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모닝 3주차
‘퇴사’와 ‘유튜브’는 회사원의 대표 허언이란다.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세상은 회사원들을 ‘못’으로 단단히 고정시켜 두었다. 꼼짝달싹 못하게.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못하게 되는 거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 ‘못’을 ‘핑계’라고 부른다.
백수는 못이 없다. 아무 것도 고정된 것이 없거든. 못하는 게 없다. 제약 같은 게 없으니 마음 먹으면 다 할 수 있다. 와, 개이득 아니냐? 개이득일리가. 꼭 퇴사만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퇴사하기 전에 못하던 건 퇴사해도 못 할 확률이 높다. 그게 뭐가 됐든. 다만 핑계라는 자기 방어 수단이 없으니 타인의 비난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그러니까, 뭔가 미뤄지고 있다면 그 출처는 꼼짝 없이 내가 게으른 까닭이 된다.
‘퇴사’라는 가장 큰 대못 하나를 뽑았더니 그 안에 '안‘들이 고슴도치처럼 촘촘하다. 그렇지, 못 한게 아니고 안 했던 거지. 어디 회사를 핑계로 미뤄온 것이 유튜브와 퇴사 뿐이겠는가. 운동이고 독서고 다이어트고... 자잘한 인생 과제들이 아프게 박혀있다. 또 다시 허언증 환자가 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뽑아내야 할 것들이다. 이것이 백수 된 도리이고, 백수의 메인 업무인 거다.
요즘의 내 메인 업무는 자기관리가 되었다. 못에 길들여지고 연약해진 자아는 잘 어르고 달래주지 않으면 칭얼대거나 그 자리에 드러눕기 십상이다. 아기나 노인을 돌보듯 아주 세심한 케어가 필요하다. 그래서 미라클의 힘을 빌린다. 규칙을 세우고 보상을 짠다. 지인들의 연락을 끊고 OTT, 웹툰 구독을 끊어서 방해요인을 끊어낸다. 온전히 자아와 나,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나와 나아지고 싶은 나, 둘만의 시간이 되어 집중한다. 그래, ‘지금까지의 나’는 금쪽이다. 어찌해도 데리고 살아야 할 금쪽 같은 나새끼... 이번에야말로 버릇을 고쳐놓고 의젓하게 만들고야 만다는 각오다.
눈을 뜨자마자 갈등 상황 시작. 알람소리가 언짢으셨나. 왜 기상시간을 정해둬야 하냐는 둥, 덜 풀린 피로가 남았다는 둥 핑계들을 댄다. 그게 또 제법 합리적인 말들이라, 잠깐만 빠져들면 다시 잠들고 만다. 이 경우 무시하고 양치를 하다보면 이내 투정이 멎는다.
진짜 어려운 건 그 다음. 절대 창문을 열어선 안된다. 새벽공기가 차갑다는 걸 눈치 채는 순간 무조건 안 나가려고 뻗댈 거다. 그냥 몰래 현관을 연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발을 움직인다. 점차 속도를 올리고, 달리기 시작. 섭섭하지 않도록 ’거 봐, 뛰니까 잘 뛰지‘라던지 ’저 새벽 한강 좀 봐, 예쁘다‘ 같은 말들을 끊임없이 걸어줘야 한다. 그래도 그만하자고 보채는 경우가 있다. 그 땐 아침밥을 떠올리면 된다. 아침식사는 아침 루틴 중 금쪽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시간이다.
금쪽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가만히 있어’다. 어린애처럼,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명상은 천적이다. 3주 째 하고 있음에도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를 떠올리는 것처럼, 호흡에 집중하고 생각을 비우라는 가이드가 들리자마자 호흡이 들쭉날쭉 해진다. 마구 생각들이 쏟아진다. 개의치 않던 지나간 사람에 대한 분노부터, 어제 미비했던 일과들하며... 꼭 지금 생각을 이어가지 않으면 영영 까먹을 것처럼 엄살을 부린다. 가이드는 그런 금쪽이를 그저 ‘그렇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며 멀리서 바라보도록 시켰다. 멀어지려다가도 그런 집중력 약한 내가 미워서 다시 다가간다. 그렇게 왔다갔다 하는 사이 10분은 야속하게 끝나고 만다.
‘집중력이 약해서 슬프다’
그래서 내 감정일기는 대부분 그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매일 아침에 이렇게 사투를 벌이고 나면 사실상 감정일기가 아니라 뒷담일기가 된다. 자책 말이다. 이걸 쓸 때면 밍기뉴의 ‘나아지지 않는 날 데리고 산다는 건’이라는 노래를 떠올린다. 한숨 같은 가삿말이 정말 힘에 부쳐보여서, 나를 케어하는 건 타인을 케어하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라는 걸 체감한다. 나중에 내가 성장을 하거든 이 기록들이 추억이 될 수 있을까.
아침을 멕인다. 다행인 것은 식단과 다이어트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간헐적 단식이라고, 아침, 점심을 먹고 16시간 공복을 유지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제법 얌전하다. 추측컨대 아침 달리기 때 몸이 무겁고 속이 부대끼는 것이 꽤나 괴로운가 보다.
하루종일 영상 편집이나 글 쓰기, 그림을 그리며 일과를 보낸다. 아침 운동과 비슷한 요령이다. ‘자, 이제 할 거야’하고 엄포를 놓으면 엄살을 부리기 때문에, 스르륵 자연스럽게 시작한다. (이 글도 매주 월요일에 올리겠다는 다짐을 들키는 바람에 토요일까지 미뤄졌다) 일이 시작되면 곁에서 지켜보며 딴짓으로 새지 않도록 관리감독 한다. 간혹 그것이 어려워질 때면 스타벅스에 가면 된다. 금쪽이는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이면 확실히 딴짓을 덜한다.
오후 4시, 창문 가득 해가 쏟아지는, 점심인지 저녁인지 애매한 시간. 하루 마지막 식사를 씹다 보면 어쩐지 퍽퍽해진다. 외롭다. 보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다. 애초에 스스로 고립된 건,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었다. 외려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할까봐 떼놓은 것 뿐이다. 그러나 이대로 영영 나아지지 못한다면? 언제까지고 이렇게 혼자 지내는 상상을 하면 덜컥 두렵다. 왈칵 서러워진 금쪽이가 충동적으로 엄마에게 전화 걸려던 걸 겨우 막는다.
‘금쪽아, 이 슬픔도 언젠가는 끝나.’
아파하는 나를 한참 달래주다 보면,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지도 덩달아 흐릿해진다. 눈을 꼭 감고 주문처럼 되뇌인다.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어...
자정이 오기 전에 잠 드는 편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크게 울거나 습관처럼 술을 보챌 확률이 높다. 다시 한번 미라클 모닝의 힘을 빌려 11시에 강제 취침을 시킨다. 이렇게 하루 치 케어가 전부 끝이 난다. 자기관리가 이렇게 애처로울 일이냐고? 그러게 진작 버릇을 고쳐놨어야 했는데. 내가 지금 힘겨운 이유는, 오냐오냐 하던 지난 날들이 쌓인 탓이다. 업보 말이다. 가만 두었다간 여든까지 갈 버릇이다. 이번에야말로 어떻게든 관리해보기로 한다. 우리 엄마는 대체 이런 걸 어떻게 데리고 살았나. 역시나 엄마가 보고 싶은 밤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