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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Sep 10. 2020

내가 처음 번역을 시작했을 때

내가 처음 번역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참고 도서가 많지 않았다. 회사에서 번역 일을 조금씩 맡다가 엉뚱하게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당시, 나의 유일한 지침서는 김우열의 <나도 번역 한 번 해볼까?> 뿐이었다.


아직까지도 갖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은 직접 겪어본 결과 모든 일이 그렇듯 다 맞지도 그렇다고 다 틀리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때는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 그것뿐이었던 터라 그 존재만으로도 그저 황송할 뿐이었다. 교보 문고에 가서 그 책을 집어 들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밑줄 그어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주간 번역가>라는 네이버 카페를 운영하고 있던 김우열 번역가는 "번역가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으로 연재 글도 발송하고 있었는데 지금 "이슬아"가 하는 연재 서비스의 시초가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든 무에서 시작해야 했던 나에게는 한 줌의 정보라도 귀했기에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저기 저 높은 곳에 도도히 서 있는 유명한 번역가들은 번역가로서의 삶을 담은 에세이는 낼지 몰라도 어떻게 번역가가 되어야 하는지는 좀처럼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들 명확한 경로가 없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그냥 아는 편집자가 한 번 해보라 해서, 아르바이트로, 그렇게 시작한 경우가 많지 나처럼 작정하고(?) 덤벼드는 경우는 별로 없었을지도.


지금은? 지금은 정보가 넘쳐난다. 누구나 저자가 되는 시대에 당연히 글 잘 쓰는 번역가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 책도 분야 별로 그러니까 출판, 기술, 영상 번역 등 세분화되어 있고 입문 방법에서 공부 방법에 이르기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하아, 시대가 많이 변했다. 불과 10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을까. 발 빠르게 대처하는 스타일이 되지 못하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처음 책을 번역한 것은 2011년이다. 대학원 1학기를 마친 방학이었다. 그때의 들뜬 마음을 생각하면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또다시 설레고 마는데 다행인 건 그때보다 지금은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출판 번역이라는 업계의 전반적인 상황이랄까 뭐 그런 것들에 대해.


한정된 길을 걸어온 나는 내가 다른 세계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을지 정말이지 너무 궁금했다. 내가 대학원에 입학한 것도 결국은 번역이란 행위로 돈을 벌고자 함이었기에 당장 밥벌이가 가능한 일인지 알아봐야 했다. 대학원에 입학하기까지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으나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 학기를 마치고 바로 일을 시작해 보았다. 자세한 내용은 앞선 글 "나의 슬픈 에이전시"에서 풀어놓았으나 그 당시의 경험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자면 신선함 + 충격이었다.


출판이나 편집 이런 쪽에 문외한이었던 나에게 모든 것이 신선했으며 돈을 뜯기는 경험은 정말이지 충격 그 자체였다. 21세기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싶었고 덕분에 이 바닥의 날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물론 내가 본 것이 전부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신선함과 충격이 버물어진 경험이 이제는 조금씩 희석되어가고 있지만, 이제야 그나마 내가 생각하는 어느 정도의 기준에서 돈을 받고 있지만, 번역가라는 세계는 견고한 땅이 아니다. 게다가 이제는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점치는 일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쉽게 바뀌는 지금, 내가 10년 전에 택한 진로가 앞으로도 나에게 같은 무게로 다가올지는 확신할 수 없다.




10년 후 번역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그때도 나는 번역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 지금보다 실력이 더 출중해져 조금은 더 괜찮은 책들을 번역하고 있기를. 아이들이 자라 내 시간이 많아졌을 테니 그 시간을 이용해 기획도 더 해보고 공부도 더 하고 있기를. 그리고 번역만으로는 정말 먹고살기 힘드니(아니  먹고사는 일만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부수적인 일에도 눈을 돌려볼 수 있기를.


지난 10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버렸는지 아는 나로서는 향후 10년을 그려보는 일이 마냥 설레지만은 않다. 허나 미래에는 분명 새로운 일들이 생겨날 테고 그때 내가 서 있을 지점을 가늠해 보는 일은 언제나 조금의 설렘을 동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잘 살아야 할 것이다. 그때에도 나의 지난 10년을 반추할 수 있다면 그건 내가  잘 살고 있고 잘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백수린 작가의 인터뷰에 나를 겹쳐 본다.


그러니 먼 미래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미래에도 저는 소설을 열심히 쓰는 사람일 것이고, 좋은 소설을 쓰고 싶어 노력하는 사람일 거라는 건 알아요.


좋은 번역가가 되고 싶어 노력하고 있을 나를 그려보는 건 살짝 달콤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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