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와 그녀의 올리브 키터리지

내가 좋아하는 작가

by 물고기자리

작년 여름 샌프란시스코로 가족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들어간 서점에서 중고로 팔고 있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보았다. 제목만으로 판단한 뒤 별로일 거야 지레짐작해 버렸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왜 진즉에 안 읽었을까 후회하는 책들이 간혹 있는데, 이 책이 그랬다.


그 여행길에 나는 7권의 책을 샀는데 그중 가장 먼저 읽은 책이 《올리브 키터리지》였다.《내 이름은 루시 바턴》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아주 많이 좋았다. 아끼고 아껴 읽은 후에는 권상미 역으로 나온 역서까지 사서 읽었다.




김애란은 이 책에 “울지 않고 울음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추천사를 남겼다. 나이가 들어가기에 노년의 성장소설 같은 이야기가 와 닿은 건가 싶었는데 비단 그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그녀가 전하는 이야기에 공통점이 있다면 내가 겪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일지라도 화자의 눈 뒤에서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슬펐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독자가 화자가 되어볼 자리를 남겨두는 것. 그것이 바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힘이 아닐까 싶다.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만드는 힘.


이 책의 원서를 읽고 있을 무렵, 나는 뜻밖의 선물을 받기도 했다. 당시에 구독하던 <뉴요커>지에 올리브 키터리지 그 이후의 이야기가 실린 거였는데, 잡지를 살 때 껴주는 부록 선물을 받은 것마냥 혼자 들떴더랬다. <Motherless Child>라는 제목의 이 이야기에서는 뉴욕에서 올리브의 집에 찾아온 아들 내외 가족의 이야기가 올리브 키터리지 특유의 관점으로 솔직하고 섬세하게 또 담담하게 그려진다. 올리브 당신이 잘 살았으면,이라는 나지막한 응원을 보내며 잡지를 덮은 기억이 난다.


<뉴요커>에 실린 올리브 키터리지 그 이후






내가 《올리브 키터리지》 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아들 크리스토퍼의 결혼식 날 이야기다. <작은 기쁨>이라는 제목의 이 이야기에서 올리브는 잘난 체하는 며느리가 못마땅해 그녀의 물건을 조금씩 가져가며 이렇게 말한다.

사실 닥터 수가 올리브 가까이에서 살 거라면, 수잔이 스스로에 대해 계속 의구심을 갖도록 올리브가 이것 조금, 저것 조금을 가져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올리브가 스스로에게 작은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다. 크리스토퍼는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살 필요는 없다. 뭐든 다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사람은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니까.


올리브는 "커다란 가죽 핸드백에 챙겨 넣은 블루베리 케이크 한 조각을 생각하니(곧 집에 가서 마음 편히 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라고도 말한다.


조금은 괴팍한 올리브가 연신 못마땅하다가도 이런 모습 때문에 피식 미소를 짓게 되고 또 자꾸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만다. 누군들 그런 생각을 해보는 않았을까 싶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주인공들은 분명 나와는 다른 인물인데 나의 어떤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밤 늦은 시간보다는 오후 세 시쯤이 어울리는 그녀의 문장들. 그 나른한 달콤함이 아무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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