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다면
나는 그들로부터 영감에 대해 배웠다. 영감은 번개처럼 느닷없는 것도, 활동적이고 힘든 분투도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규칙적으로 매일 흘러나올 기회를 조금 준다면, 그리고 약간의 고독과 게으름을 제공하기만 한다면 영감은 느리고 조용하게 언제든지 우리 속에 들어온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글을 쓸 때 우리는 정상에 우뚝 선 바이런처럼 느낄 게 아니라 마치 유치원에서 구술을 꿰는 아이들처럼 행복하게 몰두하여 구슬을 하나씩 조용히 꿰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브렌다 유랜드는 《글을 쓰고 싶다면》에서 좋은 착상은 느리게 온다고 말한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유아기에 머물던 시절을 떠올리면 그녀의 말이 이해가 된다. 할 말이 많았지만 막상 모니터 앞에 앉으면 껌뻑이는 커서를 노려보고만 있던 적이 많았던 때. 그저 열심히 살기만 했을 뿐 틈이 없던 시절이었다.
삶이 뒤틀리고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거라 지레짐작한 일들이 나에게 벌어지고, 그래서 뜻하지 않게 약간의 고독과 게으름의 시간들을 건너고 나니 알겠다. 억울하다고만 생각했던 일들이 사실 영감이 느리고 조용하게 나를 찾아온 과정이었다는 걸.
제목만으로 할 얘기 다한 10장. "왜 집안일을 지나치게 하는 여성들은 글을 쓰려면 게을러져야 하나"를 보면 여성의 게으름에 대한 허용치가 넉넉하지만은 않은 현실이 자그마치 1891년에 태어난 그녀가 활동하던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라는 사실에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워킹맘이든, 전업주부든, 그 사이에 끼인 나 같은 사람이든, 21세기를 사는 여성들은 우리에게 어쩌다 주어진 한 줌의 게으름조차 마음껏 누리지 못한다. 경제적인 대가가 없어서, 내 역할을 미루고 있는 기분이어서 같은 변명들이 우리를 잡아끄고 만다.
"당신이 남편이 은퇴하여 연금을 충분히 받고 아이들이 모두 대학을 마칠 때까지 작업하기를 미뤄둘까 봐 염려스럽다."는 그녀의 일침이 반가운 이유다. 남을 돌볼 시간을 아껴 먼저 "꽤 괜찮은 내"가 되라는 부추김이 싫지 않다.
집에서 일하는 나의 하루는
1. 엄마나 주부로서의 일
2. 번역가로서의 일(과 공부)
3.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
4. 기타 쉼
으로 이루어진다.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그리던 원 모양의 생활계획표로 나의 하루를 짜 본다면 뒤로 갈수록 더 큰 파이 조각을 주고 싶은 바람이지만 이내 1>2>3>4의 순서로 흘러가고 마는 하루다.
그렇기에, 빈둥거리고 뭉그적거리고 게으름을 피워도 좋다는 얘기는 지금의 나에게 구원처럼 다가온다. 1을 많이 줄이고 2도 좀 줄이고 때로는 3과 4만으로 이루어진 하루를 보내도 좋다고 은근히 속삭이며 내 손을 잡아끄는 그 말이 달콤하다.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들로 채우는 하루. 그렇게 나만의 은밀한 시간을 그려본다.
안아보기 전에는 모르는 사랑이 있지. 걸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체력과, 싸우기 전에는 낼 수 없는 힘도 있지. 써보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고 말야.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이슬아
써보기 전까지는 정말 몰랐다. 내 안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줄은. 빈둥거리고 때로는 시간을 낭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지난 몇 년이 그 이야기의 싹이 되었을 줄은.
"언제나 당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세요."라는 브렌다 유랜드의 말을 주문 삼아 오늘도 끼적여본다. 이런 걸 써야지 작정하고 써 내려갈 때조차 글이 생각을 저만치 앞서 가버리는 바람에 때때로 엉뚱한 곳에 도착한 나를 마주하기도 하지만 그조차 내가 뿌려둔 씨앗이 발아한 흔적일 테다.
구슬을 하나씩 꿰다 보면 미처 곁을 주지 못했던 마음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보이는 마음들, 글로 써보지 않았다면 결코 헤아리지 못했을 마음들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더 많은 게으른 날들을 욕망한다. 좋아하는 일에 마음을 쏟는 나만의 쉼을 욕망한다.을 쓰려면 게을러져야 하는 이유여성들이 글을 쓰려면 게을러져야 하는 이유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