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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Apr 19. 2020

내가 번역한 두 권의 그림책

그림책이 좋아서

때는 2016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카페에 외서 기획서를 올렸는데 관심을 보인 한 아동도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안타깝게도 검토 끝에 출간은 안 하기로 결정이 났는데 그로부터 3개월 후 같은 출판사에서 그림책의 번역을 맡아달라는 의뢰를 해왔다.


그림책은 처음이었지만 때마침 아이가 자라면서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커가고 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그림책은 작업 과정은 참 즐거우나 순수히 글자 수로 측정되는 번역료 때문에 경제적인 보상은 봉사활동 수준이다. 첫 권은 3만 원가량의 번역료를 지급받았고 그로부터 몇 개월 후에 의뢰받은 또 다른 책은 내용이 조금 더 길어 그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받기는 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그림을 보고 해석해서 글에 녹여내야 함을 감안해 그림도 번역 분량에 쳐주면 좋을 텐데, 조금 아쉽긴 하다.




그림책 번역이라고 쉽지는 않다.


"그림책은 글이 서술하지 않은 부분을 그림이 보여주고, 그림이 비워놓은 지점을 글이 채운다.(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최혜진)"

                                                                              

따라서 글과 그림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림을 제대로 해석하지 않으면 엉뚱한 번역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좋은 그림책은 소리 내어 읽을 때 그 맛이 살기에 아이에게 읽어준다 생각하고 번역하면 좋다. 입말이 꼬이면 다시 뒤집어서 생각해 본다. 더 자연스럽게, 더 리듬감 있게.


아이들이 독자이기에 어려운 단어는 피해야 한다. 어려운 단어를 피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굳이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한자가 섞인 동사들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아이가 내뱉음직한 말을 고른다.


 

쉿! 방해하지 마!》는 글이 많지 않아 그림을 찬찬히 보면 좋은 책이다.


이 책에는 각기 다양한 체형(?)과 피부톤을 지닌 토끼들이 등장한다. 늘 비슷한 형태로만 묘사되는 기존의 토끼들과 달리 귀가 짧은 토끼도 있고 목이 기다란 토끼도 있으며 까무잡잡한 토끼도 있다. 다양성이 반영된 토끼들이 귀여워 한 놈 한 놈 뜯어먹듯(?) 본 기억이 난다.


이 토끼들은 아이의 눈에도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내가 놓치고 지나친 토끼에도 아이는 눈길을 주고 질문을 해댄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을 아이에게 읽어줬을 때에는 하도 꼼꼼히 그림을 뜯어보는 아이 때문에 글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정답처럼 정해진 교훈만을 취하려는 어른과는 달리, 아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해석하려 했고 그렇게 자그마치(?) 역자인 나랑 티격태격하다 보니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것.   



《쉿! 방해하지마!》



그런데 요새 이 책을 보면 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버럭 화를 내고 방해하지 말라고 딱 선을 그어놓고는 또 금세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지금의 나다.


지금의 나와 싱크로율 100퍼센트



《미운 오리 티라노》는 문화관광부 추천도서로 선정되는 등 나름 인기도서인지, 조카들도 좋아하고 친구들을 통해서도 종종 얘기를 듣는다.


《미운오리 티라노》


이 책은 편집자와 여러 번 교정을 주고받아 특히 기억이 난다. 좋은 책을 만들려는 마음이 느껴지는 그 메일은 어쩐지 연애편지 같기도 해 마음이 다친 날 읽어 보면 힘이 나기도 한다. 내 번역을 귀중히 생각해주고 내 의견을 존중해주는 이가 저기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든든함이랄까.

 



돈이 되지 않지만 분명 그림책을 번역하는 과정에는 돈으로는 보상받지 못하는 온기가 있다. 아직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아이가 내 이름 석자가 박힌 부분을 가리키며 엄마 이름을 당당히 말하는 것을 보는 건 보너스 선물이다.


앞으로도 그림책 의뢰가 들어오면 돈이 얼마가 되었건 간에 거절하긴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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