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모닝 2주차
'아침 기상'과 '달리기'. 내가 가장 못하는 것 두 가지. 요즘 그걸 한꺼번에 하고 있다.
모든 건 시작이 제일 어렵다던데, 장담한다. 이 두 가지는 명백하게 '시작'보다 '지속'이 어렵다.
2주 쯤 되니 침대를 벗어나는 것이 수월해지고 다리에 알도 배기지 않게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피로가 누적되면서 '이만하면 되지 않았나'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언제고 스탑 버튼만 누르면 포기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어버렸다.
만약 미라클모닝을 그만두게 된다면, 아마 '아침 달리기를 그만뒀다'라고 바꿔 말해도 무방할 거다. 그만큼 하루 루틴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뽐낸다.
아침 달리기에 대한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매너리즘이 스며들던 회사 생활 3년차 즈음, 새해를 맞아 한남대교를 달린 적이 있다. 그 당시 아침 6시에 일어나 논현역 근처에서 시작해 한남대교를 찍고 돌아오면 10km 거리에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달리기의 목표는 녹초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고도 비만이니까, 남들보다 두 배는 힘들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다리를 후들거리며 집에 돌아오면 짜릿한 성취감이 좋았다.
문제는 초반부터 의욕이 넘쳤던 것이다. 미련했다. 한파특보가 내려 한강이 꽝꽝 얼어버린 어느 날, 추위 같은 건 내 의지를 막을 수 없다며 나섰다가 보기 좋게 빙판에 미끄러졌다. 발목이 제대로 삐어버렸고, 챌린지는 2주 만에 조기종영 되었다.
호기롭게 큰 맘 먹고 시도한 도전이었는데... 그러고서 2년 넘게 달리지 않았던 것은 부상을 핑계 삼은 도피일 뿐이었다. 당연하지만 발목은 진작 완치됐다.
달리기는 다른 운동과 아주 다르다. 운동효과나 소모 칼로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달리기의 훈련 부위는 근력이나 심폐력의 범주보단 '끈기력'에 가까워보인다.
쉬지 않고 달리다 보면, 이러다 어딘가 잘못 되어버릴 것처럼 숨이 차오른다. 공포감에 한 발 한 발 떼는 것이 무겁게 느껴지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달리기든, 미라클모닝이든, 이 숙명같은 백수 생활이든, 나의 모든 고민을 관통하는 것이기에 금방 괴로워진다. '턱'하고 숨이 막히고, '윽'하고 폐를 찌르는 고통이다.
끈기와 객기는 한끗 차이다. 그러나 서로 아주 다른 결과를 낳는다. 끈기는 성공을, 객기는 실패를. 문제는 끝까지 가봐야 그게 끈기였는지 객기였는지 알 수 있다는 거.
나도 알고 있다. 자꾸 겁을 집어먹을수록 고귀한 노력은 객기에 잡아먹힌다는 걸. 스스로 믿는 힘이 끈기를 만든다는 것도. 그렇다면 나의 지난 날의 도전은 어떻게 설명될 것인가? 용감하게 뛰쳐나간 빙판 위의 도전은 왜 끈기의 훈장이 되지 못하고 '겨울날의 쌩쇼'로, 반짝 끝난 흑역사로 기록된 것인가.
아침에 달리기를 할 때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린다. 이상하다. '우사인 볼트'도, '킵초게'도 아닌, 어떤 소설가를 먼저 떠올린다는 게. 그러나 이것은 꽤나 많은 모닝 러너들이 공감할 것이다. 달리기에 있어 하루키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하루키는 서른 초반 청년 시절부터 칠순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한다. '매일'. 아침 기상도, 달리기도 철칙 같이 지킨다. 그걸 객기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끈기에 경의를 표할 뿐.
수십 년 동안이나 그걸 유지한 이유는 비단 건강 뿐만은 아니란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것이 실제로 장편 소설을 쓸 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 달리기를 통해 몸이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게 만드는 거라는데, 처음엔 그가 *러너스 하이에 중독된 것이 아닐까 했다. 중독에 의지할 만도 하다. 장편을 써내는 건 초인적인 힘이 필요한 일이니까.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 30분 이상 쉬지 않고 달렸을 때 밀려오는 행복감. 헤로인이나 모르핀을 투약했을 때 나타나는 의식 상태나 행복감과 비슷하다. 다리와 팔이 가벼워지고 리듬감이 생기며 피로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힘이 생긴다. (네이버 국어사전 참조)
그러나 그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알 수 있다.
