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을 시켜먹을 빌미
하루에 한 번 다이어리에 짤막한 일기를 쓴다. 다이어리에 적힌 글들은 브런치에 다시 적기도 하고, 적으면서 분량을 늘리기도 한다. 그렇게 꼬박 기록을 하다가 불과 어제까지 내가 2020년으로 적고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벌써 1분기가 끝나가는 마당에 나는 아직도 2021년을 받아들이지 못했단 말이야?
그도 그럴게 얼마 전은 남편과 만난 지 3주년이었는데 둘 다 까맣게 모르고 지나갔다. 뒤늦게 알아채고는 뭐야 어떻게 둘 다 알아채지 못했지, 대학생 때 연애 같았으면 바로 이별감이라며 깔깔 웃고 말았다. 연애 때도 100일 단위는 챙기지 말자며 년 단위만 기념해보자 했는데 이제는 년 단위도 챙기지 않게 된 것이다.
둘 다 기념일을 따박따박 챙기는 사람들은 아니다. 무엇보다 결혼기념일이 생겨서 일수도 있겠다. 따지고 보면 결혼기념일이 있는데 이제 몇 주년을 챙기는 게 맞아? 싶기도 하다. 근데 분명 아쉽다. 뭔가 아쉬워.
요새 기념할만한 일이 별로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거창하게 뭘 하고 그러는 날이 아니라 그냥 달력에 써놓고 소풍처럼 기다리게 되는 날. 그런 일련의 기대감으로 지리멸렬한 일상을 견디게 하는 힘 같은 것 말이다. 특히 이 시국엔 뭘 할 수 없으니 더 기념하고 싶고 그런 마음이 있지 않나? 우리 부부만 그런 걸까?
사실 우리의 결혼기념일에는 치밀한 계산이 있었다. 우리 둘 다 생일이 상반기에 몰아져 있는 탓에 최대한 결혼기념일 정도는 좀 분산해서 배치해놓자, 라는 야무진 계획. 그렇지만 이 계획은 철저히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코로나 때문에 결혼식이 연기되어서 이벤트가 연달아 배치된 것이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맛이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는 굳이 떠난 3주년을 붙잡고 치킨 시키자는 빌미로 삼는다. 원래 주말이 가까워 올 때쯤이면 자주 치킨을 시켜먹지만. 맛있는 걸 먹자며. 무엇이든 마음의 부채감을 좀 덜도록 하자며 타협을 한다. 다음 기념일엔 뭘 할지 고민하면서. 어차피 뭘 하지도 않을 것이지만. 기념일을 기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