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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Sep 09. 2020

독자를 유념하며 번역하는 마음이란

12곡의 구성을 놓고 고민할 때, 나는 여전히 앨범으로 음악을 듣는 소수를 생각하며 만든다.....앨범의 구성을 놓고 고민할 때는 여전히 어딘가에서 케이스를 열고 기대감 속에 첫 곡부터 들어 볼 누군가를 생각하며 만든다. 조그만 사무실에서 아직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직업으로서의 음악가, 김목인.    




언제부턴가 번역을 하면서 독자를 꽤나 생각하게 된다.


번역가로서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데 이게 또 그렇지만은 않다. 눈 앞에 놓인 텍스트를 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조급증이 앞설 때가 많고 일단 초고를 마치고 그러니까 급한 불을 끄고 나서 수정 작업에 들어갈 때가 되어서야 시야가 조금 넓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김목인 작곡가가 쓴 글을 읽다가 나 역시 요새 조금은 그런 마음으로 텍스트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독자가 거의 확실한 경우, 정보 전달이 목적인 텍스트이지만 구멍이 많을 경우 특히 그렇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뉴욕의 예술작품을 소개하는 책이 그러한 예인데, 짧막한 설명이 다이다 보니 그대로 번역해 놓고 나면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이 책은 뉴욕에, 뉴욕의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볼 테고 누군가는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이 책을 들고 뉴욕에 와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을 찾아다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무거운 캐리어에 들고 갈 물건을 고심하는 가운데 픽 되었을지도 모르는 이 책이 뭔가 알 수 없는 어색함을 안겨준다면 정말 속았다는 기분이 들지 않겠는가.친절한 안내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전체적인 감이 잡혔다. 역시 독자는 중요하다.


하지만 정영목 교수님은 산문의 경우 "능력이 미숙한 번역가가 다 자기 목소리로만 번역을 하게 될 수도 있는" 위험을 경고한다. "노련한 번역가는 인문학서에서도 저자의 목소리를 읽어내지만 미숙한 번역가는 그렇지 못하다고", "산문에는 작자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배어 있기 때문에 잡아내기가 간단치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 하고 있는 또 다른 책이 그렇다. 우리의 삶에 침투한 여우에 대한 이야기인데 객관적인 정보도 많지만 저자의 생각과 독특한 유머 코드, 시적인 묘사 등도 두드러진다. 과학과 문학이 접목된 이 책에 내 목소리를 덧씌우지 않아야 할 터다. "작자만의 독특한 성향과 무늬"를 읽기 위해.  


쉽지 않을 때도 있다. 유머 코드가 이해되지 않거나 나와 맞지 않을 때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고픈 유혹도 크다. 번역을 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번역가의 개인적인 스타일이 녹아 들어가기 때문에 100퍼센트 작가의 목소리를 전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김선형 번역가의 말 마따나 번역은 애초에 실패를 전제로 한 작업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읽어내려고 노력한다. 번역가로서의 책임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내 이름을 달고 책이 나올 날을 생각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나 자신을 붙들어맨다.



번역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그거예요. 소소하고 작지만 확실한 재미, 남의 목소리를 읽어내는 거요.
                                                                                                             -Axt, 정영목 인터뷰 중에서


교수님의 말이 맞다. 누군가는 그게 뭐가 재미있냐 하겠지만 번역가, 글을 쓰는 사람은 원래 소소한 데서 재미를 찾는 법이다. 이 사람은 또 어떠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말을 걸고 있는가. 최초의 독자로서 맞보고 뜯고 씹는 재미. 새로운 책을 받을 때마다 내가 설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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