빨리 달리고 싶다고 느껴지면 나름대로 스피드도 올리지만,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 쓴다.
장편 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매일 지속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달리기든, 글쓰기든, 멀리 가는 일이기에 모든 힘을 짜내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리듬감을 단절하지 않는 것, 그렇게 끝없이 이어가는 것. 그것이 수십 년을 이어온 아침 달리기와 소설 집필의 힘이었다.
간혹 의욕이 넘칠 때 나는 오버 페이스를 한다. '오 이게 되네?' 극한까지 끌어올린 자신의 모습에 도취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 다음 날은 어제보다 지치고 만다. 특히 장기적인 작업에서는 더욱.
밤을 새워 만든 영상에 뿌듯해하며 잠이 들었다가 다음 날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열기가 두려워질 때, 장편의 글을 몰아쓰고서 며칠동안 글쓰기는 꼴도 보기 싫어질 때도 그렇다. 내 딴에는 그렇게 해야 내 최대 능력치가 나온다고 믿는 것인데, 그렇게 오버해서 열을 올린 다음엔 불씨가 아예 꺼져버리게 된다. '버닝'이 '번아웃'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빠른 템포의 리듬감은 불안정해서, 기분에 따라 집중력이 좌우되며, 겁이 나서 손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나의 최대 속도만 오직 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며, 그 속도로 끌어올리는 예열에 매몰되고 만다. 그러니까, 일종의 조바심이다.
하루키는 어느 순간 그걸 깨달은 거다. 오늘의 오버페이스는 내일의 페이스에서 미리 끌어온 것임을. 중요한 건 예열이나 좌절감 같은 데에 불필요한 힘을 허비할 필요가 없도록 페이스를 분배하는 것인데. 멀리 가는 일에는 효율이 필요한 것인데 말이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분명 장거리 달리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인생에 결승선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위대한 성취? 그런 게 무의미하다는 것은 그 이후에 남은 삶들이 종종 갖게 되는 허무가 증명한다. 죽음? 그럴 리가. 현재에 충실할 줄 아는 현명한 주자라면, 겨우 미래의 좋은 죽음을 결승 삼아 살아갈 리 없다.
인생은 계주다. 결승선 없는 무한한 이어 달리기다. 계주에선 오늘의 신기록보다 내일을 잘 잇는게 중요하다. 끊임없이 매끄럽게, 그리고 오래 오래 이어져야 한다. 매일 얼마나 바톤을 잘 터치했는지에 따라 인생의 퀄리티가 결정된다.
과거의 영광에 부담을 느끼거나 오늘의 실패에 좌절하지도 않고, 하루키처럼 계속 지구력을 유지하는 힘. 은은하게 오래도록 타오르는 일. 위대한 그림이란 점을 세게 찍어서 큰 자국을 남기는 게 아니라, 점과 점을 꾸준히 이어서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일에 가깝다.
하루키는 일주일에 딱 60km만 달린단다. 일주일 중 하루는 쉬고, 매일 10km를 달리는 식으로. 만약 어제 15km를 달렸다면 오늘 5km를 달리는 식으로 말이다.
계산해보니 나도 지난 2주 동안 100km 정도를 달렸다. (물론 중간 중간 걸었지만) 굉장한데? 매일 달린 게 쌓이니 마라톤의 두 배 양이 모였다. 아, 하루키도 그렇게 엄청난 양을 달리는 건 아니구나. 안도감이 든다.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든다.
점차 익숙해지면 오래 이어달릴 수 있겠지. 하루 걷고 하루 달려도 좋으니, 이번에는 2년 전처럼 멈추지 않겠다는 각오다. 하루키 씨, 나도 언젠가 당신처럼 될 거야. 이 경외심이 부러움이 되고 질투로 변하면 나도 꽤나 위대해져 있지 않을까? 이어달리기의 힘을 믿어보기로 한다.
11시다. 좀 더 쓸만한 것 같아서 이만 과감히 자러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