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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Sep 20. 2019

절망할 틈 없이, 또 다음은 있다

[일드] 언내추럴(2018)

어딘가 석연치 않은 죽음의 이면을 조사하는 가상의 신설기관, 부자연사 규명 연구소 ‘UDI 라보(Unnatural Death Investigation Laboratory)’. UDI는 경찰이나 지자체가 의뢰했거나 개인이 조사 비용을 지불한 시신을 부검해 사인(死因)을 밝히고,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파헤치며 부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본업도 미모도 1초도 쉬지 않고 열일하는 주인공

법의학을 소재로 한 ‘언내추럴’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장르물이다. 몇 년 동안 일드를 안 보다가 지난해 1분기 작품들을 유독 열심히 챙겨봤는데 그중 ‘언내추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UDI 구성원들 각각의 개성은 당연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케미와 관계성이 좋았다.


특히 주인공인 UDI의 부검의 미스미 미코토(이시하라 사토미)가 인상적이었다. ‘언내추럴’이 좋았던 이유 중 8할이 바로 이 캐릭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이 작품을 통해 이시하라 사토미의 연기 스펙트럼이나 캐릭터 바리에이션까지 새로 보게 된 기분도 들었다.


미코토는 어렸을 때 끔찍한 사고를 겪었지만 그 트라우마에 갇히지 않았다. 과거가 자신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멘탈을 건강하게 가꿨고, ‘자연스러운 죽음의 이면에는 반드시 밝혀야 하는 진실이 있다’는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그래서 미코토는 여성 법의학자라 맞닥뜨리는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똑 부러지게 할 말을 한다. 영원히 답이 안 나오는 물음을 되풀이하는 동료에게는 얼른 해결해서 매듭짓자며 먼저 손을 건넨다. 법정에서 지질하기 짝이 없는 범인이 조소할 때도 동요 없이 또렷한 목소리로 받아친다. “시신을 앞에 두고 있는 건 그저 생명을 빼앗겼다는 되돌릴 수 없는 사실뿐, 범인의 기분 같은 건 알 수 없고 당신을 이해할 필요도 없다”라고.


수없이 되풀이한 물음 끝에 답을 찾은 사람들

‘언내추럴’이 좋았던 이유 8할이 미코토라면, 남은 2할 중 일부는 드라마의 주제가, 요네즈 켄시의 ‘Lemon’이 차지한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이 노래가 흘러나와 완벽해지는 장면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후반부가 되면 드라마는 UDI의 또 다른 부검의 나카도 케이(이우라 아라타)와 연관된 사건이 등장하면서 절정으로 치닫는데, 이때 ‘Lemon’이 귀신같은 타이밍에 등장하며 힘을 보탠다. 그래서인지 끝까지 다 보고 나서 얼마 동안은 이 곡이 꼭 나카도의 노래처럼 들려 기분이 싱숭생숭해지기도 했다.


훈훈한 모녀, 이 둘이 붙는 씬은 다 좋아서 버릴 게 없다

마지막화에서 재판이 마무리된 후 미코토는 엄마와 이런 통화를 나눈다.


미코토: 겨우 끝났어.
엄   마: 또 다음이 있잖아.
미코토: 있지, 계속해서. 절망할 틈이 없어.
엄   마: 최고잖아.


미코토가 절망할 틈 없이 또 다음이 있다고 말해 안심이 됐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미코토는 휘청거리지 않고 지금처럼 잘 살아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UDI 멤버들 못 잃어요, 그러니 시즌2 주세요, 안되면 SP라도 (제발)

나카도의 에피소드만큼 미코토의 과거를 더 보여줬다면, 대미를 장식한 사건의 플롯이나 전개가 좀 더 치밀했으면 더욱 완벽했을 것 같은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이미 내겐 별 다섯 개인 드라마.


“죽음을 마주함으로써 현실의 세상을 변화시킨다”라는 작품의 메시지가 진중하고 뭉클하게 와 닿았을 수 있던 건 주인공을 포함해 인물을 담는 작품의 시선이 꽤 담담하고, 일드 특유의 교훈 전달(강조)적 모먼트도 별로 없어서 담백하게 느껴져서일 것이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던지는 질문은 무겁지만, UDI 멤버들은 그걸 절대 버겁지 않은 무게감으로 바꿨다. 


모쪼록 UDI 멤버들의 여정이 계속되기를, 그리고 그 새로운 여정을 또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왓챠플레이, wavve, JBOX에서 시청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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