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을 주로 쓰면서 또 왼쪽에 독감 예방 주사를 맞고 왔다. 늘 이런 식이다.
오늘 저녁은 간단하게 카레. 재료를 써는 왼팔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주사 맞은 부위의 근육이 욱신거린다.
아무리 간단하다지만 재료를 썰고 볶고 또 익는 동안 눌어붙지 않도록 간간히 저어주는 행위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시간은 고스란히 흐른다. 이 시간을 나름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머릿속은 마침표를 찍지 못한 문장, 새로운 쓸거리, 오전에 번역한 어색한 문장 생각으로 시끌시끌하다.
이 시간들이 다 내 시간이 된다면 나는 더 많은 내 일을 할 수 있을까.
알라딘에서 1주일에 한 번 꼴로 책을 주문하고 있다. 어느덧 플래티넘 회원으로 등극하고 말았지만 한 번 시작된 읽기 중독은 멈출 수가 없다. 게다가 소설 아니면 에세이로 범주가 좁아지고 있어서 큰일이다. 번역가로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요새는 점점 외곩수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굳이 제재를 가하지는 않기로 했다. 내 맘이 그리로 간다면 뭔가 말해주고 싶은 게 있는 것일 테니 마음이 가는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내가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공감이나 위로, 혹은 단순한 궁금증 때문은 아니다. 나는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 글을 썼을 작가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때로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때로는 뿌듯해하며 그 문장을 써 내려갔을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다정해진다.
최근에 발견한 사실인데 글을 한 편 쓰면 아이들에게 짜증을 덜 내게 된다. 감정의 찌꺼기를 다른 곳에서 털고 난 후라 아이들을 감정의 배수구로 삼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한 꼭지의 글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점차 줄어든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의 글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리슬쩍 내뱉는 내 모습에 놀랄 때도 있다.
처음에 힘이 잔뜩 들어간 글을 내뱉었다면 이제는 내 글에 편안해진 나 자신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글을 자주 쓰는 과정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 기술이 자란 점도 한 몫 했다고 믿고 싶다.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어둠 속에 나를 두고 나오는 일이다. 그러니까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계속 쓰고 싶다. 머릿속이 와글와글한 상태가 글을 통해 차분해지는 경험은 글을 써 본 사람만이 안다.
그나저나 이슬아의 신간이 나왔다는데 빨리 받아보고 싶다. 믿고 보는 작가의 책은 언제나 반갑다. 예약 장바구니에 넣어둔 상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아서 글쓰기 참 좋은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