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이 된 나에게 하는 다짐 같은 것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by 물고기자리

새로운 책의 번역을 시작한다. 조건이 퍽 마음에 들지는 않으나 현실과의 자그마한 타협 같은 것.


현실과 몽상 사이를 오가는 나의 삶은 이따금씩 이렇게 타협의 순간에 마주한다.


하지만 나의 몽상은 굶어 죽을 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는 시인의 것과는 거리가 있으며 나의 현실 또한 주식의 오르내리막만을 주시하는 투자자의 마음과는 거리가 있다.


나의 몽상과 현실은 대척점에 있지 아니하며 가끔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그런 사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주가 돼간다. 그간 내 안에 고여 있던 말을 쏟아낸 시간이었다.


혼자 쓰다 말기를 반복하며 목적지를 알 수 없는 항해를 계속하던 내가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며 동시에 모두에게 하려고(리베카 솔닛)" 장소를 빌린 셈이었다.


혼자 쓸 때와는 분명 달랐다.


솔직하지 않은 말들은 완성되기를 거부했다. 내 마음이라 착각하고 적어 내려 간 말들은 아무리 예쁘게 포장하려 해도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끌고 가려다 지친 내가 다시 빈 종이에 솔직하게 써 내려간 글들은 별다른 포장 없이도 그 존재만으로 충분히 이해받았다.


내 마음의 동굴 저 안쪽까지 들어가 보고 바닥에 침전해 있었던 작은 감정까지 다 긁어 모아 보는 과정은 나름의 책임을 안고 진행되었다. 일기가 아니었기에 이것저것 널어놓기만 해서는 안 되었다.


내 안에는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쓴다면 단순히 내 안의 목소리만 들여다보는 데서 그치고 싶지는 않다.


자아를 깊이 파고들어가는 일, 그렇게 땅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가끔은 필요하지만,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는 일,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가슴에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탁 트인 곳으로, 더 큰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양쪽 방향 모두로 떠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며, 가끔은 밖으로 혹은 경계 너머로 나가는 일을 통해 붙잡고 있던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아직은 사유의 깊이도 나만의 통찰력도 부족하지만 결국 해내는 사람이 되고프다.


한 작가를 알아가는 데, 한 세계를 알아가는 데 시간이 소요되는 사람인지라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운 일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좋았던 책을 다시 한번 더 읽고,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고 싶지만 몰랐던 작가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도 크다.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바뀌어가면서 다른 이들의 글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음을 인식한다. 글을 쓰는 사람의 눈에는 남이 쓴 글이 더 잘 보인다. 쓰는 자의 눈으로 바라본 글은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 쉬이 지나쳐지지 않는다. 눈길이 고이는 곳을 따라 그 글을 썼을 이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기꺼이 감당하고픈 달콤한 시간 도둑이다.




뭉근한 자극을 품은 채 우선 번역을 한다.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된 나는 번역가로 내놓는 글에도 더 욕심을 부린다. 건강한 욕심이다. 서로의 영역을 탐내지 아니하고 서로를 보듬는 둘의 사이가 변함없기를 바란다.


내가 쓰는 사람이 되어서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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