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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Apr 03. 2020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에는 대가가 따른다

꿈은 아니고 말고의 세계가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회사를 박차고 나온 지 꼬박 10년째다. 


5년 동안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1년 동안 공부를 하고 2년 동안 대학원을 다녔으며 그 후 7년 동안은 프리랜서로 살아왔다.


그 7년 동안, 출판번역가로 자리 잡기 위해 참으로 용을 썼다. 출판계에 이렇다 할 인맥도 없는 상태에서, 영어를 한 동안 손에 놓고 있던 상태에서, 그저 무모하리만치 자신만만했던 감정 하나로 시작한 도전이었다. 아니다 싶을 때는 과감하게 뒤돌아설 줄 아는 결단력을 지렛대 삼아 날아오른 도전.


그렇게 7년 동안 서른 권이 조금 넘는 책을 번역하고 다른 문서 번역들도 하면서 삶을 꾸려왔다. 일 자체만 놓고 보면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다. 허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 대가는 대부분 경제적인 형태로 찾아온다.




책 한 권을 번역하면서 받는 돈은 에이전시를 끼고 일하다가 직접 출판사와 거래하면서, 또 에이전시에서 가져가는 비율이 줄어들면서 점차 올라갔지만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못 미친다. 끝까지 올라가 봤자 막다른 벽이 있을 뿐이라고 진짜 잘 나가는 번역가도 매당 4,500원 선에서 사다리가 끊긴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일단 거기까지라도 올라가 보고픈 바람이다.       


책 한 권이 끝나갈 무렵이면 약간은 초조한 마음으로 또 다른 일을 찾아보던 프리랜서의 생활이 지겨워질 무렵, 그러니까 작년부터는 일이 꾸준히 이어져 이 사이트, 저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는 수고를 덜게 되었으니 감사해야 할까.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곳저곳에 연락을 넣고, 또 오지 않을 연락을 기다리는 일은 참 진이 빠지는 일이다.

    

문제는 그렇게 들어오는 일들과 나의 궁합이다. 내가 가장 많이 하고 있고 또 비교적 단기간 내에 완성할 수 있는 분야가 분명 있으나 그게 내가 절실히 원하는 분야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일이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겠지만 푹 빠져서 일을 할 만큼 애정이 가는 책은 많지 않다. 모든 책이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나와 궁합이 맞는 책들이 저기, 다만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작년 말, 새로운 클라이언트와 부딪히면서 내 마음을 알게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나를 아랫사람 부리듯 하는 그의 행동에 마음이 많이 불편했던 날들이었다. 나의 입지는 내가 정하는 것일 텐데, 나는 왜 아직도 그런 자리에 오르지 못했나, 나는 왜 아직도 당당히 요구하지 못하는가, 나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렇게 한동안 고민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비로소 빠져나온 나는 다시 한번 나를 찾아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내 가치를 높여보자고, 그 전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일을 해보자고, 그리고 중심에서 흔들리지 말자고. 이상주의적인 다짐일 수도 있겠으나 그런 다짐조차 하지 않겠다면 내가 회사를 그만둔 의미가 없을 거라는 뒤늦은 반성문을 쓰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 스톱을 외치지 않으면 난 아마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애매한 액수의 돈을 벌기 위해, 잠시의 만족을 위해 떠밀리듯 나아가고 말 것만 같았다. 모든 결정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판단이 가능하므로 10년 전의 내가 그랬듯 우선은 나를 믿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물론 나는 지금도 많이 흔들리고 있으며 내가 정한 기준보다 낮은 번역료로 번역 의뢰가 들어오더라도 하루, 이틀 고민하고 또 고민한 뒤 거절하는 소심한 사람이다. 내 가치를 찾겠다는 둥 책임감 없는 말만 잔뜩 늘어놓고 또 돈이 궁하면 원치 않는 책을 받아 들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번역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한 번 스톱한 나와 아무 생각 없이 직진만 하는 나는 결코 같지 않을 거라 믿어본다.      




《아무튼, 메모》에서 정혜윤은 말한다. 


꿈은 ‘아니면 말고’의 세계가 아니다. 꼭 해야 할 일의 세계다. 꿈은 수많은 이유가 모여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던 그런 일, 포기하면 내가 아닌 것 같은 일이다. 진짜 꿈이 있는 사람들은 꿈 때문에 많은 것을 참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용감하게 선택하고 대가를 치른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에는 분명 대가가 따르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은 데에는 더 큰 대가가 따른다.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다. 10년 전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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