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dongwoo Mar 31. 2016

페인팅에 임하는 자세

느릿느릿 집고치기

1992년에 지어진 낡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됐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초등학교 이학년 때부터 살았으니 내인생의 반 이상을 지금 사는 집에서 보낸 셈이 된다. 네덜란드 교환학생, 제주도 회사 발령 등의 이유로 생활 근거지가 남김없이 옮겨지는 이사보다는 임시 거처의 성격이 강한 소규모 이사만 경험해 본 셈이어서 가족 전체가 이동할 수도 있는 이번 이사는 상대적으로 큰 의미로 여겨진다.


깔끔한 환경, 혹은 내 입맛에 맞는 공간을 갖고 싶다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나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는 사람은 아니어서 이번 이사를 통해 슬금슬금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집을 고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전체적으로 집을 고쳐주는 인테리어 컨설팅&시공 외부 업체 혹은 주방이나 욕실 등 부분적으로 시공을 맡기는 등의 작업들도 생각해봤으나 결국에는 비용이 문제였다. 사실 비용만 문제였으면 괜찮았을 뻔 했지만 100% 누굴 통해서 하는 건 아무래도 성미에 맞지 않더라. 그래서 시작한 것이 쉬이 접근 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는 페인팅이었는데, 이미 페인팅을 해 본 지인의 코멘트 (던 에드워*이 좋다느니 벤*민 무어가 좋다느니 하는), 각종 셀프 인테리어 관련 블로그와 최근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채널에서 방영하기 시작한 인테리어 관련 텔레비전 프로그램 (대표적인 것으로 내방의 품*) 이 큰 참고가 됐다. 한편, 저성장으로 인해 소위 '가성비'를 중시하는 풍조가 강해져서인지 DIY (do it yourself) 를 용이하게 해주는 인터넷 철물점 혹은 자재상들이 꽤나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문고*이나 손*이 혹은 철*지 등이 그 예에 해당하는데 일단 페인팅은 이들과 관계가 없으니 나중에 다시 언급해보기로 한다.


벤*민 무어의 컬러칩


일단 내방은 그레이 계열로 해보기로 하고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아이파*몰에 생긴 벤*민 무어 매장에 방문했다. 셀프 인테리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얘기지만 벤*민 무어는 뛰어난 투자가로 알려진 워렌 버핏의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 계열의 페인트 회사로 친환경 페인트를 생산하고 있으며, 소매 방식의 영업으로 고객이 매장을 방문하면 약 4,000여 가지의 컬러샘플 중에서 하나를 골라 즉석에서 조색해준다. 국내에는 소매영업 뿐 아니라 삼*서울병원, 이케* 등에 페인트 시공도 함께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여러 가지 색을 보다 보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여러 가지 컬러칩과 스타일 제안 책자, 그리고 웹서핑을 통해 벤*민 무어의 Steel Wool 색상으로 방을 칠하기로 결심했다. 벤*민 무어의 페인트는 갤런 (gallon, 3.785412 liter / 쿼터 갤런 (1/4이니 약 1 리터) 의 용량으로 판매되는데 방 사면을 모두 칠할 계획이어서 갤런을 사기로 했다. 요새 나오는 페인트들은 벽지를 뜯을 필요 없이 위에 덧바르면 되는 수성 페인트들이었고, 이미 도배된 벽지는 밝은 색이라 어두운 색으로 결정한 이번 경우에 따로 프라이머는 구입하지 않았다.


아... 결정장애 ㅠㅠ


벤*민 무어의 즉석조색과정


아이파*몰에서 색을 결정한 후, 구매는 벤*민 무어의 본점이자 쇼룸이 위치한 논현점에서 진행되었다. 벤*민 무어는 처음 페인팅을 접하는 사람을 위해 롤러, 붓, 마스킹 테이프, 커버링 테이프, 페인트 통 오프너 등을 한데 엮은 도구 패키지도 함께 판매하는데, 미국산과 중국산이 옵션으로 제공된다. 큰 차이는 없어보여서 가격이 조금 저렴한 중국산을 구입했다. 직원이 색에 대한 상담을 진행한 후 즉석에서 색상코드를 기계에 입력하고 페인트 베이스에 도료를 섞어준다. 후*필름의 자동 사진 현상기처럼 생긴 이 페인트 조색기는 신세계였다. 또한 페인트 주문 전 본점 쇼룸 2층에서 페인팅 체험이 가능하다. 나 역시 페인팅이 처음이라 롤러를 한 번 사용해보기로 마음먹고 체험 도구를 준비해달라 요청했었다. 여기에서 직접 페인트 붓, 롤러, 롤러 연장 스틱 등을 사용해 보는 것이 가능하다.


이제 시작해보자


노동요는 필수


흔히 걸레받이라고 부르는 장판 끝 마감과 각종 창틀, 스위치 등을 보호하기 위해 커버링 테이프와 마스킹 테이프를 꼼꼼하게 붙여준다. 페인팅은 커버링 테이프와 마스킹 테이프를 경계로 윤곽이 잡히기 때문에 이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다시 하자보수를 해야한다. (실제로 이를 가볍게 여겼다가 걸레받이 쪽을 다시 페인팅하기도 했다)


구매한 도구 묶음에 포함된 트레이에 비닐을 씌우고 페인트를 쓸 만큼만 덜어낸다. 이 때 유용한 것이 마시고 남은 커피집 종이컵인데, 이와 같은 도구를 쓰지 않으면 페인트가 통 밖으로 흘러넘쳐 버리는 양이 많아진다. 통 밖에 페인트가 흐르면 '페인팅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감성적 충족은 되지만 나중에 칠하다 페인트 추가구매를 위해 또 장갑을 벗고 집을 나서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으니 종이컵, 플라스틱컵 등의 덜어낼만한 용기를 미리 구해두도록 하자.


커버링 테이프와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는 작업이 깔끔한 결과물을 위한 첫걸음이다


창틀도 이렇게 덮어주고


각종 스위치들도 커버링 테이프로 덮는다


천장을 제외하고 완성


천장을 제외하고 페인팅이 완료되었다. 결과물이 나쁘진 않았는데, 이케*에서 구입한 펜던트형 조명을 달고 나니 기존에 있던 형광등 자국이 천장 벽지 위에 검게 남더라. 이를 커버하기 위해 다시 천장 페인팅 + 걸레받이 테이핑이 꼼꼼하지 못했던 부분을 위한 하자보수 페인팅을 감행했다. (ㅠㅠ)


사면 완성


시조새 같이 생긴 저 검은 게 바로 형광등 자국


천장 페인팅은 상당한 인내를 요구한다. 롤러에 연장봉을 이은 후 수직으로 롤러를 들고 칠해야 하는데 페인트 양을 조금만 많게 해도 얼굴에 튀기 십상이고, 튀지 않더라도 계속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목 근육과 척추에 상당한 무리가 된다. (주위에 페인팅을 체험하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다면 적극 활용하도록 하자) 나는 회사 동기의 도움을 받고 피자를 사줬다. 그는 다시 페인팅을 하지 않겠다고 전한다.


완성 ㅠ


드디어 벤*민 무어 Steel Wool 색상으로 방이 완성되었다. 이제 가구를 채울 일만 남았다. 다음에는 주방과 욕실을 고쳐야 하는데 뾰족한 아이디어가 당장은 떠오르지 않는다. 살면서 느릿느릿 아이디어를 수집해보기로 한다.


윽 ㅠㅠ 촌스러운 데코시트에도 놀라고, 벽체 시공이 안된 선반 뒤 모습에도 놀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