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나이 드는 건 좋은 일이다

마흔 즈음에

by 물고기자리


서른아홉 번째 생일이었다.


마흔인 친구들은 아직 30대라 좋겠다 했다. 한 살이 아쉬운 나이가 되니 친구들의 부러움이 싫지는 않았다.


작년 여름, 뉴욕에 거주하는 동문 모임에 나갔다가 나보다 열두 살이나 어린 후배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모르는 그 아이들 앞에서 난 그냥 두 아이가 있는 선배 혹은 ‘아줌마’에 불과했다. 갑자기 들어버린 나이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았다. 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더 이상 젊지 않구나. 너무 뻔한 사실을 타인을 통해 알게 된 나는,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다니엘 페나크는 《몸의 일기》에서 "인간은 극사실주의 속에서 태어나 점점 더 느슨해져서 아주 대략적인 점묘법으로 끝나 결국엔 추상의 먼지로 날아가버린다."라고 했다. 나는 점점 더 느슨해지고 있었는데, 그게 조금은 슬펐고 노화라는 자연의 섭리 앞에 초라해질 때도 있었다. 젊을 때의 나는 당당했는데, 어느 순간 자꾸 숨고 싶어 지기도 했다.


나이에 대해 말할 때,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먼저 떠올렸다. 젊은 시절의 불안함이나 우울한 기운 따위가 가신 지금에 감사해야 할 법도 했건만 그보다는 생기 넘치는 활력, 팽팽한 피부처럼 나에게 없는 것들을 아쉬워했다.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서본다. 군데군데 붙은 살들, 조금은 넓어진 어깨, 눈가의 주름 , 드문드문 보이는 흰머리 등을 꼼꼼히 살핀다. 싫다, 라는 마음 없이 그냥 지금의 내 몸을 바라본다. 이렇게 변했구나, 이렇게 바뀌어왔구나. 마지막으로 내 벌거벗은 몸을 이렇게 꼼꼼히 본 적이 언제던가, 그렇게 나는 지금의 내 몸을 받아들인다. 현재의 내 위치를 받아들인다.


나이 들어서 가능한 일을 생각하며 나이먹음을 긍정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글쎄 마흔이라는 나이가 다가오는 시점이 되고 보니 굳이 나이 먹어가는 걸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노화가 수반되는 나이 듦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다.


다만 지나온 시간들이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무언가'를, 알 수 없는 결말을, 열린 결말을 기다리는 건 살짝 흥분되는 일이다. 그곳에는, 나의 삶에 끼어든 다른 존재들이 펼쳐보일 생경한 줄거리도 있을 테니까.


"몸은 노화를 겪으며 낡는데 그 낡은 몸이 결코 낡을 수 없는 기억을 담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인간의 몸을 가리켜 피를 담는 자루가 시간을 담는다고 했다. 시간은 어디론가 우리를 데리고 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우리가 가는 공간은 자신의 몸이다. 쿤데라의 말대로 우리는 반드시 자신의 몸과 단둘만이 남겨진 시간을 마주한다. 몸에 관한 한 우리는 시작과 끝을 먼저 알고 중간 부분을 나중에 아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아무튼 메모》, 정혜윤


내 몸은 낡을지언정 그 안에 담긴 기억은 낡을 수 없기에 아직 가보지 않은 여행지를 얘기하듯 조금은 달뜬 마음으로 살면 어떨까. 여행지의 기억은 낡는 법이 없으므로.




프랑스 여자처럼 우아하게 나이 들고 싶지도 않고 사회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늙어가고 싶지도 않다.


가능하다면 박연준 시인이 《모월모일》에서 말한 "한눈에 보아도 어른과 여자가 고루 섞여, 나무같이 편안히 서 있는 사람", "어쩌면 치마 따위는 입지 않았는지도 모르는 사람", "폭이 넓은 바지와 느슨하게 짜인 가을 스웨터를 입고 늦가을 해바라기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는" 어른 여자가 되고 싶다.


그런 어른 여자가 되어 있을 나를 상상하며 이렇게 나이 드는 건 좋은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줌파 라히리, 삶과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