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하는 지금이 청춘

반복적인 리듬 안에 잘 머물러 있기

by 물고기자리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저릴 정도로 무고한 얼굴로 잤다. 신기한 건 그렇게 짧은 잠을 청하고도 눈뜨면 그 사이 살이 오르고 인상이 변해 있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정말 크는 게 아까울 정도로 빨리 자랐다. 그리고 그건 걸 마주한 때라야 비로소 난 계절이 하는 일과 시간이 맡은 몫을 알 수 있었다. 3월이 하는 일과 7월이 해낸 일을 알 수 있었다. 5월 또는 9월이라도 마찬가지였다.

《바깥은 여름》, 김애란


작은 아이가 자는 걸 보면서 일할 때면 아이가 성인이 된 모습이 자꾸만 겹쳐 보인다. 키도 두 배, 머리통도 두 배, 발도 두 배, 그렇게 자꾸만 아이를 늘려본다. 그러면서 결국 눈에 새기고 마는 건 지금의 모습이다. 첫째 아이의 저만할 때의 모습이 사진을 들춰봐야만 기억난다는 걸 알고 난 후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다.


집에서 일하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제야 알아채는 나.




하버드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이자 《원더우먼 히스토리》의 저자, <뉴요커>의 정기 기고자인 질 르포어는 <뉴요커>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아이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 상을 받는 자리에도 컨퍼런스에도 가지 않았다가 엄청 욕먹었다는 얘기, "아이는 내 안에서 나올 테니 어딘가 들어갈 곳이 필요하지 않겠는가?"라며 4월 초가 출산 예정일인 아이를 위해 겨울 내내 방한복을 직접 만드는 모습 따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렇게 프로페셔널(?)한 여자라면 나와는 다른 모성애 유전자를 타고났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다행히 집에서 일하는 엄마인 나 같은 사람은 아이를 두고 떠난다는 고통에 몸부림칠 필요가 없다. 감정의 눈덩이를 서로에게 던지며 아이들과 치열한 하루를 보낼지언정, 그 안에서 벗어나 그러니까 아이들이 보는 엄마라는 무대에서 내가 잠시라도 사라지는 법은 없으니.


아이들을 옆에 두고 일을 하는 하루는 '익숙'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매 번 새로운 모습으로 갈아타는데, 그렇게 익숙해질 만하면 또다시 바뀌는 패턴 아닌 패턴을 몇 년째 마주하고 나니 나의 삶도 조금은 유연해진 기분이다.


자유형, 배형, 접영, 평형, 개구리형 등 가리지 않고 마구마구 시도하면서 어떻게 서든 물 위에 떠 있으려고 안감힘을 쓰기만 했던 처음을 지나 이제는 힘을 뺀 채 물을 조금은 즐길 줄 알게 된 것 같다고나 할까.


나는 식탁에서도 글을 썼고, 젖을 먹이면서도 글을 썼으며 침실의 낡은 화장대에 앉아 글을 썼고, 나중에는 작은 스포츠카 안에서 학교가 파하고 나올 아이들을 기다리며 글을 썼다. (……) 돈이 없을 때에도, 타자기를 두드리는 것 말고는 가계에 도움을 주는 게 없다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글을 썼다. 마침내 내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은 내가 강인한 성품을 지녔거나 자존감이 높아서가 아니었다. 나는 순전히 고집과 두려움으로 글을 썼다. 내가 정말 작가인지 아니면 교외에서 미쳐가는 애 엄마일 뿐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진짜 작가”는 그저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가의 시작》, 바버라 애버크롬비, ‘진짜 작가란’ 중에서


중요한 건 시작보다 그곳에 잘 머물러 있는 것일 거다. 많은 시간이든, 적은 시간이든 내 일을 놓지 않고 내 생각을 붙들고 사는 것, 프리랜서로 일하는 엄마에게 필요한 건 그런 것일 테다. 반복적인 리듬에 지치지 않고 이를 슬기롭게 운용하는 지혜 같은 거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창의력을 챙겨 입고 일할 수 있는 지금이, 그것도 나보다 훨씬 창의적인 존재들을 옆에 끼고 일할 수 있는 지금이 나의 가장 빛나는 청춘이었음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나 스스로도 흠칫할 정도로 코를 골고 가끔은 이를 갈기까지 하면서 자느라 나의 청춘을 챙길 틈이 없지만 분명 지금도 나의 청춘은 숨 가쁘게 흘러가고 있을 거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며 아이에게


"엄마가 오늘 너무 울었더니 졸리네."


했더니


"그래? 그럼 내일은 울지 마. 안 졸리게."


한다. 무심한 듯 시크하지만 은근 위로가 되는 말. 그 말에 잠겨 또 그렇게 하루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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