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긴 한가 보다. 지난달 마흔 생일을 맞이한 뒤 무지하게 흔들리고 있다. 저번 주 주말에는 파이어족에 꽂혀서 잠시 솔깃했나 보다.
파이어족이란 경제적 자립(Financial Independence)'을 토대로 자발적 '조기 은퇴(Retire Early)'를 추진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온갖 '족'이 유행하다가 이제는 또 파이어족이 유행하나 보다. 하지만 파이어족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은퇴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나는 이미 늦은 것 같다. 게다가 가늘고 길게 살려는 나의 신조와도 애당초 맞지 않다.
그럼에도 내가 이 트렌드에 잠시 끌린 건 경제적 자립이라는 말이 지닌 매력 때문일 거다. 경제적 자립은 누구나 꿈꾸는 달콤한 디저트 같은 것 아닌가? 그런데 파이어족이 되기 위해서는 연 생활비의 25배를 저축한 뒤 이를 5퍼센트의 수익률로 운용해야 한단다. 그래서 파이어족을 꿈꾸는 이들은 현 수입의 7~80퍼센트를 저금하는 극단적인 생활을 하는 한편 생활비를 줄이도록 삶을 재점검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있는 우리 집에서 운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에 가깝다.
지금부터 10년 바짝 벌어서(어떻게?) 불가능에 가까운 경제적 자립을 일구고 50대 초에 은퇴를 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 삶이 만족스러울지 모르겠다. 물론 파이어족이 말하는 조기 은퇴는 아예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경제적 자립을 통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나 전혀 생각도 못한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것이라 하지만 나는 지금 내 일이 좋다.
경제적 자유가 생겨서 내 일을 봉사 활동으로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사실 10년 후면 경력이 절정에 달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때 일을 놓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게다가 그때가 되면 아이들이 10대가 될 텐데 사교육비는 최대한 줄인다 하더라도 아이들과 마음껏 여행 다닐 돈은 넉넉했으면 싶다.
올해 집 사는 데 보탤 다운페이를 조기 은퇴를 위한 종잣돈으로 삼는 방법도 잠시 생각해봤다. 실제로 아는 동생은 모기지로 끼고 있던 집을 팔고 그 돈으로 지금 한창인 주식시장에 투자하려고 계획 중이다. 나는 그 친구와 역으로 가는 셈인데 그건 동생은 싱글이고 우리는 아이가 둘인 가정이라는 차이점 때문일 거다.
조기 은퇴, 경제적 자립도 중요하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과 월세를 전전하며 돌아다니는 생활을 이제 그만 청산하고 싶다. 내 집 같지 않은 내 집에 사는 기분에서도 벗어나고 싶고. 그렇다면 앞으로 30년은 로또가 당첨되지 않는 한 모기지를 갚는 데 많은 돈이 들어갈 터라 연 생활비의 25배를 별도로 확보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파이어족에 대해 알아갈수록 정신이 바짝 차려진다. 분명 파이어족은 나에게 답이 아니지만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도 아니지만 취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향후 10년 동안 내가 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게 소극적 소득을(passive income)을 이곳저곳 심어두는 일이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단순히 금전적인 부분만이 아닌) 복리의 힘을 빌리는 일이든.
우선 10년이라는 시간을 목표로 그 이후부터 일하는 시간을 조금씩 줄이는 걸 목표로 삼아볼까 한다. 그전까지는 후회 없을 만큼만 조금씩 일을 벌여보는 걸로. 물론 현실은 늘 피곤에 찌들어 아이를 데리러 가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 하나만 하기에도 버겁지만, 하루 무리하면 다음 날 골골되는 마흔이지만, 더 늦으면 체력도 용기도 사라지고 말 것만 같다.
워커홀릭은 지양하지만 그렇다고 나태나 게으름 따위의 트렌드와도 안 맞아 방황하던 나에게 이번 길이 삶의 지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