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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또 Oct 25. 2019

논픽션 같은 픽션

[영화] 신문기자(2019)

그 누구보다 자신을 믿고 의심하라

토우토 신문에 익명의 제보 팩스가 도착한다. 내용은 대학 신설 계획에 관한 극비 정보로, 문부과학성이 아닌 내각부가 대학 신설을 주도한다는 것. 사회부 기자 요시오카 에리카(심은경)는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조사를 시작한다.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 스기하라의 현타가 와 닿았다

한편 내각정보조사실 관료 스기하라 타쿠미(마츠자카 토리)는 현 정권에 불편한 뉴스를 컨트롤하는 자신의 업무 때문에 계속 갈등 중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신념에 반하는 일이었지만, 그는 아내와 곧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며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묵묵히 버티던 스기하라의 퓨즈는 옛 상사의 투신자살 뉴스를 접하며 툭- 끊긴다.


그렇게 요시오카와 스기하라의 인연이 시작되고, 두 사람은 함께 거대한 폭로전을 준비한다. 이 제보는 과연 팩트일까, 만약 사실이라면 이걸 유출한 내부고발자는 누굴까. 왜 이런 일을 벌여야만 했을까.



배우가 연기했다는 것만 픽션, 나머지는 다 논픽션 그 자체

‘신문기자’는 묵직한 한 장 한 장을 충실히 잘 쌓아 올려 만든 영화다. 장르는 드라마, 서스펜스인데 왠지 다큐라고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영화 속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게 익숙한 탓이다. 민간인 사찰, 가짜 뉴스, 댓글/SNS 여론 조작까지 이미 우리 뉴스에서도 빈번히 본 것들이다.


‘신문기자’의 원안은 도쿄신문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가 쓴 동명의 에세이인데, 영화는 이쯤 되면 논픽션 아닌가 싶을 정도로 2017년 이토 시오리의 기자회견이나 아베 신조 총리의 가케 학원 스캔들 등 실제 있던 일들을 잘 담아냈다. 러닝 타임 113분 내내 일본식 민주주의를 까고 또 깐다. 동시에 저널리즘의 의미와 행방도 같이 묻는다. 그것도 꽤 통렬하게.  


뭉치기까진 힘들었지만, 뭉치고 나서 이룬 그 클라이맥스에 박수

유독 도입부가 긴 느낌이었는데 요시오카, 스기하라 두 인물의 캐릭터를 세밀히 그리기 위함이었다 생각하니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다만 둘이 팀 업하는 과정에 비해 같이 폭로전을 준비해서 엔딩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져, 영화의 마지막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겠다 싶었다.-개취로는 팟! 하고 끝나는 그 엔딩이 좋았다-


내각부 씬들의 서슬 퍼런 냉랭한 색감과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 깊었다. 심은경은 일본어까지 잘 소화해냈고, 마츠자카 토리의 마지막 대사는 참 많은 질문과 감정을 들게 했다. 자막 처리가 되진 않았지만 난 스기하라의 마지막 대사를 ごめん(미안)”으로 이해했다. 왜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생각해보면 또 저렇게 씁쓸하고 현실적인 결말도 없을 것이다.


엔딩이 좋은 이유의 8할은 스기하라의 마지막 표정과 눈빛

‘내부자들’에서 이강희(백윤식) 주필이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라고 했다면,  ‘신문기자’의 타다 실장(다나카 테츠시)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형태만 있으면 된다”라고 말한다.


여기나 저기나 환멸스럽긴 매한가지. 그래도 요즘의 일본 영화계에서 이런 작품이 제작돼 개봉한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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