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 글쓰기 1일 차
스물 아홉이 되었다. 올해 초는 정말 각오가 남달랐다. '기필코 꼭 뭔가 이루는 사람이 되자'. 책쓰기, 다이어트, 영어 공부... 그게 뭐가 되었든 목표한 것을 꼭 완수하는 경험이 간절했다. 천성이 ENFP인 나는 무슨 일이든 끈기 있게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내는 버릇이 있었다. 성격을 바꿔보려고 이런 저런 시도도 해봤지만 20대 내내 부지런히 쌓아온 그 흐지부지들이 점점 굳은 살처럼 '난 원래 이런 놈이니까'하고 딱딱하게 무뎌지는게 느껴졌다. 그렇게 매해 '뭔가 이루는 사람' 목표를 미루었던 나였지만, 올해 만은 다음 해로 미룰 수 없었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처음 들었던 고등학교 때, 나는 이 구간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그 덤덤한 멜로디에 어울리는 '매일' 이별한다는 가사 속에 아, 이게 진짜 어른스럽다는 거구나 짐작했다. 그 이후로 어렴풋이 내 진짜 어른의 기준은 서른이었다. 산만하고 끈기 없는 애같은 나라도 서른 즈음에는 진짜 어른이 되겠지. 이십대가 된 후에도 한 켠엔 그런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거다. 허나 그렇게 서른까지 미루고 미루다 결국 나는 여전히 게으른 아이인 채 스물 아홉이 되어버렸다. 매일매일 이별은 커녕 운동도 꾸준히 못하면서.
스물 아홉을 먹은 내가 매일 하고 있는 거라곤 불평 밖에 없다. 회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 누군가 마음에 거슬려서, 버스가 안 와서, 코로나가 끝이 안 보여서... 수 많은 이유들로 나는 겨우 애처럼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떠오른 불평들의 이유를 추적하느라 잠 못 들던 어느 날 밤, 나는 문득 이렇게 꾸준히도 불평할 거리가 생긴다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꼭 최악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수시로 떠오르는 의문과 불편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원인과 대안을 찾지 못했을 뿐, 매일 본능적으로 문제점을 도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불평은 단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서른을 딱 한 달 앞두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내 20대 마지막 도전을 해보려 한다. <100일 동안 매일 하루 치 불평 쓰기>. 그건 내가 맨날 하는 거니까. 광석 형님처럼 나는 멋있게 매일 이별은 못하고 고작 불평이지만, 나는 이것이 꼭 내가 진짜 어른이 되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매일매일의 불평에 의미를 달아주고 나면, 불평이 내 장점이 되면, 나는 불평보다 더 서른스러운 걸 매일 하는 진짜 어른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