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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Aug 28. 2021

우아한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지만

20대의 나로 돌아간다면 여행을 좀 더 다니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늘 말하고 다녔다. 나름 돌아다녔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으로 여행다운 여행을 한 적이 10년 전쯤으로 기억되는 걸 봐서 충분하지 못했나 보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어린아이들을 이고 지고 여행을 다니기에는 이제 체력도 안 될뿐더러 돈이 네 배로 깨지는 상황 역시 감당하기 쉽지 않다. 이 직업을 택했을 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뿐히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아이라는 너무나도 큰 변수를 계산하지 못했던 나의 어리석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거의 1년 동안 집착적으로 책을 사들인 것도 집착적으로 책을 읽은 것도 일종의 보상심리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 세상으로 떠나지 못해 책 세상으로 떠난 것일 테니. 그리하여 나의 책장은 겹겹이 쌓인 책들로 미어터질 지경이 되었으니 며칠 전 갑자기 그 책들이, 나의 소중한 책들이 버겁게 다가왔다.


두 번 이상 볼 것만 같은 책만 제외하고는 정리를 시작한 건 그 때문이었다. 내가 이런 책도 샀구나 싶게 호기심에 샀다가 끝까지 읽지조차, 아니 펼쳐보지조차 않은 책들도 있었다. 그 책을 샀던 순간들까지 기억 못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책이 읽고 싶은 것이었을까 무언가 다른 것을 바란 건 아니었을까 나 자신이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 순간들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 그때의 나는 이 책들을 사야만 했으므로. 사지 않고 그 시절을 건너지 못했을 것이므로.


다만 이제는 정리할 때가 온 것이었다. 표지를 보자마자 결심이 서는 책도 있었으나 어떠한 책은 몇 번을 들춰보고 밑줄 그은 부분을 지우개로 지우는 순간까지도 마음이 파도 타듯 왔다 갔다 했다. 내가 그어놓은 밑줄을 지워가면서 생각했다. 내가 이런 시간들을 건너왔구나, 나는 이때 이러한 마음이었구나. 그 시절에 붙들리고 싶지 않은 걸 보니 내가 삶의 어떠한 구간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게 뭔지는 나도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책장을 정리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따라왔다.


중고서점에서 받아주는 책은 일단 그쪽에 팔기로 하고 나머지는 한인 중고장터에 올려놓으려 한다. 주인을 찾아가게 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집을 떠나기 전까지 어떤 식으로는 내 품에서 떠나보낼 생각이다.



정리가 필요한 건 책뿐만이 아니었다.  요 며칠 한 달에 한 권씩 번역을 끝내야 한다고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래야 일반 직장인 정도로 벌 수 있다는 계산 하에 게으름 부리던 나를 다그쳤던 것인데 그러다 보니 탈이 난 것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욕심은 집안일과 육아, 일만으로 빼곡히 채운 삶으로 이어졌고 나에게는 글을 쓸 시간도 나를 돌아볼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돈도 안 되는 글을 써서 뭐하냐는 자조적인 생각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지 않았나. "다만 어떤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아도 쓰이는 일만으로 저마다의 능력과 힘을 가지는 것이라 믿는다. 마치 마음속 소원처럼, 혹은 이를 악물고 하는 다짐처럼"이라고 말한 박준 시인의 말처럼 나의 글은 나에게 어떠한 다짐 같은 것이었는데.


9월 중순부터 아이들 개강이다. 꼬맹이 둘째도 정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되어 운이 좋다면 그러니까 아이가 나에게서 떨어져 무사히 수업에 들어간다면 나에게도 6년 만에 오롯한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나에게 찾아온 변화가 그 때문인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오늘 잠깐 시간을 내 정말 오랜만에 동네 커피숍에 나가 한글 책을 꺼내 들었다. 잘 읽히지 않았던 한글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여행의 말들>에서 저자 이다혜는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삶은 모험, 거주지 변경, 클라이맥스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반대라고 생각한다. 조용한 삶일수록 더 생산적이다."


효율성이 최고는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어디론가 떠나야만  사는 삶도 아니다. 왁자지껄한 곳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20대의 나는 이제 없지만  대신 지금의  자리를 조용히 둘러볼  아는 40대의 내가 있다. 이제 그런 오늘을 차려내야  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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