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2023년 12월 26일

by 김보


그 도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살아봐야 한다고 한다

살아본다는 건 어떤 일을 포함하는 것일까?

어떤 가게의 단골이 되는 일?

은행 업무를 보고 생필품을 사는 일?

노선을 외는 버스가 생기는 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한 가지를 꼽자면 나는 골목과 친해지는 일을 생각한다.


나는 빠르게 그 동네를 살아보기 위해 골목 여행을 많이 한다.

이 때 반드시 골목을 ‘누비’는데, ‘거닌다’거나 ‘어슬렁‘거리는 것과는 다르다.

누빈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지도나 가이드 같은 것은 들지 않고, 발 가는대로 걷는다.

이쪽 모퉁이를 돌았다가, 다시금 마음이 끌리는 좁은 길로 빠진다.

그러다 같은 곳을 지나친다고 해도 이번엔 다른 방향으로 걸어본다.

저 모퉁이를 돌면 어떤 풍경이 있을까?

그런 소소한 기대를 갖고 이 방향 저 방향 걷는 것이다.

생각보다 골목골목 풍경이 다 다르다.

눈에, 마음에 차는 풍경을 열심히 수집하다 보면 이 골목에 갓 이사 온 꼬마 아이 같은 기분이 된다.

오늘 하루 골목대장이 된다.

이게 골목 여행의 전부다.


골목 여행의 핵심은 상상이다.

삐그덕 열리는 가로등 옆 대문을 보고, 저쪽의 조그만 슈퍼를 지나치며

콩나물 심부름을 하는 교토의 한 꼬마 아이를 상상한다.

담벼락의 낙서 같은 것을 보면서, 텅 빈 놀이터 같은 걸 보면서

해질녘 그네에 걸터앉아 캔맥주 한 캔을 들이켜는 직장인의 삶을 상상한다.

나는 그 상상을 통해 그들의 이웃이 된다.

이 골목 속에 하나의 풍경이 된다.

골목에서 반나절을 상상에 푹 빠져 있노라면

네이버에 나온 ‘교토 추천 루트’ 같은 것을 따라가는 것 만큼이나 흠뻑 즐겁다.

그래서 골목을 온전히 누비기 위해서는 혼자가 적합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쓸데없이 헤매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누빈다는 것은 주도적으로 헤매는 일이다.

상상이라던가 분위기를 느끼는 것은 의식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의 아주 디테일한 가이드로도 역부족이다.

무의식적으로 발 가는 대로 걷고,

‘교토 여행 플레이리스트‘ 같은 걸 들어도 좋고,

문득 멈춰서 냄새 같은 걸 깊게 들이켜도 좋다.

분위기를 찾아 집요하게 이리 저리 헤매다가,

우연히 만나는 소소한 일치감, 거기에서 절묘함을 느낀다.

골목과 친해지려면 이렇게 누벼야만 하는 것이다.


에세이도 골목을 누비는 것과 비슷하다.

에세이는 혼잣말이다.

특정 화자가 정해져 있지 않고, 정보 전달이 목적도 아니다.

무용하고 고독한 것이 정상이다.

다만 내가 느끼는 걸 집요하게 살펴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그럴싸하게 정의하는 거다.

골목의 꼬마 아이를 상상하듯이, 모퉁이 뒤편의 해질녘을 찾듯이

절묘한 순간들을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여행에 비유하는 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작업이 즐거워서 계속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으로 드라마 세트장을 좋아한다.

내가 안 본 작품이거나 버려진 세트장일수록 더 좋다.

마음껏 상상에 빠지는 낯선 공간이 필요하다.

다른 이의 삶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충만한 영감이 된다.

때때로 권태로울 땐 그런 게 직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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