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다.
코로나 블루인가.
인터넷으로 끼적이는 것 말고 밖에 나가 직접 만지고 찔러보고 입어보고 냄새 맡는 쇼핑을 마구마구 하고 싶다. 뉴욕의 코로나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면서 모두의 일상이 무너지며 나의 나약한 의지도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자본주의에 철저히 물들었던 나의 삶은 굳건히 닫힌 상점들 앞에서 우울의 그림자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하루에 700명씩 죽어나가는 이곳에서 그런 것 따위야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겠지만,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만으로 감사해야겠지만 삶은 원래 이기적인 것인지라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흉측한 낯짝이 어느샌가 새어 나오고 만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조금 끼적여놨던 글들도 전부 마음에 들지 않고 쓰고 싶은 말도 없다. 집중도 되지 않고 머릿속도, 몸도 부산스럽고 산만하다.
결국 이런 날 읽으려고 산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연다.
"무례하고 엉망이어서 짜릿한 사이가 되고 싶었다." 이렇게 자극적인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그녀가 좋아서 이 문장에 밑줄을 치고 가만히 바라본다. 문득 점잔 빼는 내 문장들이 부끄러워진다.
평소 같으면 앉은자리에서 한참을 읽었을 글들 이건만 오늘은 아무래도 집중이 되지 않는다.
아이가 없었다면 이런 날 퍼즐을 했을 텐데, 이제는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제대로 놀지도 쉬지도 못하는 나. 벌써 오후 3시를 넘겼건만 (분명 많은 일을 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자책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릴 적 나는 온종일 밖에서 놀았다. 신발 멀리 던지기, 얼음 땡, 술래잡기 등등 여름이면 해질 녘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참 잘도 놀았다 싶다. 그때로 돌아가 아무런 생각 없이 그 순간에만 충실하게 시간을 보내면 좋을 텐데, 어른이 되어 버린 나는 마음껏 무용한 시간을 보낼 줄도 모르는 무능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조금 덜어내야 할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자꾸만 뭘 더 하려 하지 말고 그 에너지를 아껴 내 몸을, 마음을 돌아봐야 할 시간이 온 것인지도 모른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이 사회가 예전으로 돌아가는 데에는 한참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미국인의 25퍼센트가 실직한 지금, 오늘의 우울은 나의 사소한 푸념에 불과하겠지만 오늘의 우울을 방치할 경우 이 눈덩이가 얼마나 더 불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글을 써보니 엉켰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인데 그래도 글 한 편을 썼으니 기특하다며 서글퍼지려는 나를 위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