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7일
어제는 근사한 재즈 공연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해외여행에 루틴이 있다면 나는 꼭 그 지역의 재즈바를 가보는 것이다.
끝내주는 라이브를 봤던 몇 몇 밤이 여즉 아주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고,
대부분은 기대 이상으로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재즈바 만큼은 반드시 가기 전에 구글 맵의 리뷰를 찾아본다.
‘교토 재즈바’. 구글 지도에 검색하자 한 한국인의 후기가 시선을 끈다.
‘재즈 바 알아보시는 분들 딴 데 가지마시고 꼭 여기 가세요.’
이 재즈바가 ‘끝내주는 몇 몇 밤’ 리스트에 교토를 추가할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솔직히 조졌다고 생각했다.
수원 살 적 친구네 자취방만한 공간에
백발 노인들이 서로 어깨를 붙이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이미 4천 엔(40,000원 정도)이나 내버려서 도로 나갈 수도 없었다.
무대 앞에 선 할아버지 세 명. 오늘의 플레이어다.
세 명 전부 포지션이 기타+보컬이란다.
아, 어르신들이 흘러간 한 곡조들 뽑으시려는구나.
재즈는 진즉 물 건너갔고 기대감도 증발했다.
어디 한 번 들어나보자는 마음으로 삐딱하게 기대앉았다…
우엑, 맛 없다.
오늘 먹은 스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직장 다닐 적엔 하루 세 끼를 스시로 채우던 내가 열 접시를 채 못 먹고 젓가락을 놨다.
아니, 아무리 내가 걷다가 보이는 아무 회전초밥 집이나 들어왔다 해도 그렇지,
여행의 흥을 박살내버리는 괘씸한 맛이었다.
가만히 회전하는 스시를 쳐다본다.
배신감 같은 게 치민다.
이렇게 혼자 하는 여행에서 별로인 것들을 만나면
누군가와 함께 간 여행의 좋았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여행지에서 둘 이상일 때는 재미 있는 우연한 일들이 많이 생겼다.
우연히 맛있는 식당을 발견한다든지, 갑자기 알지 못한 이벤트가 불쑥 생긴다든지.
전에 연애하던 여자친구와 이곳에 왔을 때는
정처 없이 걷다가 문득 들어간 식당이 백년 장인의 카이센동 집이고 그랬다.
포켓몬고를 열심히 하던 시절이라
공터에서 거기 모인 동네 초딩들과 레이드로 뮤츠를 잡고 하이파이브 하고 그랬다.
지금 이 배신감은 저절로 몽글몽글 피어나는 이 기분 좋은 추억들이 가져온 반감이다.
나는 혼자 여기에 와서 열심히 비슷한 느낌을 찾아보려 해도
그런 공터나 근사한 식당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어째서 그런 재미있는 일들은 혼자일 땐 도무지 생기지 않는 걸까?
그러다 문득 이건 기억력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혼자 했던 재미있는 것들은 다 잊혀진 거구나.
둘이었기 때문에 추억이 유독 머리에 기록된 것 뿐이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맛있는 걸 먹을 때 함께 나눴던 리액션,
혼자라면 머리로 맴돌다 말았을, 굳이 꺼낸 표현들.
그리고 여행 이후에도 몇 번이나 회자했던 사건사건들.
굳이 그 사람이 있었기에, 내 기억에 ‘박제’ 된 것들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혼자 여행에서 관광지 가기를 꺼려했다.
입을 꾹 다물고 유적을 쳐다보는 일은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호들갑을 떨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 호들갑을 기억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리움은 이렇듯 기억의 문제다.
혼자가 쓸쓸한 가장 큰 이유는 나의 시절을 기억해줄 목격자가 없기 때문이다.
오래된 친구를 만날 때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추억팔이다.
현재의 힘든 일이라던가 미래 계획 같은 것은 하등 재미 없다.
내가 그랬던 거, 너가 그랬던 일 기억해?
이렇게 많은 것들을 우리가 공유하고 있다니.
서로 몇 번이고 확인하고 목격을 증언하면서 누적된다.
때때로 이야기에 살이 붙어서 더욱 미화되기도 한다.
인생의 화양연화, 꽃 같은 시절로.
다시 어젯밤 공연으로 돌아온다.
그 재즈도 아니고 젊음도 사그라든 라이브가 이토록 인상 깊은 것은,
그 세 사람의 화양연화 때문이었다.
내가 일본어 가사를 알아들을 리도 없고
처음 듣는 투박한 기타 선율이 공감 될 리 없다.
그런데 세 사람의 표정이 너무 좋았다.
서로의 한때를 기억하는 목격자의 표정이 되어
미소를 지었다가, 눈을 지긋이 감았다가, 포효했다가,
어떤 때에 가장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노래를 들려줬을
그들의 화양연화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청춘에 대한 노래예요. 왕년에 하도 불러서 이젠 다 외우지 않았냐고“
옆에 앉은 한국인이 해설을 더한다. 그들이 40년 된 고향 선후배 사이로 오래 합을 맞췄다는 설명과 함께.
그들이 정말로 왕년에 한 끗발 날렸을지 허풍일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가 기억하는 영광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가슴 저리게 애틋했다.
그 인상 깊은 장면을 아이패드에 그려 그들에게 선물했고,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고 내 소감을 말했다.
그들은 ’왕년‘의 CD 한 장으로 답례했다.
이제 저들이 한때를 추억할 때면 내 그림도 함께 목격자가 되어줄 거다.
내가 노년에 무대에 선다면, 사람들에게 어떤 시절을 말할까?
나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그리운 추억들이 여러가지 떠오르지만 하나를 고르자니 섭섭한 기분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짐 히크메트의 시를 빌려서,
역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고 결말을 열어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