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러닝 합니다
러닝을 다시 시작했다. 작년 여름에 뛰다가 가을쯤 멈췄으니까 반년만인 것 같다. 이번 달리기의 목표는 5km 29분대가 되는 것. 발목 부상만 아니었다면 작년에 이미 달성했겠지만. 사실 이번에 꼭 달성하지 않아도 괜찮다. 달리다 보면 저절로 이루어질 수도 있는 현실적인 목표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 나는 오래 달리기를 가장 싫어하는 아이였다. 운동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달리기만은 정말 나랑 맞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체력장 때 남녀 그룹을 나눠 번호별로 짝을 매겼는데, 하필 내 짝은 달리기 1등이었다. 짝이라고 해야 그냥 그 아이가 운동장 몇 바퀴를 도는지 카운트하는 게 다였지만.
내 짝은 1등이어서 카운트를 수월하게 끝내고 나는 여유로운 시간은 즐길 수 있었는데. 내가 늦게 달리니 짝이 굉장히 화내는 것이었다.(이해가 간다) "걷지 말고 달리라고!" 운동장이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물론 가뿐히 무시하고 걸어 들어와 완주한 경험이 있지만. 목구멍에서 피맛이 나는 느낌은 그때가 가장 선명했을 거라고.
어른이 되어서 달리려는 생각을 처음 가졌던 것은, 내가 약수역에 살 적이었다. 걸어서 남산을 가는 게 취미였는데 그때 러닝 크루라는 게 막 생겨서 무리를 지어 달리는 모습이 제법 멋있어 보이더랬다. 근데 쉽사리 도전을 하지 못했던 건 내가 오래 달리지 못하는 걸 잘 알아서였다. 나는 낙오자가 될게 분명해. 민폐가 될까 봐 쉽사리 클럽에 가입도 못했다.
우울증이 왔을 때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회사에도 휴직계를 내고 계속 침대에 누워있었다.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그냥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씻는 것조차 힘들어서 정말 침대와 함께 침전하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흔적도 없이 침대에 흡수되는 게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약을 먹기 시작하고, 조금은 의지가 생겼을 때였다. 그때부터 혼자 달려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되니 우선 되는 만큼만 달리고. 또 쉬다가 달리면 된다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는 남편의 조언이 꽤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되더니 1km를 단숨에 뛰어버리는 나를 발견했고, 이게 정말 되는 거구나 몸소 체험한 순간부터 달리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요새 마스크를 쓰고 실외 러닝을 하는 건 꽤 곤혹스럽다. 내가 만약 마스크를 쓴 상태로 첫 러닝을 경험했다면 난 역시 달리기는 맞지 않는다며 영영 달리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근처 학교 운동장을 뱅뱅 돈다. 좀 일찍 달렸다면, 그랬다면 인생이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거창한 의미는 아니고. 그냥 무언가는 변했을 것 같다고. 물론 지금도 그런 의미에서 달리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완주 끝에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몸이 되었으니까. 이 정도면 달렐루야?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