대해 떠올렸다. '실패'라는 단어가 발작버튼을 눌렀던가, 내 위대한 도전을 가볍게 여긴 그들이 야속했던가. 아니, 전부 아니다. 진짜 원인은 미라클모닝 안에 있었다. 나는 어느새 집착하고 있었던 거다. 이 루틴을 지켜내야만 좋은 기운이 유지된다고. 이 챌린지가 내 인생을 바꿔줄거라고 단단히 믿고, 기대고, 기대하고 있었던 거다.
이 챌린지의 핵심은 나를 믿는 힘을 기르는 건데. 자세히 보니 내가 쌓은 마일리지는 자신감이 아니라 '미신감'이었다.
밤 11시. 급하게 집어넣은 콩불은 위산과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쓰린 배를 부여잡고 웅크려서 반성을 한다. 잊지 말자.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회사를 뛰쳐나왔음을. 나다워지겠다고 철저히 혼자가 되었음을. 미련과 변명들이 덥석 덥석 꼬리를 문다. 대부분 의문문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긴 긴 밤이 될 거 같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