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찾아온 조그마한 슬픔

아무리 작아도 하찮은 슬픔은 없었다

by 물고기자리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슬픔을 위로하는 슬픔'이라고 네이버에 쳐 보았는데, 그 순간 그게 내 마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슬픔을 위로하는 슬픔.


슬픔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늘 그러했다. 슬플 때에는 늘 그보다 깊은 슬픔 앞에 나의 슬픔을 세워두고선 나를 찾아온 슬픔을 달랬다. 그보다 더한 슬픔도 많은데 이건 슬픈 것도 아니지, 하며. 내 슬픔은 그렇게 늘 더 큰 슬픔 앞에서 자리를 잃곤 했다.


글을 쓰게 되면서 감정에 빗질하는 법을 배우게 된 나는 이제 내 슬픔을 곧이곧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작아도 하찮은 슬픔은 없었다.




오늘 오전, 나에게는 조그마한 슬픔이 찾아왔었다.


첫째 아이의 영어 공부를 위해 사두었던 Phonics 카드가 둘째 아이의 힘찬 손길을 따라 꽃비처럼 사방에 내려앉았는데, 엉망이 되어버린 그 카드를 보며 참고 있었던 감정이 카드를 하나씩 정리하는 도중 터지고 말았다.


아이의 영어가 생각보다 빨리 늘지 않아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고 사놓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활용한 적이 없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카드는 점점 원래의 순서에서 멀어져 갔고, 모든 것을 조금씩이나마 다 잡아보려 아슬아슬한 삶을 유지해나가고 있던 나는 그만 와락 무너지고 말았다.


몸의 일부가 산화된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치히로처럼 나는 갑자기 슬퍼지고 말았는데, 그건 화도 짜증도 아니라 명징한 슬픔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원래대로 순서를 맞출 수 없어서였는지, 내가 일종의 마지노선처럼 가까스로 유지해오고 있던 어떤 질서 같은 게 깨어져서인지, 내가 붙들고 있던 그 연하디 연한 마지막 실이 툭 끊어지면서 슬픔이 물밀듯 밀려왔다.


나는 슬퍼졌고 슬프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큰 아이가 와서 내가 우는 아이에게 그랬듯 괜찮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데도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 슬픔이었다.


힘든 게 아니라 슬펐다는 사실이 슬퍼서 나는 또 울었는데,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또 줄줄 새어 나와 그렇게 한참을 울고 말았다.




첫째 아이는 내가 진정이 된 후로도 몇 번이나 괜찮냐고 물었는데, 그때 읽고 있던 책이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이어서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게 나는 그저 좋은 사람, 그저 좋기만 하고 선하기만 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옳은 존재였다.


아이가 내 울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조금 걱정이 되는 한편, '그저 좋은 사람'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이 오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때에는 아이들 앞에서 울 수도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그렇게 눈이 빠지도록 울고 난 나는 이내 졸려졌고 둘째 아이를 재우느라 같이 누웠다가 설핏 잠이 들었던 것도 같다. 아이의 기저귀에서 나는 향 같은 것에 눈을 뜨니 아이는 내 코 언저리에 엉덩이를 들이민 채 잠이 들어 있었다.


그렇게 허물을 벗듯 슬픔에서 빠져나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다. 오전과 오후의 경계가 이토록 자명한 날이 있었던가. 추운 나라에 혼자 다녀온 뒤 언 몸을 녹이고 있는 기분이다.


오늘 저녁에는 일치감치 밥을 먹고 다 같이 <인사이드 아웃>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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