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틈새마다 마음이 들썽거린다.
여름으로 넘어온 지 좀 된 것 같은데도 수런거리고 소란한 마음을 붙일 곳을 찾지 못해 종종거린다.
자꾸만 소설에 손이 가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김영하 작가는 어떠한 저자에 대해 확실한 취향이 생기면 평이 어떻든 간에 그이의 책은 나오는 대로 전부 사본다고 했다.
나는 한 권의 소설을 읽을 때에도 온갖 평을 읽고 나서 나의 취향이라는 확신이 들거나 새로운 궁금증이 일면 그제야, 그것도 일말의 의심을 품은 채 주저하며 책을 펼친다.
나에게는 김영하 작가 같은 소신이 없다.
'밀리의 서재'에서 한 동안 잊고 있던 《쇼코의 미소》를 읽게 된 것도 그러한 배경이 작용한 탓이었을 거다.
몇 년 전 그 책이 나왔을 때, 왠지 모르게 표지에 이끌렸음에도 불구하고 별로일지도 모른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외면했던 나였다. 별로였다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 나의 독서 생활에 어떠한 한 획을 그었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읽기를 거부했던 거였는지.
7편의 단편 중 가장 먼저 나오는 <쇼코의 미소>를 읽자마자 김애란에게 줄곧 향해 있던 내 마음이 조금은 가지를 칠지도 모르겠다는 어렴풋한 예감이 들었다.
요즘 들어 김금희, 김초엽, 장류진, 조해진 등의 책을 읽으며 내가 놓치고 있던 세계를 들여다보는 재미에 빠졌었는데 이처럼 찰떡같이 편안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물론 한 권의 책으로 작가와 나의 궁합을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실망하면 실망하는 대로 작가를 바라보는 것도 그 작가를 향한 애정표현의 한 방법이겠다 싶었다. 이렇게 너그러운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이 작가를 신뢰하게 된 건가. 문득 《문학하는 마음》에 실린 최은영의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다.
"작품을 마음으로 읽어주시고, 제가 썼던 마음까지 보시는 독자들도 있어요. '이 사람이 이거 썼을 때 이런 느낌이었겠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는데......' 이렇게요. 평가하는 게 아니고 그런 느낌을 써주신 분들을 보면 뭔가 인생이 연결된 느낌이 드니까 기분이 좋고 힘이 돼요."
말로 사람을 부리는 그런 문장이 아니라 이야기를 끌고 가는 그녀만의 서사 속에 마음이 이끌렸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십대와 이십대의 나는 나에게 너무 모진 인간이었다.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고 부당하게 대했던 것에 대해 그 때의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애에게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어깨도 주물러주고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따뜻하고 밝은 곳에 데려가서 그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쇼코의 미소》, 작가의 말 중에서
음지를 둘러싼 이야기를 온기 넘치게 그린 작가의 마음이 이해되는 말이었다.
웹소설의 인기는 치솟아 가고 일반문학은 팔리지 않는다는 시대라지만 웹소설이 건넬 수 없는 마음이 종이책 소설에 있다고 본다. 인스턴트식 즐거움이 아니라 곱씹어 보게 만드는 그 말들의 떨림이 지닌 무게는 읽는 이의 마음에 큰 자국을 남기고 만다.
좋아하는 작가를 만난다는 건 나의 정체성을 쌓아 올리는 일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나만의 색깔, 나만의 정체성을 세워가는 일은 좋아하는 작가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일에서 출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 작가에게 다가가는 데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나이기에 나만의 색깔이 스며 나오는 데에도 한참이 걸릴지 모르겠다. 느리면 느린 대로 그것도 내 정체성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려나 보다. 덩치 크고 느리게 변하는 소설이라는 장르 안에서 내가 편안하게 헤엄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여름은 길고 여름은 책 읽기 좋은 계절이므로 작가의 다른 책들은 어떠한 평에도 좌우되지 않고 소신있게 읽어볼 참이다. 그래도 좋으면 애란 언니에게 미안하지만 사랑을 조금 나눠주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