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글을 써야 하는 나

by 물고기자리

요즘에는 시간이 빨리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투정 부린 것에 대한 벌을 받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간 귀한 줄 모르고 허투루 보냈던 20대의 내가 흘려보낸 시간들을 다 그러모아 지금 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시간은 적금을 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들 수 있다 한들 철없던 내가 그런 적금을 들었을 리가 없다.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콘텐츠, 하고 싶은 공부는 내 뒤로 차곡차곡 쌓여만 가는데, 일상의 책임들이 성벽처럼 가로막고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아무리 조각 시간을 모아 본다 한들 욕망의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책을 읽거나 번역 초고 작업을 할 때에는 약간의 소음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크게 방해가 되는 건 아니다. 엄마 특유의 초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면 되므로. 하지만 글을 쓰는 건 다르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끼어듬에 의해 사고의 흐름이 방해받지 않는 시간, 자유로이 흘러가 어디에 닿을지 나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사고의 실타래를 풀어헤치고 내 안의 농밀한 지점에까지 가 닿는 순간과 마주하는 황홀경을 느끼려면 그 누구의 방해도 용납할 수 없다. 초 단위로 나를 찾는 아이들 곁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글을 쓰지 않는 삶의 황폐함을 이미 알아버렸으므로. 현실의 나에서 슬며시 빠져나와 나를 객관화하는 시간은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 글이 나를 살린다는 말이 정말 맞다.


어쩌면 글을 쓰는 순간, 한 편의 글을 완성한 순간, 조금 더 나은 내가 된 듯한 모습에 우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좋은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조금 더 나은 내가 된 듯한 기분에 빠지는 것처럼. 아무렴 어떠랴. 그런 순기능이라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젊을 때는 고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거나 술을 마셨다. 이제는 그런 일이 생기면 책상 앞으로 간다. 내 안으로 파고들어 나와 마주한다.


처음에는 그런 내 모습이 해외에 나와 사는 데다가 프리랜서로 일하기 때문에 게다가 두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바뀐 생활 패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본래의 모습이었다.


생각해 보면 20대에도 내가 가장 좋아한 시간은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술자리를 누구보다 좋아했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와 싸이월드에 글을 끼적이는 시간에야 나는 비로소 진짜 나다워졌다.




남편과 두 아이를 제외하고는 정기적으로 만나야 하는 사람이 없는 이곳에 와서야 어쩜 나는 진짜 나로서의 삶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안에 있던 것들이 후두두 쏟아져 나오는 시간이 지닌 치명적인 매력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인간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인생에 정답 같은 건 없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결국 들여다보아야 할 구멍은 나임을 나는 오늘도 글을 쓰면서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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