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의 아는 작가님의 글을 보고 작가는 왜 책으로만 먹고살 수 없는가, 라는 질문을 한참 생각해 보았다. 첫 책의 인세를 받아본 뒤 느낀 실망감이 묻어나는 그 글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을 고민이 담겨 있었다. 작가라는 떳떳한 아니 명예로운 직업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는 가장 큰 결과물인 책으로만 생계를 꾸릴 수 없는 현실, 그럼에도 하루에도 수많은 작가가 탄생하는 이 아이러니한 세상을 나는 이해해 보고 싶었다.
자본주의 논리를 바탕으로 '책으로 먹고살 수 없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첫째, 사람들이 책을 잘 사지 않기 때문에 둘째, 책값이 너무 싸기 때문에 정도가 아닐까.
장사가 잘 되려면 박리다매나 고가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소위 베스트셀러에 올라 50쇄를 찍는 책들은 박리다매에 해당할 것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인세가 한 인간의 생계를 어느 정도는 책임져줄 수 있을 테니. 그렇다면 고가 정책은 어떠할까. 지금의 책값도 비싸다고 아우성치는 독자들을 상대로 고가 정책을 펼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녹아 있는 것치고(그렇지 않은 책도 많지만) 한국의 책값은 너무 싸다. 미국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미국 서점에 가보면 웬만한 책은 20달러가 넘는다. 한국에서 2만 원이 넘는 책을 선뜻 구매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고품질의 물건, 소위 명품이라는 물건에 사람들은 그만한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려 한다. 내가 걸칠 옷, 가방 따위에는 아무렇지 않게 돈을 쓴다. 하지만 그만큼 비싼 책이 나타난다면 분명 거부 의사를 보일 것이다.
작가가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쏟아부은 정성을 고려해 책값을 매긴다면 시 한 권은 9천 원이 아니라 9만 원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9만 원 주고 시집을 사 볼 사람은 없다. 내가 아끼는 유유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들은 대체로 얇다. 말들 시리즈나 ~하는 법 시리즈가 그렇다. 그런데 누군가가 책이 너무 얇아서 놀랐다며 돈이 아깝다는 댓글을 단 걸 본 적이 있다. 단순히 책의 두께만으로 책의 가치를 평가하는 독자들이 있는 가운데 책값을 지금보다 더 올린다는 건 그나마 팔리는 책조차 팔리지 않게 만들 소지가 있다.
결국 작가가 책만 써서 생계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 작가님은 결국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쓰되 생활인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뒷맛이 씁쓸하면서도 너무 잘 아는 얘기라 막을 수도 없었다. 그이가 글을 아예 놓아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나 역시 번역이라는 생활인으로 살고 있기에 이렇게 편하게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물론 작가의 연장선상이라 큰돈은 벌지 못하지만 하염없이 인세만 기다리고 있어도 되지는 않으니 생계형 작가보다는 처지가 나을 거다.
정말 잘 나가는 소수의 글쟁이가 아닌 보편적이고 평범한 작가들을 뒷받침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폭넓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에게는 그들의 평범한 목소리도 잘난 사람들의 목소리만큼이나 중요하므로. 아니 우리가 더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는 그들의 입에서 나올지도 모르므로. 나는 작가인가, 작가가 아닌가, 어정쩡한 경계를 밟고 선 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그 경계 너머로 확실히 넘어가지 못하는 건 결국 돈 때문이 아닌가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