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번역가들

by 물고기자리

김남주 번역가가 쓴 <사라지는 번역가들>을 읽다가 이내 부러워지고 말았다. 그녀의 동지 있음에. 그것도 아주 국제적으로. 감히 김남주 번역가와 나를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국제적인 동지는커녕 대학원 동기 말고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번역가조차 거의 없었다.


지난 10년 간 혼자 일했다. 골방에 틀어박혀 일하려 한 것은 아니었으나 다른 이들에게까지 눈을 줄 여유가 없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번역 하나만 하기에도 하루는 벅차게 흘러갔다. 간간히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소통을 해보기도 했으나 블로그를 찾아오는 이들은 동지 번역가보다는 번역가 지망생이 많았다.




그러던 내가 올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인스타에도 브런치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그곳에는 수많은 번역가가 있었다. 남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했던 것은 아니다. 번역가의 생활이라 봤자 뻔했으니까.


내가 궁금했던 건 그들의 존재 자체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 일하지 않을 때의 일상이, 너무 사소한 일상이 궁금했다.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그들이 일하는 창밖 풍경은 어떠한지. 신기하게도 그들은 그런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었고 난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다들 잘 살고 있구나.


그곳에는 내가 늘 롤모델이라 말하는 번역가도 있었다. 새로 출간된 역서에 살포시 좋아요,를 누르며 고백 아닌 고백을 하는 경험, 그리고 댓글을 받는 경험은 그냥 역서가 출간된 것을 우연히 발견해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경험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그렇게 온라인 동지들을 하나둘 쌓아갔다. 나와 같은 영어 번역가뿐만 아니라 일본어 번역가와 중국어 번역가도 많았다.



송은정 작가의 <저는 이 정도가 좋아요>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물리적 시공간을 공유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감히 동료라 부를 수 있을까. "같이 일을 한다는 건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사소한 움직임, 이를테면 모종의 '발전'을 발견하는 사이가 된다는 뜻과도 같다"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나 역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을 동료라 부른다. 그들이 새로 출간된 역서를 올리면 언제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단다. 내 일처럼 기뻐한다. 서로의 발전을 응원하는 일은 나를 응원하는 일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벌면서 좋아하는 우리들은 서로 닮아있고 그러기에 누구보다도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서로가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한눈에 알아본다.


내가 처음 번역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상황이 많이 달랐다. 번역가들이 모이는 온라인 모임은커녕 오프라인 모임도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고 온라인 상에 자신의 일상을 적극 공개하는 번역가도 없었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졌다. 내가 골방에 처박혀 혼자 일하는 사이 많은 이들이 자신을 알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인데 나 혼자 몰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김남주 번역가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만나지 못하는 나의 동료들의 근황이 궁금할 뿐이다. 오늘 저이가 무엇을 먹었는지, 그이의 강아지는 잘 있는지 궁금해하는 하루는 생각보다 근사하게 흘러간다.




김목인은 <직업으로서의 음악가>에서 자기 자신을 작은 가게에 비유한다. 그러면서 옆집에는 비슷한 장사를 하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고 모두 자기 이름이나 별명을 간판으로 내걸고 있다고 말한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기웃거렸나 보다. 다른 가게들은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오늘은 맑음인지 흐림인지, 그들의 책장에는 어떠한 책이 꽂혀 있는지 궁금해서.


너덜너덜해진 <번역의 탄생>을 몇 번째 구입하는지 모르겠다는 글에 댓글을 달며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우리만 아는 암호 코드라도 되는 냥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