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스타벅스에 가야 하려나 보다

타임 푸어에 시달리는 엄마의 하소연

by 물고기자리

발코니를 바라보았다. 아직 창문을 열면 싸늘한 기운이 훅, 하고 들어와 밖에 오래 있지 못할 걸 알면서도 저기 나가 일할까, 잠시 생각했다.


무언가에 시간을 들여 정성을 다해 본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무언가에 집중다운 집중을 해 본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몇 시간 전, 내 무릎으로 기어들어와 제멋대로 자판을 두드리는 둘째 아이와, 내 맞은편에 앉아 끊임없이 종알대며 이것저것 부탁하는 첫째 아이 사이에서 질려버린 나는


"나도 좀 집중할 시간이 있어야 할 거 아니야~~~!!"


하며 뒤로 갈수록 더 큰 목소리로 내지르고 말았다.


그렇게 큰 소리를 낼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동안 방치해둔 스트레스들이 이 때다 싶어 떼거지로 그 소리에 올라타면서 내 목소리는 확성기에 대고 내는 소리처럼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신랑이 방에서 나와 두 아이를 잠시 데리고 들어갔지만 거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나는 막상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나중에 해도 될 일을 했으며 멍하니 발코니를 바라보기도 했다.


도망쳐봤자 손바닥 안이라는 게 딱 내 꼴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어 서글퍼지기도 했다.


이 놈의 코로나만 끝나 봐라, 주말 내내 나가서 일해야지, 이를 앙다물고 다짐도 해보았다.


결국 방 안에서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은 20분 만에 도로 거실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고 나는 알 수 없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년설처럼 쌓여 있는 장난감, 아무렇게나 쑤셔져 있는 책들.


사람마다 선호하는 작업공간의 환경이 다르겠지만 나는 깨끗한 쪽이 좋다. 마른 천으로 한 번 쓱 닦은 뒤 그 위에 나의 작업에 필요한 노트북과 책, 연필 몇 개만 놓고 일하는 것, 그게 내가 바라는 작업 환경이다.


나의 욕망과 두 아이의 욕망이 합치되지 않는 곳. 깨끗하고 정돈된 공감을 원하는 나와 가는 곳마다 온갖 장난감을 흩뿌리고 다니는 두 아이. 아이들의 욕망이 승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나의 작업 공간은 내 욕망이 존재할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요일 하루만이라도 조용하고 깨끗한 환경을 찾아 나섰던 나였다. 그 하루만이라도 정말이지 깨끗한 곳에서 집중하고 싶었다. 그럴 수 없는 주중에는 늘 투덜이 스머프처럼 심통난 얼굴을 하고 다녔다.


스타벅스에는 나처럼 매일 오는 여자들이 많다. 그들은 거기 앉아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 안의 세상을 부유한다. 수를 놓거나 뜨개질을 하는 이도 있다. 물론 나처럼 자판을 톡톡 두드리기도 한다. 그들은 왜 평일 낮 시간에 집에서 나왔을까? 집은 왜 혼자 있는 시간마저도 주부들을 편하게 놓아주지 않는 것일까? 매일 되풀이하는 집과의 밀고 당기기가 다시 시작되는 시간, 나는 지금 스타벅스에 있다....(중략)........
집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닿지 않는 곳에. 집에 돌아가기로 한 5시까지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움직이지 않을 작정이다.
《깊이에 눈뜨는 시간》, 라문숙


말끔한 공간만의 문제는 아니었나 보다. 아이들이 다 커서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에도 스타벅스로 향하는 내가 보인다. 나는 가끔 아이들이 없는 집에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데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고픈 여자에게는 집조차 불청객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발코니를 다시 바라본다. 발코니는 내가 이 집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코 앞에 바깥공기를 쐴 수 있는 공간을 지닌 채로 사는 건 그렇지 않은 것과 완전히 다른 삶일 거라며 들떴었는데. 하지만 이 집에 산 지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막상 저 발코니에서 보낸 시간은 많지 않다.


그저 한 발자국만 나오면 되는 거였는데, 혼자 있을 공간을 마련하는 건 어찌 보면 쉬운 거였는데.


허나 발코니에 혼자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은 어쩐지 낯설다.


올여름은 아이들을 위해 풀장도 설치하고 화분도 더 키우고 해야지,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는 거 봐서 아무래도 나만의 공간이 되기는 그른 것 같다.


뜰채로 나를 퍼올려 조금은 느리게 흘러가는 장소로 옮겨다 놓아야지 싶다.


아무래도 스타벅스에 가야 하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